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글 쓰기 - 1부
저의 큰 딸인 스텔라는 책 읽기를 좋아합니다. 하루 종일 책만 읽으라 하면 가장 행복하다 합니다. 책 종류를 따로 정해두진 않습니다. 동화책부터 시작하여, 잡지, 교과서 등등 손에 잡히는 책은 어떤 책이든 다 읽습니다. 요즘 들어 셰익스피어 작품집을 한 권씩 선물해 주었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장 재밌게 읽더라고요. 책을 읽는 것도 엄청 빠릅니다. 5권을 읽는데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으니 말입니다. 좀 두꺼운 어린이 대상 소설책도 30분이 안 걸리는 듯해요. 제가 읽어보아도 1시간 넘게 걸리는 책인데 말이에요.
책을 읽는 걸 좋아하다 보니 가끔 아침에 학교 등교시간이 지났는데도 책 읽는데 정신이 팔리는 경우도 종종 있어 엄마에게 혼날 때를 보면, 그만큼 책 읽는 걸 좋아한단 생각을 보니 한 편으론 흐뭇하기도 합니다. 아마 스텔라는 책보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차를 타며 어떤 음악을 들을지 물어보면 구연동화나 어린이 드라마 같은걸 듣고 싶다고 합니다. 가끔 아빠가 쓰는 글 내용을 이야기를 곧잘 듣곤 합니다. 4 ~ 5살 때는 욕조에 앉아서 아빠가 쓴 동화 읽어주는 걸 아주 좋아했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 7살쯤 되니 게임 "드래건 퀘스트"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아했지요. 하진이가 좋아하는 "드래건 퀘스트 빌더즈"라는 게임도 어찌 보면 이야기 큰 틀은 정해져 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만들어질 수 있으니 그게 좋아서 여러 번이고 플레이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텔라는 일기 쓰기를 가장 어려워합니다. 날씨를 적고, 제목을 쓰고 나면 그다음부터 일기를 쓰는데 고민을 하는 시간이 1 ~ 2시간은 훌쩍 지납니다. 어쩔 땐 제목만 쓰고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할 때도 많습니다.
"아빠.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
사실 일기가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쓰는 목적도 있지만, 하루를 마무리하고, 짧은 에세이를 쓰기 위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관문이기도 하니 초등학생 시절에는 일기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그래도 그림일기라서 2 ~ 3줄의 문단만 생각하면 끝이었지만, 초등학교 2학년이 되니 한 페이지 정도의 일기를 서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히 컸던 거 같습니다. 분량도 문제이지만,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고민이 앞섰던 것이지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일기 쓰기를 부담스럽게 생각했던 게 사실입니다. 학교 다니던 시절,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일기도 잘 쓰고, 일기를 잘 쓰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 했는데 스텔라와는 딱 맞게 적용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스텔라는 적어도 다니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 중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고 대출도 많이 하는 아이이니, 그 이론대로라면 분명 글을 잘 써야 맞겠지요. 당연히 일기도 잘 써야 하는 게 맞는데 일기장을 펼치며 항상 고민만 하니 그 부분의 이유를 찾아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1. 글을 읽을 때 너무 빠르게 속독을 한다.
스텔라는 책 한 권을 10분 만에 읽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땐 주위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하며 책을 읽지요.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10분 만에 읽는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어에서 문장으로 이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의 주요 이미지를 상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읽곤 하였지요. 대강의 줄거리와 내용은 기억하였지만, 세부 이미지에 대해서는 대강 훑으며 보다 보니, 놓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성향은 일기를 쓰는데도 많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하루의 일을 상상하며 글로 표현해야 하는데, 글이 만들어내는 상상력에 대해 고민을 해도 머릿속에 이미지가 떠오르긴 하지만, 그 이미지가 다시 단어와 문장으로 연상이 되는 작업으러 이어지지 않는다는 한계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2. "왜?"와 "어떻게?" 그리고 "어디서"라는 질문을 하지 못한다.
스텔라와 영화 "아바타"를 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용산 IMAX는 스텔라도 처음 경험한 충격이었지요. 그리고 영화 "아바타"가 만들어낸 3D 이미지는 정말 황홀할 정도의 충격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정말 눈 앞에 있는 현실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3시간 넘는 시간 동안 아빠와 둘이서 영화를 보며 팝콘과 자몽에이드를 함께 먹는 경험은 멋진 추억이 될 겁니다.
집에 돌아온 뒤, 스텔라에게 오늘 본 영화에 대해 일기 주제로 써 보는 건 어떨지 이야길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스텔라는 영화 "아바타"를 보았다는 내용까지는 적었으나, 그 이후의 내용에 대해서는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빠가 생각하기엔 영화 "아바타"줄거리만 가지고도 분명 한 페이지 넘게 글을 쓸 것 같았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왜 영화를 보았지?"라는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당연히 아빠가 같이 영화 보자고 했으니까."
그다음 질문은 "어디서 영화를 보았지?"였습니다.
"음... 아빠와 차를 타고 멀리 극장에 갔는데..."
그럼 그다음 질문은 "어떻게"겠지요.
"당연히 극장에 앉아서 3D 안경을 끼고 보았지."
벌써 일기 내용에 절반을 쓸 수 있는 내용이 나왔는데, 그 내용을 연결하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3. 일기로 쓸 만한 주제를 찾지 못했다.
아버지가 장손이셔서 그랬는지, 한 달에도 한두 번식 제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일기장에는 늘 제사 이야기를 많이 적곤 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볼 때마다 선생님은 "너희 집은 매일 제사니?"라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아마 선생님이 보시기엔 일기 쓰기 귀찮으니 제사 이야기만 쓰는 게 아닌가 오해를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요즘이야 제사라는 것도 정말 특별한 이벤트이니 일기를 쓰기 정말 좋은 주제가 될 수 있지요. 그러나, 제가 어렸을 땐 제사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일상적인 이벤트였기 때문에 일기에 제사를 주제로 쓰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냥 일상인 이야기였죠.
제사를 일기로 쓰는 내용은 항상 비슷했습니다.
엄마가 음식을 만든다.
그리고 상 위에 많은 음식을 올려둔다.
그리고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절을 한다.
마지막으로 음식을 먹고, 아버지는 술을 한 잔 하신다.
그러고 나서 제가 쓰는 일기는 보통 이런 내용이었지요.
오늘은 할아버지 제사였다. 엄마는 여러 음시를 만들었고, 가족들이 모여 절을 한 뒤 음식을 먹었다. 참 즐거웠다.
그나마 제사는 저에게 특별한 이벤트였지만, 일기로 쓸만한 이벤트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기를 쓸 만한 내용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지요. 어떤 일이든 항상 벌어지는 일이니 "왜?"라는 질문을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스텔라는 일기를 쓰기 참 어려워했습니다. 그러다 마침,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에서 진행한 음악회가 있어 가족들과 함께 공연을 가게 되었습니다. 동화책을 읽으며, 그 주제에 맞는 창작 음악을 듣는 것이 그 주제였지요. 대략 공연은 저녁 9시쯤 종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사서 집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함께 분식을 먹으며 잠이 들며 마무리를 합니다.
이 이야기를 가지고 저는 스텔라에게 일기를 써 보도록 했습니다. 그 일기를 쓰는 내용을 하나씩 따라가 보면 어떻게 아이들에게 글 쓰는 것을 지도하는 게 좋을지 이해하게 될 것 같습니다.
1. 일기를 쓸 만한 적당한 주제를 고를 것
스텔라에게 일기를 쓰기 전에 한 가지 "주제"를 정하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실 그날은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점심때 잠깐 동생과 TV를 보려 했는데 전기 누전으로 TV의 어댑터가 터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전에는 아빠와 같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기도 했지요. 그럼 이 날 쓸 수 있는 주제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공연 / TV가 고장 난 날 / 도서관 간 날
그중에서 스텔라에게 가장 마음에 주제를 정해보도록 했습니다. TV가 고장 난 것도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느낌을 길게 쓰기엔 적당한 주제가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마 내용은 "TV를 보다, 갑자기 TV에서 퍽 소리가 나더니 고장이 났다. 나와 동생은 깜짝 놀랐다. 아빠는 TV가 고장이 났다고 했다." 이상 쓰기는 쉽지 않겠지요. 도서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아하는 책을 골라 책에 대해 이야기를 쓰는 것도 방법입니다. 물론, TV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쓸 수 있지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아직 글을 처음 쓰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날의 에피소드는 "공연"이 가장 알 맞는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주제를 정했으면 바로 제목을 정해야 합니다. 그날의 느낌을 제목 하나로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지루하고 힘들었다면, 그 느낌에 맞게 적어야 하고, 신났다면 신난 느낌에 맞추어 제목을 적어야 하겠지요. 스텔라는 한참 고민을 하다 아래와 같은 제목을 적었습니다.
"신나는 그림책 음악회"
굳이 거창하게 쓸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쓰고자 하는 것은 멋진 글이 아닌, 아이가 일기를 편하게 생각하기 위한 그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2.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왜? 공연을 갔지?"
"음... 아빠가 회사에서 티켓을 구해오지 않았어?"
"맞아. 그럼 아빠가 왜? 티켓을 구했지?"
"음... 나랑 소피아가 동화책 읽는 걸 좋아하니까 아빠가 보여주려고 구했지."
"그렇구나. 그럼 아빠 회사에서는 왜? 티켓을 주었지?"
"음... 아빠가 전에 이야기해줬는데... 아빠 회사에서 그 악단을 후원해 준다고 했어."
"그럼, 왜? 우리가 토요일에 공연을 갔지?"
"그건... 나도 학교에 가고, 소피아도 어린이집에 가고, 엄마 아빠도 회사에 다니니까... 토요일밖에 시간이 안 되잖아."
"그렇구나... 그럼 스텔라는 왜? 우리 가족과 공연을 갔을까?"
"일단... 가족이 함께 가야 하니까 그렇고, 그리고 음악회도 처음이라 가고 싶기도 했고... 그리고 아빠가 이야기 한대로 동화책도 읽어준다고 하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저는 일기를 쓰기 전 항상 첫 문장을 쓰기 전에 "왜"라는 질문을 항상 딸아이에게 던집니다. 그날의 느낌은 분명 날씨를 통해 느끼는 감정과, 공연을 감상하며 느꼈던 즐거운 감정이 함께 교차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갑자기 던지는 데는 글을 쓰는데 어색함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스텔라의 일기를 읽는 선생님되 스텔라가 왜? 공연을 보러 갔는지의 질문을 던지고 싶으셨겠지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첫 질문은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을 합니다.
사실...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스텔라의 일기는 다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멋진 문장을 쓸 수는 없지만, "왜?"라는 질문을 통해서, 이야기에 대한 대략의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3. 부족한 내용에 대해 질문을 더 해 본다.
"왜?"라는 질문으로도 충분히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만, 아직 부족한 게 있었습니다. 우선 "어디서"보았는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겠지요.
"스텔라. 그럼 우리가 공연을 어디서 보았지?"
"음... 글쎄.. 무슨 공연장이었는데, 피아노도 있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수 있구나... '예술의 전당'이야."
"아... 예술의 전당..."
그 장소를 처음 가게 되면, 장소에 대한 느낌도 "어떻게" 느끼게 되는지의 감정이 있겠지요.
"스텔라. 예술의 전당의 느낌은 어땠어?"
"마치 커다란 전등이 있고, 공연장도 넓고, 크고, 주차장도 엄청 넓고..."
"그럼... 그럴 때 어떤 단어를 써야 할까?"
"매우 크다?"
"그 보다는... '웅장하다'라는 단어를 써 보는 건 어떨까?"
"어떻게"가 끝나고 나면, 이젠 마지막 질문인 "그래서"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 엄마와 아빠와 소피아랑 같이 공연을 보니까 어떘어?"
"동화는 시시했어. 다 읽어본 거라서. 근데... 음악은 참 신기해서, 음악에 집중했어."
"소피아는 어땠어?"
"처음엔 졸고 있었는데... 음악을 듣더니 너무 좋아서 신나 했어."
"소피아가 동화를 읽는 대목에서는 어땠을까?"
"당연히 집중해서 봤지."
"공연이 끝나고 나니까 어땠지?"
"음... 좀 지루하긴 했지만... 음악이 너무 신났어. 이렇게도 음악을 만드는구나 생각했지."
"그러고 나서는?"
"당연히... 나도 음악을 만들고 싶었지."
4. 나머지를 채운다.
사실, 이 정도도 충분히 훌륭한 일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간중간에 이야기를 채우기 위해서 혹은 분량을 채우기 위해, 아니면, 이야기를 좀 더 다양하게 넣기 위해서는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겁니다. 그날, 스텔라와 저는 예술의 전당에 있는 클래식 음반 매장에 함께 갔습니다. 여러 CD를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아빠가 좋아하는 "쇼팽"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스텔라는 "비발디"를 좋아한다 했습니다. 엄마는 "노라 존스"음악을 좋아한다 했지요. 소피아는 "찰리 브라운 OST"를 보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랑랑"의 디즈니 콜라보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요.
짧은 에피소드이지만, 일기가 너무 "공연"으로 몰아가는 듯했지만 그런 단조로운 부분을 다른 이야기로 채워 넣음으로 서 다양함을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는 사람도 지루해지기 직전에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재밌는 느낌을 얻을 수도 있지요.
일기 쓰기가 어렵다 생각하면, 항상 위에 이야기 한 내용을 고민해보면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이야기든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면 분명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겁니다. 그다음부터는 끊임없는 노력의 시작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