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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Apr 19. 2023

실직에 대처하는 우리 모두들의 자세 - 3부

3부. 아프지 않은 실직은 없다.


단어 선택부터 확실히 하자. 지금 내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퇴직"이 아니다.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직무를 퇴장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잃어버리는 순간이기 때문에 "실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단어를 너무 아름답게 사용한다. "명예퇴직"이라는 단어를 쓰면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명예롭게 퇴직해야 한다는 의미를 부여해 준다. "희망퇴직"은 어떤가? 희망하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인 "희망"퇴직이라고 단어 몇 자 고쳐가면서 의미를 왜곡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어느 누구도 자발적으로 그만두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예를 들어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 하더라도 이 돈을 가지고 평생 놀까?라는 생각보다는 회사를 소신 있게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먼저 한다. 즉, 사람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모 대기업에 다니던 A상무는 임원 생활을 무려 10년이나 하였다. 그리고 회사 생활을 30년이나 하였으니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전무로 진급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그 기대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임원 인사 때 낙마하며 실직을 할게 된다. 그는 이미 회사에서 유명한 "미친개"로 소문났으니 화가 난 나머지 인사담당에게 소리쳤다.


"왜 내가 잘린 거야! 이 개새끼야! 죽고 싶어!"


인사담당은 짧은 미소와 함께 사무적인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언제까지 짐을 빼야 하는데, 혹시 사람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라 한다. 인사담당에겐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고, A상무에게는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그러니 그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을까? 인사담당에게 실컷 화풀이를 한 뒤 말없이 사라진다. 짐을 어떻게 빼야 할지 고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뒤로 걸어가서 힘 있는 다른 임원들에게 전화를 건다.


"아이코! B 전무님. 건강하시죠? 오늘 C 부사장님과 함께 저녁 식사 어떠십니까?"


아무리 회사 생활을 오래 하더라도 갑자기 떠난다는 것은 자신에게 많은 것들을 포기하란 의미와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움직이던 그곳을 하루아침에 떠나라고 하니 그 의미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도 부족해진다. 자녀들도 움츠려 들것이다. 당연히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른다.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한다고 나온 뒤 하루 종일 공원을 서성이며 걷다가,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된 것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를 태운다. 그리고 정처 없이 걷는다. 그러다 무료로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을 찾으면 서성이다 눈치를 보며 충전을 하기 시작한다. 그나마 유튜브나 음악을 들어야지 시간을 때울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그렇다. 그나마 용기가 조금이나마 있는 사람은 이 기회에 좀 쉬자고 생각하고 하루 종일 잠만 잔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또 잔다. 밥 먹고 잔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물 한잔 마시며 잔다. 어쩌다 한 대 피우는 담배 한 대. 그러다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TV를 잠깐 보다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라고 생각하며 잠만 잔다. 그냥 잠만 잔다. 뭘 생각할 겨를도 없으니 말이다. 그나마 생각을 조금이나마 한다면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만, 그것도 40대가 넘어서면서부터는 쉬운 길이 없다. 편의점 알바니, 택배 상하차나 배송 업무니 하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시도할 수 있다. 택시 운전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사회에서 얕잡아 보았던 그 모든 것들을 시도해 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도, 그 방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상 생각이 나질 않으니 뚜렷하게 답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단 하루도 7시가 넘어서 일어나 본 적이 없었다. 대학 시절에도 늘 맨 앞자리에 앉기 위해 - 아침 9시 수업에 최소한 1시간 전에 도착하기 위해 7시만 되면 학교를 나섰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지내온 시간. 당연히 졸업 후에는 장교로서 군 복무를 했으니 하루 24시간 늘 긴장의 연속이었고, 소대원들이 기상하는 아침 6시가 나의 기상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으니 하루 8시간이 아니라 24시간이 나의 시간이자 내게 종속된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아무래도 초임장교이며, 단기 학사장교이다 보니 군대는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단기 학사 초임장교를 대상으로 당직을 부여했으니, 당직 - 근무 - 당직 - 근무의 연속인 상황에서 단 하루도 양말과 군화를 벗은 적이 없는 지난 3년 6개월은 차라리 행복하기만 했다.

전역 후 회사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농업적 근면성"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즉, 일이 없더라도 밤 12시까지 앉아있는 것이 미덕이고 능력이었다. 그 전날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셨다 하더라도, 아침 일찍 출근하여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실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게 회사를 위한 일이었다. 어쩌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위해 정시 퇴근을 하려 하면, 그것은 조퇴를 하는 것보다 - 휴가를 내는 것보다 더 큰 일을 저지르는 것 같았다. 감히 선배들은 밤 12시, 1시까지 남아있는데 네가 왜 6시에 퇴근하려 하는 거지?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팀장은 퇴근하려는 막내를 바라보며 씩 웃으며 이야기한다.


"시킨 건 다 했어?"


머릿속을 정리해 본다. 뭘 시켰지? 무슨 일을 했지? 혹시 남아 있는 게 있지는 않은지? 한참 고민을 하다 가방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핸드폰의 카카오톡을 열고 여자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미안해. 오늘 갑자기 야근이 생겼어."


하루 24시간 중 최소 16시간을 회사에 있었으니, 가족보다 더 끈끈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가족보다 더 오래 있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와이프보다 더 많은 이야길 했다. 내 와이프의 얼굴 보다 바로 옆 자리 여사우의 얼굴을 더 자주 보았다. 아버지의 목소리보다 팀장님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었다. 그게 나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1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당연히 난 조금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으니 이젠 내가 같은 이야기를 할 차례가 되었고, 퇴근을 하려는 팀원들에게 "벌써 나가?"라는 이야기가 일상이 되었다. 당연히 난 13년이란 세월 동안 회사를 벗어나면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래왔다. 겉으로는 퇴사를 해야지, 당장 때려치워야지라고 이야기하지만, 한 편으론 "존버"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버텨야지만 살 길이다. 어떤 일이 되었든 반드시 버텨야 한다. 그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당연히 버티면 회사는 그만큼 보상해 줄 것이라 이야기했다. 회사에서 충성한 만큼 나에게 보답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반납한 여름휴가.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추억을 포기하며 지냈던 그 시간이 아깝더라도 회사는 분명 나에게 더 큰 선물을 줄 것이라 기대를 했다. 그리고 회사는 나에게 더 큰 선물을 주었다.

그 선물을 받는 순간 내 머리가 띵 해짐을 느꼈다. 당연히 나는 그 선물이 주어지지 않으리라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선물이 주어진 순간 나는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내가 뭘 잘못했는지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내 가족 - 나의 어린아이들. 나만 바라보는 그 모든 것들이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심지어 더 좋은 회사, 자리로 옮겨가는 그 순간도 마찬가지다. 그 들은 실직이 아닌 자발적 퇴사지만 눈앞에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한다. 내가 정말 잘 나가서 이 회사를 떠나는 순간이라 하더라도, 더 많은 연봉과 미래를 보장받았다 하더라도, 나와 같이 함께 있었던 그 사람들과 떠나려 하니 막상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술 한잔 하며 미안하다 이야기하는 그 순간. 함께 했던 그 사람들과의 추억은 이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회사는 잔인한 곳이다. 아무리 가족보다 더 오래 쳐다봤어도, 연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도, 떠나는 순간 그곳과 나와의 연결고리는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단 한마디를 한다.


"종종 연락을 드릴게요."


그 종종의 빈도는 얼만큼인지 모르지만, 죽기 전에는 꼭 연락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내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로 떠나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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