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백수가 되어 좋은 점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아침잠이 많았던 내게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출근길은 늘 피곤했다. 조금 더 자고 싶은 날은 아침밥을 포기하고 늦장을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더는 출근을 위해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할 이유가 없어졌다. 자고 싶은 만큼 마음껏 잘 수 있었다. 2월 중순쯤에 퇴사했고 코로나 19로 인해 해외여행은 물거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아무 계획이 없었던 나는 마냥 늘어져서 푹 쉬려고 했다.
그런데 지인의 제안으로 독서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쉬려고 했지만, 시간도 많겠다 딱히 계획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참고로 역류성 식도염 걸리기 전이었다)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딱 한 번 참석해서 정말 구. 경. 만 할 생각이었다. 독서 모임의 진행은 각자 맡은 책을 요약하고 발표하는 방식이었는데 그리 어렵게 보이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저 정도면 해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살며시 들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독서 모임을 시작으로 영어공부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서 토익스피킹을 공부했다. 예전부터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멋져 보였고 나도 영어 회화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토익스피킹을 하게 된 것인데, 영어란 자고로 가깝고도 먼 존재라고 했던가. 학교 다닐 때는 어떻게 배운 건지 오랜만에 영어를 공부하려니 머리에서 쥐가 났다.
암기해야 할 표현들은 너무 많은데 입 밖으로 영어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아쉬웠고 좀 더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스터디와 별개로 환급반 강의를 결제했다. (미션을 수행하면 환급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결제하는 순간에는 나를 과대평가했다) 그런 와중에 유튜브를 보다가 영화로 배우는 영어 회화 온라인 스터디 모집을 발견하게 되었고 왠지 이거면 더 재미있게 영어공부를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참가비를 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는 영어에 꽂혔나 보다.
결과적으로는 토익스피킹에다가 영화를 보며 영어회화도 함께 공부하려니 너무 벅찼다. 어느새 회화를 위한 공부보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꾸역꾸역 공부했다. 영화로 배우는 영어회화는 그나마 재미있었는데, 그에 비해 토익스피킹은 공부하면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목표만 있을 뿐, 이 공부를 정말 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없다 보니 점점 의욕이 사그라들었고 나중에는 토익스피킹 책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모자람도 문제였지만 지나치게 과한 것도 문제였다. 오랫동안 안 했던 영어공부를 욕심내서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고 했더니 진이 빠져버렸다.
회사에 다닐 때는 퇴근하면 녹초가 되었고 집에 와서 쉬기 바빴기 때문에 따로 무언가를 하려는 생각도 못 했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퇴사를 하고 휴식기를 가지면서 어디 놀러 갈 상황은 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자기 계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진짜 공부를 해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SLOWLY’라는 앱을 깔아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영어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영작 실력도 완전 초급이어서 거의 대부분의 편지 내용은 번역기를 돌렸고 나중에는 시들해져서 삭제했다. Say. Good bye my friends.)
나는 내성적인 성향이 더 강해서 혼자서 충전하는 시간이 꼭 필요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고 소통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함께하는 것도 선호했다. 또 혼자서는 지속하기가 어려웠는데 함께하면 어떻게든 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독서모임은 두 달 정도 함께하면서 그동안 손에서 놓았던 책을 다시 잡고 읽게 되는 습관이 만들어졌다. 토익스피킹 스터디 모임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던 영어공부의 열정은 비록 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아쉬움은 없다. 당분간 영어공부는 하지 않을 예정이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봄에 시작했던 글쓰기 모임은 어느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임이 되었다. 물론 백지상태에서 글을 써야 하는 창작의 고통은 있었지만, 그 시간마저도 즐거웠다. 힘겨운 즐거움이라고 할까. 셋이서 각자 써온 글을 돌아가면서 읽을 때는 내가 써온 글을 발표하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했고(글의 수준과 상관없이 써왔다는 자체로!) 당시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글로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신선하고 재밌었다. 모임을 함께하는 두 사람의 속생각을 살펴보고 특유의 문체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의 격상과 각자의 사정으로 글쓰기 모임은 쉬게 되었지만, 간간이 서로의 근황을 소통하면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땐 몰랐지만 모임을 통해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따스함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얻은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혼자서 글을 쓰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원하는 대로 글이 써지지 않아 글을 아무렇게나 끄적이는 날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혼자서도 쓸 수 있게 된 건 함께했던 글쓰기 모임 덕분이다. 서로의 글에 관심을 가지며 경청하고 격려했던 시간이 쌓여서 더욱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며, 혼자 혹은 함께의 즐거움을 오늘도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