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바람 Apr 19. 2023

실직에 대처하는 우리 모두들의 자세 - 2부

2부. 나는 안 그런 줄 알았는데, 회사가 왜 나한테 이럴 수 있지?

내가 다니던 계열사는 작년 11월부터 슬슬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코로나 특수 막바지였기 때문에 그룹 전체는 축제 분위기 였다. 창업 이래 역사적 최대 손익을 달성하였으니, 당연한 결과로 인센티브 축제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연봉에 몇 프로를 받느니, 목돈을 얻었으니 누군 차를 산다느니 하는 기쁨에 넘친 대화들로 하루하루를 손꼽고 있었다. 나 역시 팀장으로서 팀원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올해는 인센티브 잔치가 있을 거라 이야기했다. 난 그래도 공채 출신이니 인맥이 많았고, 여기저기 정보를 빨리 습득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가 끔찍한 소문을 듣는다. 계열사 하나가 대규모 구조조정이란다. 그때도 난 침묵을 했다. 주위도 마찬가지다.


"에이... 설마 대기업인데 구조조정을 하겠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다 버티면 다니게 해 주겠지요."


이 이야기를 한 친구는 며칠 안 돼 권고사직 통보를 받는다.


"그래도 공채 출신은 자리 잡아주지 않을까요?"


이 이야기를 한 친구도 며칠 안 돼 권고사직 통보를 받는다.


"전 그래도 XX상무님과 친하니까 괜찮아요."


이 친구는 XX상무가 직접 권고사직 통보를 했다. 가는 그 순간까지 눈물을 흘리며 처절하게 이야기했지만, 그 상무는 담배만 한 대 태울뿐 별 이야길 하지 않았다. 구조조정의 상황에서 권고사직의 대상은 사람을 따지지 않는다. 그냥 인사의 기준에서 그 어느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다. 내가 공채 출신이라도, 고과가 아무리 좋아도, 회사에서 아무리 중요한 일을 했다고 해서 피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몇 가지 사례를 이야기해 보자. 첫 번째 대상자는 여사우로 나이는 이제 막 40대 초반. 결혼도 포기하고 회사에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파트장 생활도 오래 했고 성과도 높았으며 고과도 당연히 좋았다. 당연히 인생의 대부분을 회사에 투자를 했으니, 회사는 본인 삶의 전부였으리라. 그러나 그 대상자는 퇴사를 생각조차 안 했다. 아니, 그냥 자신의 인생에서 모든 것이 그 회사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연인이 결혼을 하자고 이야기했음에도 포기하고 선택한 회사였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 그만 떠나라고 이야기하는데 앞 날이 막막해진다. 왜 내가 나가야 하는 건지? 그리고 나 말고 남는 다른 사람들은 누가 있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단지 보이는 것은 그 사람들의 삶과 미래를 책임지지 못할 회사만 있을 뿐이다. 저 멀리 사라져 가는 회사. 내가 평상을 다 바칠 거라 생각했던 그 회사는 이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면담 1차 때 이야길 한다. 난 저 사람보다 못하는 게 없는데 왜 나를 자르는 거죠? 그리고 저 사람은 부정을 저지르기도 했잖아요. 저 사람은 사업 실패를 여러 번이나 했는데 왜 저 사람은 남는 거지요? 저 사람은 심지어 성추행까지 했어요. 아니 저를 보세요. 저는 사업을 몇 개나 성공을 했는지 몰라요. 영업이익을 얼마나 달성했는데요. 그리고 상도 받았어요. 고과도 좋아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 밑에 있는 파트원들은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아니... 심지어 어떤 파트원은 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까지 했어요. 제가 그런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인데 제가 어떻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담당자는 말이 없다. 그리고 한 마디 한다.


"그런 이야길 왜 저한테 하세요? 전 단지 전달자 역할일 뿐입니다."


그렇다. 그들은 단지 전달자라고 이야기한다. 전달자니 자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세상 한 없이 선 해 보이던 그 담당자는 테이블에 앉는 순간 저승사자와 같이 변한다. 그리고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를 않는다. 단지 듣는 것은 "싸인"을 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선택뿐이다. 그러니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조차, 들을 가치조차 없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명일 뿐이다. 그러니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이 없었다. 단지 하루하루 시간만 지나갈 뿐이지, 그들은 어떻게든 사인을 받아낸다.

그러는 가운데 또 한 명의 경력직 입사자는 입사 겨우 3개월 만에 대상자로 분류된다. 그는 자신의 팀장과 면담을 했고, 그 팀장에게 현재 상황이 힘들다는 것을 이야기했을 때 웃으면서 담배 한 대 건네주던 그런 따뜻한 50대 팀장이었다. 마찬가지로 그 팀장도 그 회사에 온 지 막 4개월 차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래서 서로 어깨를 맞대고 이겨나가자고 이야기했다. 그 대상자는 팀장이 너무나 든든했다. 사실 주위 사람들이 한 명씩 사라지는 것을 보니 불안하긴 했지만, 겨우 입사 3개월이니 자를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팀장에게 분위기가 뒤숭숭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야길 한다. 당연히 손에 잡히지 않으니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야길 한다. 팀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기분이 좋았다. 우리 한번 같이 일을 찾아보자고 한다. 그리고 인사와 이야길 해 보겠다 한다.

그러고 30분 뒤, 그 대상자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다. 그 대상자는 자신이 왜 앉아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이제 겨우 입사 3개월 밖에 되지 않았으니, 퇴직금도 없으니 회사는 보내기 너무 쉬웠으리라. 사인해라. 사인하지 않으면 권고사직 사유에 어떤 이야기든 다 적을 거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나가라. 네가 일이 없지 않으냐. 그 대상자는 할 이야기가 없었다. 사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은 했지만, 막상 시작해 보지도 못했다. 그냥 머릿속에 맴돌 뿐이라서 그 고민을 팀장에게 이야기했고, 팀장은 웃으며 같이 해결해 보자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컴퓨터 기록이 제출이 된 것인가?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한다. 이미 이직한 지 몇 달 안 되긴 했지만, 남은 시간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빨리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인사는 이미 나의 근태를 다 정리해 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무슨 일을 했는지, 언제 지각했는지, 컴퓨터를 켠 순간 무엇을 했는지 다 정리해 두고 있었다.

물론, 그 대상자는 여전히 팀장을 믿고 있었다. 자신을 끝까지 책임져 준 팀장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갑자기 나가게 된 게 미안하긴 하지만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나가서 죄송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물론, 그 순간에 그 팀장은 남은 팀원들과 회식을 했다. 축하 파티라고 했다. 그리고, 팀장은 인사에 인력 감축 업무 포상금 XX 백만 원을 받아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이제 몇 명만 더 정리하면 될 것 같았다. 마침 자신보다 8살은 어리지만, 일 잘하는 그 과장이 맘에 안 들었으니 어떻게든 보내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면 또 XX 백만 원의 포상금을 벌 수 있으니 말이다.

두 대상자들이 모든 실직자들의 케이스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그 들은 각자 다른 테이블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사람은 약 1시간 만에 - 또 어떤 사람은 무려 1개월 넘는 시간 동안 시간을 버텨가며 협상을 해 나갔다. 당연히 퇴직 위로금도 다르고, 태도도 달랐다. 물론 사람은 같다. 그 테이블 담당자는 4살짜리 딸아이를 키우며 항상 퇴근을 하면서 딸아이에 대한 자랑으로 바빴다. 내 딸아이가 이제 영어를 할 줄 알고, 달리기도 할 줄 안다고 한다. 물론, 회사에 있는 오피스 와이프와는 아이가 없지만, 실제 와이프는 집에 있으니 오피스 와이프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딸아이 자랑을 하며 난 가정적인 사람이라 자부심을 느낀다. 내일 아침에는 몇 명을 이야기해야 할까? 그리고 누가 대상일까? 어차피 상관없다. 결국 자신의 일은 비즈니스이니 말이다. 그 사람의 개인 사정은 상관없다. 굳이 들을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실직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먼 미래 이야기이니까.


(다음 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실직에 대처하는 우리 모두들의 자세 - 1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