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 책이 유난히 많았다거나, 부모님께서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면서 큰 건지 그런 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동화책, 만화책, 그리고 크면서 여러 가지 내가 흥미가 있는 책들을 읽었다. 책을 보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것이 만화에서 판타지적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에 빠져들기도 하고 소설이라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기도 했다. 저자의 삶을 담은 에세이라면, 책을 통해 그를 알아갈 수 있고 그의 경험을 통해 나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이렇게 살고 싶다는 꿈을 꿨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낯가림이 있던 나는 가족들과 함께 외갓집에 놀러 가는 것이 불편했다. 까칠하고 도도해서 얼음공주 같은 사촌 언니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사촌 오빠들과 남동생들이었는데 소심했던지라, 어울리는 게 힘들었다. 사촌 언니가 다정하게 나를 챙겨주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혼자 조용한 방에 틀어박혀서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책 읽기가 재밌기도 했지만, 나도 어울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외로웠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외로움이 많았다.
그렇게 꾸준히 책을 읽다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였나. 남들과 똑같이 인서울 4년제 대학교를 목표로 공부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다. '좋음'이라는 기준이 대체 뭘까. 그때 나에게 좋다는 기준은 학교 이름이었다. 이름이 알려진 학교에 가고 싶었고, 좋아했던 것을 하나하나 손에서 놓으면서 공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교과서나 문제집이 아니라 그냥 책을 읽는 시간은 아깝다고 느껴졌다. 가끔 읽어도 공부법에 대한 책을 읽거나 그마저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열심히 했지만 내가 원하는 대학은 가지 못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오히려 이름을 전혀 알지 못했던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와 달리 시간은 많아졌지만, 손에서 놓아버린 책과 다시 친해지기는 어려웠다. 그땐 내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내가 나를 놓아버린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번 연도 2월에 퇴사하면서 지인을 통해 독서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두 달 정도 했었는데, 모임은 끝났지만 이를 통해서 다시 독서하는 습관이 만들어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손에 책을 놓았던 순간에도, 도서관에 수많은 책이 꽂혀있는 모습을 보며 그 공간을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으로도 마음에 안정감을 느꼈다. 수많은 책 사이를 산책하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책을 읽지 않아도 그 공기를 음미하며 즐겼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좋아한다는 점이 책을 빠르게 많이 읽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언젠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만 현재는 속도가 좀 느린 편이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빨리 속도를 내고 싶지만, 조바심을 내려놓고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읽어가려고 한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읽어나가는 게 빠르게 후딱 읽고 끝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책 리뷰도 완벽하게 잘 쓰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나만의 스타일로 적어가려고 한다. 기록을 남기는 게 더 중요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