생일. 한 생명이 태어난 날을 기념으로 하는 날이다. 기쁘고 즐거운 날이다. 그런데 나는 언젠가부터 생일이 되면 우울했다. 대학을 들어가면서 스마트폰을 사고 본격적으로 SNS를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 화려하게 생일 축하를 받는 사람을 보면 부러웠고 자연스레 비교하게 됐다. 상대적으로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비교는 나를 갉아먹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생일이 되면 다른 날보다 마음이 더 좁아졌다. 나는 그 친구가 생일일 때 축하해주고 선물도 줬는데, 내 생일에는 아무런 연락이 없을 때 꽤 섭섭했다.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몰려오고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모르게 생일이 되면 기대감이 올라오는 게 참 싫었다. 실망할 게 뻔해서 기대하고 싶지 않았다. 선물을 주고 축하해주는 것도 기브엔 테이크로 계산하는 게 피곤했고 차라리 안 주고 안 받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했다.
또 생일이 되면 1년에 한 번 밖에 없는 특별한 날이라는 의미부여를 하게 되면서, 특별한 날로 보내야 할 것 같은 부담도 있었다. 여느 보통의 날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보낸다면 괜히 우울해지는 기분이었다. 특별한 생일이 아니라 초라한 생일이 되는 것 같았고 동시에 나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초라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나한테 생일은 기쁘고 즐거운 날이 아니라 잔뜩 예민해져서 작은 일에도 서운해지고 신경질이 나는 그런 날이 되어버렸다. 남자친구와 연애한 지 올해 6년 차가 되어 가는데 유독 생일날에 예민해지는 나를 파악하면서 아마 눈칫밥을 배부르게 먹었을 것 같다. 생일이 되면 나도 모르게 짜증을 부리고 싸우는 날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매년 생일마다 신경질을 내고 그런 건 아니었다(그 정도로 성격파탄자는 아니라고 말해두고 싶다).
어쨌든, 생일날에 더욱 못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속상하기도 하고 자책하는 날도 많았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기대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고 작년 생일에는 남자친구로부터 전보다 훨씬 상태가 나아졌다는 칭찬(?)도 듣게 됐다. 그래서 이번 생일이 왔을 때는 아예 전날 밤부터 정신무장을 했다. 하나님 앞에 찌질한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나의 생각과 마음, 영혼을 지켜달라고 기도하면서 잠이 들었다.
사실 생일은 기쁘고 감사한 날인데 내가 전혀 감사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을 때 오늘도 새 날을 주심에 감사하다는 말을 소리 내어 크게 말했다. 기도하고 잤지만 분명 오늘은 나도 모르게 기대하는 마음이 들 것이고, 순간적으로 서운한 마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의식적으로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밤부터 시작해서 아침을 감사로 맞이하니, 아침밥을 먹을 때도 감사하게 됐다. 공교롭게도 전날에 지방에 사는 친한 친구가 시간이 가능하냐고, 마침 휴가를 냈다고 해서 생일날에 점심을 같이 먹게 됐다. 남자친구도 마침 쉬는 날이어서 오후부터 만나서 데이트를 즐겼다.
생일에 특별한 의미 부여를 안 하려고 했지만, 친한 친구와 또 애인과 함께 보낼 수 있어서 더 즐겁고 기뻤다.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듯이, 나를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온종일 함께하니 생일을 더욱 알차고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카톡 생일 알람도 한몫했다. 작년에 생일 알람 설정이 있다는 것도 친구가 알려줘서 알게 됐는데, 이번에는 생일 알람을 켜놓으면서 생각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축하를 받게 됐다. 단단히 마음을 무장했는데 작년에 비해 상황이 좋았다고 할까. 남자친구에게 작년보다 내면이 성장한 것 같다고, 이번 생일에는 우울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작년보다 축하를 많이 받았다는 걸 알아서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내년에는 어떤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참나 원.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정말 단단해지고 성장했는지, 상황이 좋으니까 성장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이번 생일을 보내며 크게 깨달은 마음가짐이 있다. 내가 그동안 생일을 보내며 마음이 괴로웠던 이유는, 누군가로부터 받으려고 했고(축하든 선물이든 뭐든) 특별한 날로 보내려 했으며,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으로 옹졸한 생각에 갇혀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생일은 우울한 날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생일은 내가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감사를 표현하는 날로 생각하며 작은 일에도 감사하려고 했더니, 더 기쁘고 즐거운 생일로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 땅에 '나'라는 존재를 태어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지금까지 나를 키워주시고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날이었다. 생일은 내가 무언가를 받는 날이 아니라 주변에 베푸는 날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생일을 다르게 보낼 수 있었다. 물론 ‘나’라는 존재가 한순간에 변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조건 없이 베푼다는 것도 어렵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진정 감사하게 된다면 베푸는 것도 의무가 아니라 기쁨으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생일은 내게 우울한 날이 아니다. 생일은 그저 나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날이다. 덧붙여서 나의 존재는 생일뿐 아니라 하루하루 보내는 매일의 삶이다. 매일을 생일처럼 보낼 수 있다면 어떨까.그럼 하루하루 감사하고 특별한 날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