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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Oct 24. 2020

나를 괴롭히는 소리와 싸우며

당이 떨어진다. 요즘 웬만하면 야식은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글도 쓰기 싫고 뭔가 계속 먹고 싶은 마음을 못 이겨서 쿠키를 한 개 먹었다. 오곡쿠키. 엄마가 사 오셨는데 고소하고 맛있다.


글쓰기는 순전히 내가 좋아해서 시작했다. 그래서 브런치의 문도 두드리게 되었고 이 공간에서 글도 쓰게 되었다. 글을 쓰는 시간이 좋았다. 나의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정리되고 깊어지며 넓어지는 시간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서 쓴 글이 다른 누군가의 공감을 얻거나 위로가 되었을 때, 무척 기쁘고 뿌듯했다. 단어와 문장이 머릿속에서 통통 튀어 오르며 떠오르는 순간도 재밌었고 그것을 열심히 굴려가며 내가 마음에 드는 글을 썼을 때 행복했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은 글 쓰는 일 밖에 없는지라, 주위 사람을 만나면 얘기할 게 '글쓰기'말고 없었다. 이렇게 좋은 점이 많으니까 너도 글을 써보라고 했다. 내가 글을 쓰면서 좋았으니까 그렇게 말한 거였다. 글 한편 쓰고 나면 성취감을 느꼈고 뿌듯했으니까. 어제 자기 전만 해도 분명 그랬는데, 아니 오늘 저녁 먹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갑자기 글이 쓰고 싶지 않았다.


문득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백수 8개월이 넘었다. 주위 친구들은 나 빼고 다 일하고 있는데 나만 멈춰있는 것 같았다. 스물일곱, 늙은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린 나이도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는 스물일곱도 끝나가고 있다.


내년에 결혼을 한다는 친구도 있었다. 일을 하면서 이직 준비를 하는 중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처럼 공백을 두지 않고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선배도 있었다. 스물일곱 나이에 내가 내세울 건,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한 1년밖에 없다. '지금까지 나 뭐했지?'라는 생각이 다시 머리를 든다.


갑자기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쓰고 싶지 않다. 게다가 이 공간에는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라이킷도 구독자도 어마어마한 작가님들이 많다. 내가 쓰는 글이 더 작아 보인다. 책으로 내면 '누가 읽긴 하겠어?' 하는 생각이 몰려온다. 글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문장을 굴리는 머리는 멈춰버렸다.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앞이 막막해지고 깜깜해졌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내가 좋아서 시작했던 글쓰기가 나를 괴롭게 만든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소리에 주저앉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내 마음을 쓴다. 애초에 누가 알아주길 바래서 글을 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계속 욕심이 생기고 더 잘 쓰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사실 글쓰기가 나를 괴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괴롭게 만든다. 내가 나를 괴롭힌다. 끊임없이 비교하며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것도 바로 내가.


이다혜 작가님이 쓴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의 마음 깊숙이 새긴 문장을 끌어올렸다. 그것은 바로 "나는  글의  독자다"라는 말이다. 남이 읽어주는 것은 그다음의 행복이라고 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껴질 때까지, 그렇게 내가 단단한 사람이 될 때까지 나를 괴롭히는 소리와 싸우며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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