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릭 May 24. 2024

열등감에 짓눌릴 때

저마다 피어나는 시기가 다르다

뉴질랜드에서 워홀러의 삶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땐, 일단 푹 쉬었다. 쉬면서 슬슬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했던 고민은 아니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늘 있었다.


뉴질랜드에선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면서 마음이 힘드니 글도 안 써지는 한편,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더더욱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쉬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면서 사는 사람들을 유튜브에서 보는데, 나는 하고 있지 못하는 것을 그들은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부러웠다. 자신이 이룬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새롭게 도전하며 성과를 이뤄낸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물론 나도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과감하게 워킹홀리데이라는 도전을 했고 내적으로 많이 성장했지만, 이렇다 하게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었다. 솔직히 커리어 측면에서 보면 내세울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예쁘고 잘난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배도 아프고 열등감이 증폭됐다. 나는 저 나이에 뭘 한 걸까, 하면서 과거를 후회하는 마음도, 나를 자책하는 마음도 자꾸 들어서 괴로웠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내 나이보다 더 젊은 나이에 그 도전을 시작한 것을 보면, 조급한 마음이 들고 뒤처지는 기분이었다.


이놈의 열등감. 아주 어릴 때부터 나를 괴롭혔던 감정이다. 누군가 열등감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알려주는 감정이기 때문에, 이 감정을 적극 활용해서 건설적인 사고를 해보라고 했다. 글쎄, 이 감정에 오랜 시간 짓눌리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다.


나의 경우 열등감은 나를 갉아먹고 과거를 후회하게 만들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내가 이루었던 성과도 남과 비교하면서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나도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동네에서 하는 걷기 교실에 참여하게 됐다. 지난주에 처음 그곳에 갔는데, 대부분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이 참여하셨다. 아주머니 세 분이 모여서 수다떠는 것이 들렸는데 "젊은 사람이 여길 오겠어?" 이러시다가, 내가 온 것을 신기하게 보시고 "젊은 사람도 오네~"하면서 멋쩍게 웃으셨다. 


평소 걸음걸이가 팔자인 데다 골반 불균형에 허리도 좋지 않아서 오래 걸으면 허리와 골반이 아팠다. 그래서 쉬는 김에 한번 가서 배우자 싶었던 건데, 그중에서 내가 최연소가 될 줄은 예상하지 못해서 조금 당황했다. 혼자만 유독 튀는 느낌이 뻘쭘해서 잘못 왔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싶어서 앞에서 강사님이 알려주시는 동작들을 열심히 따라 했다.


옆에 계시는 할머니는 나를 보시고 젊어서 좋겠다고 부러워하셨다. 그 말씀에 "젊을 때 관리하려고요~"라고 웃으며 말하자, 자신은 그러지 못해서 지금 한다고 하셨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늦었다고 생각하는 이 시점이 누군가에겐 가장 빠른 때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성공을 이루고, 나보다 더 일찍 도전한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마다 다른 나무들이 잎사귀를 피어내고 있었다. 어떤 나무는 이미 잎사귀가 풍성한데, 어떤 나무는 이제 막 싹을 피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 마음에 위로와 울림을 주었다.



우린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내고 있다. 비슷한 사람은 있을지언정, 같은 삶은 하나도 없다. 80억 인구에겐 80억 사람들의 삶이 저마다 있다. 지금 내가 조금 늦은 것 같다고 열등감을 느끼는 게 하등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피어나는 시기가 다를 뿐, 늦은 게 아닌데 말이다.


5월에 피는 장미가 4월에 피는 벚꽃을 보면서 "얘, 너는 나보다 빨리 펴서 부럽다. 나는 5월에 피는데, 나는 왜 너보다 늦게 필까? 아무래도 나는 너보다 못한 꽃인가 봐. 흑흑."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면 벚꽃이 얼마나 어이없고 웃기겠는가. 장미 중에 그런 생각을 하는 장미가 있다면 참 우습다고 생각할 것이다.


꽃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은 어떠한가. 꽃보다 더욱 섬세하게 창조된 것이 사람이다. 당연히 피어나는 시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사회가 규정해 놓은 기준에 나를 옭아매지 말자. 세상에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말에 흔들리지 말자. 각자 피어나는 시간표가 다르다.



열등감에 짓눌리고 있다는 건, 나에 대한 만족이 없다는 것이고 결국 삶 속에 감사가 없다는 것임을 찬양 <은혜>를 들으며 다시 깨달았다. 당연한 것은 없고 내가 살아있음만 해도 감사인데 그 점을 놓치고 있었다.

https://youtu.be/pZuW2CV0mXY?si=fWH1WRXQye5PNY0z



내가 걸어왔고, 앞으로 걸어갈 길도 주님의 은혜이기에 이제 나는 열등감에서 벗어날 것이다. 아니, 이미 벗어나고 있다. 길고 길었던 어두운 터널을 나오는 중이다. 나는 나만의 피어나는 그때를 믿고 나만의 길을 간다. 늦은 것이 아니고 저마다 피어나는 시기가 다를 뿐이다. 가장 좋은 때에 이루실 그분을 믿는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살리는 묵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