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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Apr 23. 2023

실직에 대처하는 우리 모두들의 자세 - 4부

4부. 그날이 오는 순간 우리는 순백처럼 하얗게 돼야 한다.

결국 살다 보면 작은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5분 늦게 출근을 해 보기도 하고, 여자친구와 데이트 때문이라도 5분 일찍 눈치를 보며 컴퓨터 전원을 꺼 보기도 한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와중에 법인 카드로 동기들과 좀 과하게 소주 한잔을 할 때도 있었다. 물론, 팀장이나 매니저가 없는 날은 마치 어린이날이 된 것처럼 신나게 뛰어놀기도 한다. 그 날 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다. 나 역시 뚜렷하게 어느 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다면, 평소의 직장인으로서 모습은 8시간을 때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단지 일이 없더라도 8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서 지키는 것 만이 내 일이라 했다. 때론 이렇게 돈을 버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일 하기 싫어서 안 나오면 그건 무단결근이 될 수밖에 없으니 출근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때우기 위해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은 참 우습기만 했다.

선배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욕하던 그 선배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해장 겸 분식점에서 라면 하나에 어묵 꼬치 몇 개를 시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무슨 할 이야기가 많은지 업무 이야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그걸로 2 ~ 3시간을 때운다. 훌쩍 시간은 오전 11시가 다가온다. 그러면 웃으며 이른 점심을 먹자고 한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셨으니 국밥이나 한 그릇 먹자고 하고, 누구는 복지리가 어떠냐고 하지만 뭐가 되었든 전 날 술자리의 해장을 위한 수단이자 도구일 뿐이었다. 그리고 30분 정도 훌쩍 먹고 나니 소화도 할 겸 잠시 산책을 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러 간다. 그리고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점심시간이 지날 즈음. 슬금슬금 걸어가며 흡연실에서 담배 한 대를 태운다. 그리고 오늘도 또 야근을 해야 하지 않냐고 이야기를 한다. 이제 막 컴퓨터 전원이 켜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딱히 선배들을 봐도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심한 경우에는 근태가 어떻든지 간에 휴게실에서 숙면을 취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게 일상이었고, 직장인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누구 하나 욕 할 사람도 없었다. 단지 전 날 술을 많이 마셔 잠시 위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리고 술이 덜 깬다면 술이 깰 때까지 쉬어도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물론, 술이 깰 즈음에는 또 술을 마시러 가야 하니, 이런 일상이 하루 만에 끝날 분위기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낮에는 술이 덜 깨서 얼굴이 붉어져 있었고, 밤에는 술에 취해서 얼굴이 붉어져 있으니 모두들 부끄러운 듯 붉은 얼굴을 자랑삼아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일상이었다. 숙취해소 음료부터 시작하여 자양강장제는 기본이고,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게 잠시동안이 아니라 하루 종일 그럼에도 어느 누구 하나 욕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게 일상이고, 회사생활에 기본이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그런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이렇게 해도 월급 받는 게 맞는가?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내 모습도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으니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건지 모호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당연히 다 틀렸지만 말이다.

이렇게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건 큰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아침에 5분 정도 늦는 건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살아가는 게 일상이 되어간다. 그리고 어쩌다 급한 일이 생기면 개인 용무를 보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도 예삿일이 된다. 심한 경우에는 보험 상담을 받으러 나가는 경우도 있으니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단지 주위 사람들에게 허락을 받고 나가는 게 맞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은 다 잘못된 일이지만, 그게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물론 제대로 된 생활을 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있다. 항상 출근 시간 30분 전에 도착하여 자리를 정돈하고, 새벽까지 야근을 하며 업무를 정리한다. 업무를 수행하다가 잠시 머리가 막힐 것 같으면 새벽 공기를 맞으며 다시 보고서와 싸운다. 그게 일상이다. 그러다 새벽까지 일하다 잠들면 안 된다는 심정으로 뜨거운 욕조에 잠시 몸을 뉘이며 눈을 감으며 피로를 삭히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고작 해봐야 1 ~ 2시간 밖에 안 되는 시간이지만, 잠들면 늦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간신히 졸린 눈을 비비며 지하철을 탄다. 마침 그날따라 사람이 적어서인지 자리가 있었고, 그 자리가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회사까진 약 30분 정도 지나가면 되니, 20분 정도 시간을 맞추면 잠시 눈을 감아도 되리라 생각했다. 눈을 감으며 여러 생각을 해 본다. 행복한 생각이 더 많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오늘따라 음악도 흥얼거리며 듣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마치 오늘만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눈을 떠 보니, 이미 몇 정거장을 지나친 뒤였다. 당연히 지각이었고, 머리를 글적이며 죄송합니다 이야길 한다. 다들 새벽까지 있었으니 그러려니 하며 이해해 주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날이 오는 순간. 테이블 위에 앉는 순간 그 모든 것은 용서받을 일이 아니었다. 그날 하루 늦었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중징계인 마냥 화를 내며 소리를 쳤다. 그래서 더 이상 이야기 할 가치가 없다고 이야길 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떠나라 한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이 회사를 위해 희생한 것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는지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떠나려 하니 막막할 따름이다. 마침 통장에 돈도 몇 푼 없는데 말이다. 그냥 잠시 미소를 지을 뿐이다.

테이블은 그 누구도 순결하게 만든다. 단지 전달자의 입장일 뿐이지만, 그들은 내가 뭘 잘하고 뭘 잘못했는지 명확하게 구분하되, 뭘 잘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단지 뭘 잘못했는지에 대해 하나에서 열까지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네가 며칠 전에 한 일. 몇 년 전에 한 일. 몇 달 전에 한 일. 아니 입사때 한 일. 전부 다 기억에 나지 않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잘못된 것들이고 더 이상 언급해서는 안 될 회사에 해악을 끼친 파렴치한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당최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데 말이다.

선배들은 아침부터 눈을 뜨자마자 라면으로 해장을 하고, 하루종일 이야기만 하며, 점심시간도 1시간을 넘게 초과하며 시간을 때우는 게 다반사였지만 그것에 대해 이야기도 차 하지 못하고 그 순간은 나 자신의 잘못부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게 잘못된 게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B는 그 순간에 대해 참 할 말이 많았다. 마침 담당 임원은 다들 운동도 하고 자기 계발에 삼매경이니 점심시간은 1시간이 아니라 1시간 반쯤 해도 상관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대신 예의상 30분 더 일 하고 퇴근하라고 하니 늘 야근이 일상이었던 B는 그게 너무 고마웠다. 헬스장에서 러닝머신도 하고 웨이트도 하며 운동을 약 1시간 정도 하고, 뜨거운 열을 식히려 10분이 넘게 사워를 한다. 그리고 간단하게 김밥을 먹으며 시간을 때우니 하루가 참 상쾌하단 생각이 들었다. 운동이 나쁜 것도 아니고, 내 체력을 기를 수만 있다면 그만큼 좋은 일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테이블에서는 그 모든 근태 위반 사항에 대해 다 정리가 되어 있었다. 담당임원의 허락도 소용이 없었다. 단지 규정에 의거하여 잘못되고 잘된 것만 리스트업 하여 나에게 서명을 하라 종용할 뿐이었다. 내가 잘못한 게 없지만, 왜 갑자기 죄인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C는 더 억울하다 생각한다. 단지 C가 잘못한 것은 자신이 너무 고지식하단 거였다. 동기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니 술자리도 없었고, 그래서 아침 일찍 해장하러 돌아다니는 하이에나 때 들과 어울릴 일이 없었다. 담배도 피우질 않으니 하루 8시간이 참 알차기만 했다. 그러나 딱 한 번 사무용품을 사러 갔을 때 맘에 드는 5만 원짜리 파카 만년필을 샀던 적이 한 번 있지만 팀장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잘 샀다고 이야길 해 주었다. 고작 5만 원짜리 파카 만년필이었지만, C는 테이블 위에서 횡령범이 되어 있었다.

D는 단지 법인카드로 동기들과 점심을 먹었을 뿐이다. E는 아침에 5분씩 몇 번 지각했는데, 전날 새벽까지 있었으니 용서받을 거라 생각했다. F는 근무시간에 잠시 일이 없을 때 인터넷 사이트를 서핑하며 뉴스 기사를 좀 읽었던 적이 있었다. G는 핸드폰으로 가끔씩 여자친구와 메신저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었다. 카카오톡을 쓰다가 요즘 카카오톡이 해킹 위험이 높다고 하여 텔레그램으로 이제 막 바꾼 직후였다. H는 정말 별다른 일이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가 고민을 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H가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라 자주 화장실에 간 것은 하나의 잘못이라 했다. I는 가끔 여자친구와 통화를 했다. J는 초과근무를 올린 뒤에 가끔 인터넷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근무에 성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맡은 바 일을 소흘이 하지 않았다. K는 가끔 쇼핑몰의 물건들을 보며 신기하다 생각했다. L은 마케팅 업무가 주요 업무다 보니 가끔 벤치마킹차 사이트 방문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 핑계로 개인적으로 다른 사이트를 방문하기도 했었지만, 그것도 벤치마킹이라 생각했다. M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N은 설마 볼펜 한 자루 가져간 게 잘못인가? 생각했다. O는 그냥 그 자리가 억울할 따름이었다... 그 모든 것은 A가 통보했었기에 모두들 A는 깨끗한지 궁금했다.

하지만 A는 자신의 일에 대입할 가치를 못 느끼겠다 했다. 하지만 A는 다른 사람일은 다른 사람의 일일 뿐이라 했다. 하지만 A는 그것 말고도 회사는 더 많은 것들을 정리해 두었다 했다. 그리고 A는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당신을 파렴치한으로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길 했다. 그러니 어떠한 반론도 제기하지 말고 여기에 사인을 하라 한다. 고작 몇 푼에 자존심을 팔라고 한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채 말이다.

단지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을 뿐이지만, 왜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지는 어느 누구도 몰랐다. 단지 그들만 아는 것 같았다. 단지 태어난 게 잘못이라서 그런 것인가? 아니다. 테이블에 앉는 그 순간부터 당신은 죄인이 되어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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