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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릭 Nov 30. 2020

끈을 놓지 않는 마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제목이 신선했고 나도 떡볶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무슨 내용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우울증이 걸린 사람의 이야기라는 말과 이 책을 검색했을 때 생각보다 낮은 평점, 어떤 사람의 리뷰를 읽었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고 정신없었다는 내용을 읽고 굳이 시간 내서 읽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글을 쓰면서 다양한 에세이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중 이 책도 다시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봤다면 어떤 내용일지도 궁금했다. 궁금하면 진즉 읽어보면 되는데, 주변 사람들 이야기에 선입견이 생겨서 읽으려다 말았다는 나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 애초에 주변 사람들의 평점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읽고 싶으면 그만인 것을, 팔랑귀인 나는 말 한마디에 영향을 참 잘 받는다.




어쨌거나 책 얘기로 돌아가서, 책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경도의 우울증)와 불안장애를 겪으며 정신과를 전전했던 저자가 정신과 전문의와 12주간 상담했던 기록이 담겨있었다. 책을 통해 기분부전장애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의 생각과 감정이 공감이 안 될 때도 있었지만, 나도 쉽게 무기력해지고 우울할 때가 많은 사람인지라 공감 가는 내용도 많았다.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녀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저자와 의사의 대화도 흥미로웠지만, 나는 그보다 ‘우울의 순기능’이라는 부록의 소소한 이야기가 더 재밌었다. 특히 ‘나의 이모’라는 에피소드를 읽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자신의 이모를 통해 관계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비단 이것은 가족의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크게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삶이 그저 살아남는 일이 되어버릴 때, 생존이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그 외의 모든 요소는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 그 상태로 시간은 무섭게 지나가고 결국 많은 것들이 메마르고 썩어버릴 때, 그런 상황에서도 한결같기를 바란다는 건 이기적인 바람이자 모순 아닐까. (···) 자기 자신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면 주위 많은 것들에 대한 의지도 함께 사라진다. (···) 관계에 대한 욕구를 상실하고 철저히 혼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최근 소홀해진 한 친구와의 관계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 친구가 먼저 취업을 하면서 바빠졌고 연락이 뜸해지면서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서운한 감정은 쌓였고 혼자 속병을 앓다가 얘기를 꺼냈을 때, 그 친구의 미안함과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져서 이해했고 풀렸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관계가 예전처럼  다시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그 일은 또다시 반복되었고, 내가 먼저 카톡을 보내면 (나는 전화보다 카톡을 선호한다) 친구의 답장은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개월이 흐른 뒤에 왔다. 보고 싶다고, 만나자는 말에는 반응이 없는 걸 보면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예전처럼 얘기할 수 없었다. 정말 나를 만나고 싶지 않은 걸까 봐 겁이 나서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부담스럽게 했나, 잘못한 게 있나?’ 오만 생각을 했다.


나와 만남을 피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그 친구가 소중하고 함께했던 추억이 소중해서 오래 관계를 이어가고 싶었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생각에 서글프고 씁쓸했다. 지극히 나만의 생각이길 바랐지만, 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이모의 삶을 떠올리며 이해하려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 친구가 한결같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내 입장에서는 지금 자신의 상황이 어떻다고, 너를 만나고 싶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니까 이해해달라고, 한마디 말이라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건 지극히 내 입장일 뿐이다.


친했던 친구가 멀어지는 건 서글프고 힘든 일이다. 그래도 내가 그 친구를 미워하지 않고 그러려니 이해하고 넘어가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덜 힘드니까. 저자는 ‘끈을 놓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끈을 놓아야만 할 때가 오는 것 같다. 함께했던 추억은 뒤로 하고, 계속해서 올라오는 씁쓸함은 삼키면서.






올해 9월 27일에 작성했던 글을 다시 읽고 수정하면서, 내 마음을 돌아보았다. 친한 친구가 점점 멀어졌을 때, 씁쓸하고 힘들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 친구의 자세한 사정도 모르면서 한결같기를 바라는 건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처음  글을  후로 벌써  달이 흘렀는데, 멀어진 관계에 대해 예전보다 덤덤해진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그 친구한테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에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가 나의 존재를 별로 가치 없게 생각한다고 해서 내가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었다. 다소 오글거리지만 나는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이미 나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멀어지는 관계에 하염없이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생각이 들어올 때마다 끊어내고자 기도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끈은 놓지 않았다. 멀어진 관계의 미련이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친구가 정말 힘들고 여유가 없어서 관계에 대한 욕구를 상실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가 여유가 생겨서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면, 나는 기꺼이 두 팔 벌려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마음 한 구석은 남겨놓으려고 한다. 소중한 사람이 쉬다 갈 수 있도록 여유를 가지고 내 마음의 그릇을 조금씩 넓히고 싶다.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끈을 놓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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