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소중했던 것들>, 이기주 산문집
이 책의 저자가 썼던 <언어의 온도>를 먼저 읽었는데, 문체가 따뜻하고 단어 하나하나를 고민해서 소중하게 사용한다고 할까. 그러한 것들을 느껴서 이 책 또한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글을 읽어 가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도 따뜻해지고 잔잔해지는 순간이 많았다. 나는 그중에서 "어둠을 매만지는 일"이라는 에피소드를 꼽아봤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할 때 자정부터 오르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낮에 기온이 올라서 눈이 한꺼번에 녹아내리거나 하면 눈사태를 겪을 확률이 밤보다 높아지거든요. 거봉(巨峯)을 오르기 위해 밝은 대낮보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에 더 많이 걸었던 것 같아요. 매번 어둠을 건너갔습니다.”
그가 에피소드에 실은 어느 산악인의 인터뷰를 보면서 마음이 뭉클했다. 어쩌면 산을 등반하는 일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일이다.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묵묵히 올라가는 그 일은 빛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 산악인은 매번 어둠을 건너갔다.
문득 등반을 하는 사람들의 목표는 과연 산의 정상에 올라서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혼자 한 적이 있다.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올랐다가 내려가고, 느끼는 모든 것이 등산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까 인생도 희로애락이라고 하듯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인생이다. 빛의 존재 또한 어둠이 있기에 유의미하다.
어둠의 시간이 고통스럽고 슬픈 것은 사실이다. 도대체 언제쯤 이 시간이 끝날까 그 끝을 알 수 없는 막연함에 좌절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보낸 후에 얻는 기쁨과 행복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둠의 시간 속에서 더욱 단단해질 테니 말이다.
끝으로, 마음의 잔잔한 울림을 남겨주었던 에피소드의 마지막 문단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때론 어둠 속을 걸으면서 손끝으로 어둠을 매만져야 한다. 어둠을 가로지를 때 허공으로 흩어지는 어둠의 파편들을 한데 끌어모아, 현미경 들여다보듯 어둠의 성질을 치밀하게 알아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우린 빛으로 향하는 출구를 발견할 수 있다. 어둠을 직시할 때만 우린 빛을 움켜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