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과 다섯 번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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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선지와 소기름은 정육점 주인과 친하기만 해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그런 거였다. 선지 한 대접에 소기름 한 덩이. 소기름은 잘 썰어서 된장찌개 끓일 때 넣어두면 정말 멋진 맛을 만들어주었고, 시장에서 주워온 배추와 무 시래기를 잘 말려서 푹 삶은 물에 소기름과 된장을 푼 뒤에 선지 한 대접을 넣으면 그 어느 국물보다 진한 맛을 만들어 주었다. 가끔 고깃국을 먹고 싶다 할 때면 엄마는 한 번씩 끓여주었다. 물론, 정육점 사장님은 항상 공짜로 주진 않았지만, 어쩌다 돼지고기 반 근, 소고기 반의 반그늘 사게 되면 덤으로 한 대접씩 주던 선지 한 그릇. 그 선지 한 그릇에 조금씩 둥둥 떠 있는 소기름 덩어리를 가위로 잘라 밥을 말아 한 움큼 먹으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사실 그때 먹은 선지가 야들야들하단 생각을 해 보진 않았다. 정말 푹 삶고 끓여서 된장맛이 푹 벤 선지 한 덩이. 국그릇에 선지 두 덩이가 들어가면 그렇게 행복하던 시절. 그리고 어머니는 그 선짓국 마저 배부르다고 자주 드시질 않으니 그 시절의 낭만 아닌 낭만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가 양평 해장국집이 생기기 시작한다. 선지에 소 곱창과 양 그리고 배추 우거지가 한데 어우러진 해장국은 이제 나도 어른이 되었는지 술 한잔 마시고 나면 맛나게 먹던 그 해장국이었지만, 엄마의 기억에는 양평 해장국 보단 소뼈 해장국이 참 맛있었다고 이야길 했다. 소 잡뼈에 붙어 있던 고깃 덩어리에 물렁뼈와 연골을 긁어먹으며, 우거지를 간장 양념에 찍어 먹던 그 시절.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소뼈 해장국보다는 돼지 뼈 해장국이 일상이 되던 시절. 마침 그 돼지 뼈 해장국은 감자탕이랑 무슨 차이인가? 생각하던 그 시절. 아마 감자 한 덩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을 하다가, 그 돼지 뼈의 이름이 "감자뼈"라고 이야길 하던 시절. 어차피 배고픈 사람들에겐 돼지 뼈나 소 뼈나 배부르게 고기를 먹을 수 있고, 푸짐하게 느낄 수 있던 그 어느 음식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이젠 해장국이 그리 싼 음식도 아니고, 흔한 음식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마음씨 좋은 사장님이 후한 인심으로 퍼 주던 한 대접의 선지 덩어리로 푹 끓인 해장국도 아니고, 이젠 돈 만원으로도 부족한 가격으로 올라 버린 비싼 음식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엄마는 가끔씩 소 뼈 해장국을 포장해 드리면 그 어느 음식보다 맛있게 드셨다. 아마 그 시절 배부르게 먹던 고깃국에 한 덩이씩 들어가던 선지가 생각나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그때와 차이점은 이젠 그 해장국을 파는 곳도 많지 않지만 - 가격도 많이 올랐단 것. 그러니 그 시절의 추억과는 좀 다른 추억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