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에 관하여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방에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주면서 주변을 청소하거나 옷을 정리하는 것이다. 늘 그렇듯이, 여름과 겨울은 갑작스러운 느낌이다. 아마 봄과 가을이 갈수록 짧아져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여름도 겨울도 반갑지 않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워서 따뜻한 봄이나 선선한 가을이 좋다. 어쨌든, 올해도 반팔은 다 입어보지 못하고 긴 팔을 꺼내야 했다.
약간은 아쉬운 마음과 함께 하기 싫은 귀찮음을 이겨내고 옷 정리를 시작했다. 정리할 때 보면, 옷이 참 많은데 막상 입으려고 할 때는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옷 정리 1부를 힘겹게 마치고 잠시 앉아 쉬면서 어떻게 하면 정리를 더 깔끔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유튜브에 ‘옷 정리’를 검색해봤다. 그러다 우연히 미니멀라이프를 실천 중인 어떤 사람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집안일이 하기 싫어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는 그녀는 옷이나 물건을 비워나가면서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생각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옷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팁을 얻으려고 검색했던 것인데, 그분이 만든 영상을 보면서 내 삶을 돌아보는 작은 계기가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버리는 걸 잘 못했다. 음식도 웬만하면 남기지 않고 다 먹으려고 했고, 누군가한테 선물을 받으면 그 포장지까지 보관하곤 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초등학생 때 빼빼로 데이 때 친구와 빼빼로를 주고받았는데 포장지에 친구가 적어놓은 메모가 있어서 편지를 보관하는 상자에 함께 보관했었다. 그렇게 자잘한 물건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다 보니 내 방은 점점 골동품(?)이 쌓여가서 금방 지저분해졌다. 불필요한 것을 왜 보관했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되지만 그 당시 내게는 보관할 가치가 있었나 보다.
이렇게 말하면 지금은 물건 정리를 잘하고 내 방이 깨끗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반전!) 청소는 오래 걸리는데 물건을 어지르는 건 금방이다. 제자리에 놓으면 될 텐데 그게 쉽지 않다. 엄마는 내 책상을 보면 매번 감탄하신다. 어지르기 달인이라며. 그래도 양심껏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청소한다. 가끔 대청소도 하는데 생각지 못한 물건이 나오면 나는 이걸 왜 보관하고 있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수집가적인 기질이 있는 나에게 방청소와 옷 정리는 여전히 난코스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침대 밑 깊숙이 보관해둔 상자를 하나씩 꺼내서 옷을 정리하는데 그때마다 올해는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 꼭 튀어나온다. 아 맞다, 이게 있었지. 그러고 보니 올해는 한 번도 안 입었네. 내년에는 입으려나? 잘 모르겠지만 혹시 입을 수도 있으니까 보관하자. 매번 이렇게 같은 패턴으로 입지 않는 옷을 보관하게 된다. 이 옷을 버릴지, 말지 고민을 많이 하지만 ‘혹시’라는 생각 앞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다가 대부분의 옷은 버리지 않는 걸 택한다.
옷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년에는 입을 것 같아서 보관하는 옷도 있고 잘 입지는 않지만 막상 버리자니 아까워서 보관할 때도 있다. 도통 안 입는 옷인 것 같아서 버렸는데 한참 지나서 까먹고 있다가 번뜩 그 옷이 떠올라서 찾아봤을 때, 괜히 버렸다며 후회한 적도 있다. 자주 입어서 낡았지만 추억이 담긴 옷은 정 들어서 버리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부피를 꽤 많이 차지했던 고등학교 교복은 혹시 몰라서 내내 갖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버렸다. 고등학교 2학년 체육 대회 때 맞춘 반티는 아직도 잠옷으로 입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버리지 못해서 옷이 쌓였음에도 코디할 때 입을 옷이 없다는 아이러니 때문에 새로 사는 옷은 늘어난다. 옷을 좋아해서 길을 가다 마음에 드는 옷을 사거나 온라인 쇼핑으로 내가 원하는 옷을 검색해서 사기도 한다. 옷을 살 때는 기쁘지만 만족은 그때뿐이고 또다시 입을 옷이 없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사고 싶은 옷을 못 사면 미련이 남기도 했다. 버리지 못하는 옷은 쌓여가면서도 새로운 옷을 사는 심리는 무엇일까. 얼마든지 내가 가진 옷을 활용해서 코디하면 될 텐데 어딘가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 라이프는 단순히 버리고 정리하는 삶이라기보다는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애정을 갖고 아끼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 삶은 미니멀리스트보단 수집가의 삶에 가깝지만 나한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조금씩 덜어내고 있다. 종종 당근 마켓을 활용해서 가까운 이웃에게 무료 나눔을 하기도 하고 저렴한 가격에 중고로 팔기도 한다. 내가 쓰지 않은 물건을 정리하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내가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는 저렴한 가격에 득템 하기도 한다. 그렇게 감사함을 서로 주고받으며 소박한 기쁨을 느낀다. 단, 선량한 시민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도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옷을 버렸다가 후회한 적이 있다고 말했지만, 무조건 버리지 않는다고 해서 후회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전부 끌어안고 있다가 받는 스트레스가 더 클 수 있다. 일단, 옷 한번 정리하려면 큰맘 먹고 정리해야 한다. 입지도 않고 버리지 못하는 옷 정리는 에너지 낭비에, 꽉꽉 채워진 옷장에서 코디할 옷을 찾느라 시간 낭비가 되기도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이것, 저것을 다 욕심내고 끌어안고 있으면 의욕은 금방 식어버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소진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처럼 쉽게 무기력해지는 사람들은 에너지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것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복잡한 생각을 다이어트해서 단순해지길 원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옷을 버릴지, 말지 신중하게 고민한다. 그렇게 나만의 미니멀 라이프를 조금씩 실천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