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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Oct 24. 2021

그냥 한번 졸작을 내보자

거창한 마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글의 제목에서 쓴 '졸작'이란 단어는 졸업작품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옹졸할 졸에, 지을 작으로 솜씨가 서투르고 보잘것없는 작품이란 뜻의 졸작(拙作)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우습게도 그 '졸작'을 한번 내보자고 말하고 있다.




몇 달 전,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었다. 작법서를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소설가여서 그런지 글쓰기에 대한 얘기를 지루하지 않고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책 쓰기에 대한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유익한 책이었다. 그중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을 공유한다.


형편없는 책을 발표해서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까 봐 무서워서 책을 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분께는 세 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 책을 쓰지 않고 계속 후회하며 사는 것. 둘째, 졸작을 내고 후회하는 것. 셋째, 멋진 책을 쓰고 후회하지 않는 것. <책 한번 써봅시다> p60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치 작가가 나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놀랐다. 나는 형편없는 책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에세이라고 쓴 글이 누군가에겐 내용 없는 일기장 같다고 비난받기도 싫었다. 9명이 좋다고 칭찬해줘도 1명이 내 글이 별로라고 지적한다면 상처 받을 것 같아서 겁이 났다. 기껏 돈 주고 책을 샀는데 돈 아깝다고 얘기하는 건 아닐까, 내가 쓴 책이 과연 남들이 돈 주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하면서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이건 슬프게도 주관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조금 느리게 가는 중입니다> 원고를 완성하고 부푼 마음으로 약 140군데 출판사에 투고를 했었는데, 기획 출간(출판사 측 비용 부담)을 제안해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내 글이 특별한 개성도, 시장성도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투자할 정도의 가치는 없는 글이라고 할까. 내가 써놓고 팩트 폭격기를 맞은 기분이다. 심장이 아프다.




그래도 어쨌든 내가 내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부크크에서 소장용으로 만들었고, 그걸 바탕으로 퇴고를 거쳐서 판매용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현재는 소장용에서 멈춘 상태다. 적어도 책 한 권이 나오려면 3~4번은 퇴고를 거쳐야 한다고 하는데, 4월에 만들어놓고 여태 퇴고 한 번을 못했으니 내가 봐도 참 게으르다. 


나를 열렬히 응원해주시는 큰아빠는 언제 책을 내냐며 재촉을 하셨는데, 그때마다 내가 대답하는 날짜는 미뤄졌고 하기 싫은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부담이 컸다. 그런데 사실은 게을렀던 이유가 하기 싫고 귀찮아서 그랬던 게 아니라 이 책을 내는 것이 과연 맞을까 싶은 마음에 확신이 들지 않아서 미루고 미뤘던 것이다. 


원래의 계획은 6월 안에 완성을 하는 거였지만, 6월에 취업하게 되면서 직장 생활 적응이 삶의 1순위가 되었고 글쓰기는 밀려났다. 그렇게 잠시 밀리는가 싶었는데 직업상담 자격증 공부를 7월에 시작하면서 도저히 글쓰기를 같이 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고 10월 중순까지 퇴근 후에 자격증을 공부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정성과 노력을 담아서 만든 한 권의 책은 어느새 책장 어딘가에 꽂혀서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자격증 시험이 끝나고 보니 벌써 10월 중순이 지나고 11월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이젠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다시 내가 이 책을 내는 게 과연 맞을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는데, 5월에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으면서 졸작을 한번 내보자고 웃긴 다짐을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멋진 책을 쓸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괜찮은 책이라고 확신이 든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 확신은 과연 언제 생기는 걸까? 생기긴 하는 걸까?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육아에 일도 병행하면서 찌들어 살다가 내가 책을 내려고 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할머니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이건 아니다. 아니 될 일이다. 


책을 쓰다 보면 마음에 드는 책도 나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책도 나오기 마련이지 않을까. 어떻게 모든 작품이 내 마음에 쏙 들 수 있겠는가. 그건 내가 생각해도 욕심이 과하다. 게다가 나는 아직 책을 내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고 있다. 그러니 그냥 졸작을 내자. 첫 책이라는 것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면 부담감이 생기니까 아예 졸작을 내보자. 생전 책 한 권 내보지도 않고 언젠가 대작이 완성될 거라고 꾸는 꿈은 개꿈이고 망상에 불과하다. 마치 아무것도 심지 않은 땅에 언젠가 싹이 날 거라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농부와 같다고 할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당장 멋진 책을 쓰는 것보다 책을 쓰면서 조금씩 멋진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처음 내는 책이 졸작이라고 해서 두 번째, 세 번째 책이 계속 졸작이진 않을 것이다. 아마 책 두께만큼, 적어도 1cm씩 성장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후회하더라도 그냥 한번 졸작을 내보련다. 책을 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테니까.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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