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앉았다. 글을 쓰고 싶은데 잘 쓰고 싶다는 부담 때문인지, 글이 써지지가 않는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뇌가 정지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글쓰기 강의를 듣고 의욕을 빵빵하게 충전해서 거침없이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강의는 강의였고 나는 나였다. 결국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써야 하는 건, 나 자신이었다.
책 출판 프로젝트에 참가한 지 벌써 6주 차에 접어들었다. 9주 차면 끝이 나는데 여전히 목차에서 헤매고 있다. 나는 대체 무슨 책을 만들고 싶은 걸까. 작가 멘토님은 계속 구체적으로 작성을 하라고 하신다. 그 피드백을 지난주까지 들으면서(주 1회 글 2편을 제출하고 피드백을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 작성하려고 노력하는데 돌아오는 피드백은 더 구체적으로 작성하라는 말이었다. 어떤 부분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작성하라는지 알려주셨음에도 그 부분을 더 구체적으로 작성할 말이 내 안에는 없었다. 그러니까 한계를 직면했다.
책 출판을 목표로 시작하기 전에, 글쓰기는 즐거움과 귀찮음이 공존하는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즐거움이 점점 줄어들고 하기 싫은 마음과 고통이 커져가고 있었다. 글쓰기를 하면서 느낀 것은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마냥 즐거울 수만 없다는 것이다. 글이 써지지 않아서 혹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소재가 마땅히 없어서 노트북을 열기가 싫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글을 아예 갈아엎어야 한다거나 마감까지 글을 완성해야 하는 건, 글쓰기에 따라오는 고통이었다.
나도 작가님이 피드백을 주신대로 더 구체적으로 쓰고 싶었다. 나만의 감성을 듬뿍 담고 내 글을 읽을 때 머릿속에서는 그림이 그려지면서 흡입력 있게 빨려 들면서 그다음 내용이 궁금하고 재밌어지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지금 내 수준에서는 그게 안 된다는 걸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건 마치 이제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아기가 100미터 달리기를 하려고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내 수준보다 뛰어난 글을 쓰려고 하면, 결국 돌아오는 건 자괴감뿐이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나도 잘 쓰고 싶은데, 하는 생각들. 그런 생각들을 허용하면서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욕심을 내려놓고 내 수준을 인정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는 이제 시작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기에 느리더라도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술술 쓰겠지.
내가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는, 글을 쓰는 시간이 내가 살아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쓰고 나면 온 몸에 힘이 쭉 빠지고 녹초가 될 때도 있다. 요즘에는 후자가 더 많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게 나의 생각과 감정을 모아서 글에 담고, 그 한편이 완성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글을 쓰나 보다.
지금 나는 글이 써지지 않아서 글을 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