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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Apr 24. 2023

실직에 대처하는 우리 모두들의 자세 - 5부

5부. 그들의 이야기, 그들 나름의 입장들

그동안 갑작스러운 실직이란 상황에 놓이게 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뤄보았다. 이번엔 잠시 시각을 돌려보자. 실직을 통보해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어떠한가? 물론 그들도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일 것이고, 누군가의 아들 혹은 딸이며 사위이자 며느리인 입장이니 실직을 당하는 사람과 통보하는 사람의 입장은 큰 차이가 없다. 단지 테이블에 앉을 때 앞에 앉아있는지 뒤에 앉아있는지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나는 평범한 대학 생활 끝에 관리 직무라는 직무를 회사의 선택에 의해 받게 되었지만, 반대로 테이블의 반대편에 앉아있는 사람들 역시 평범한 대학 생활 끝에 인사 혹은 매니저의 직무를 회사의 선택에 의해 받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퇴근하면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누군가의 친구였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직장 동료로서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며, 혹은 고민이 있으면 흔쾌히 들어주는 마음 넓은 동기이자 선배이며 후배일지도 모른다. 늘 핸드폰에는 아이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는 아이의 귀여운 모습이 메인 화면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그들이 무슨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 혹은 남들을 짓밟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다르고 위치가 달랐다.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의 자리와 그가 앉아있는 테이블의 자리는 분명 달랐다. 나는 내 사정을 이야기해야 하는 입장이고, 상대방은 회사의 사정을 이야기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회사는 분명 어려운 상황이라 하였지만, 내가 왜 선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이야기해 주질 못했다. 단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협상"이라는 명목 아래 회사에서 정해주는 조건에 대해서 수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전달해 주고 들어주는 입장이니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단지, 그들도 월급을 받는 입장에서 누군가 해야 하는 악역을 수행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아니 악역을 자처하는 것일지도 몰랐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내 이야기를 전혀 들어주지 못하는 귀가 꽉 막힌 사람들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구구절절하게 내 이야기를 전달했다. 너무 힘들다. 회사에서 이 만큼 기여를 하였음에도 왜 나를 나가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당연히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며 입을 굳게 다물다가, "그 사정은 이야기하셔도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라는 말만 답할 뿐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얼굴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던지며 "잘 지내시죠?"라고 말하던 사람 좋은 후배였다.

A양은 자신의 입장에 대해 너무나 진실되게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아프시고, 자신은 외동딸이며 결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했다. 잠시만이라도 기회를 더 주면 안 되겠냐고 혹은 회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싶다고 이야길 했지만, 그 이야기는 이미 앞서 테이블에 앉아있었던 B와 C의 이야기와 같았다. B는 자신이 매출 1,000억을 달성한 신화적인 존재라고 어필을 했다. 물론 10년 전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C는 자신이 연구한 성과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이야기를 했다. 이 연구는 아마 조금만 더 하면 노벨상을 노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간절하고 아쉬운 상황이었다. D도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에 대해 답변은 한결같았다. 


"그 사정은 이야기하셔도 제가 전달 들일 사항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 그 역시 회사에서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는 무미건조한 직장인에 불과했다.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 생각 없이 던지진 않았지만, 분명 자신의 입장에서가 아닌 회사의 입장에서 전달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불과 며칠 전 함께 소주를 마시며 아이들 자랑을 하며 큰 웃음을 짓던 그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어떠한 것도 들어줄 수 없는 테이블의 반대편 자리에 앉아 있으니 그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죽 답답할 따름 아닌가?

물론, 나 혹은 다른 사람이 선택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야기해 주질 않는다. 단지 회사 사정이 어려울 뿐이다 이야길 한다. 그리고 회사 사정이 나아지면 다시 불러주겠다는 "의미 없는" 약속만 던질 뿐이다. 그 약속이 언제 실현될지 모른다. 단지 "언젠가" 기억이 나면 후보군에 오를지 모른다는 희망만 있을 뿐이었다. 그 희망이 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길 바랐지만 어느 누구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질 않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첫 번째 면담이었다. 아니 면담이라고 하기 그런 회사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전달했다. 마치 스크립트가 있는 듯 똑같은 이야기를 나에게 전달해 주었고, 며칠 전 떠나기 전 나에게 전달해 준 옆팀 팀장님의 이야기와 비슷했다. 그리고 사인을 하겠다고 하면 세부 내용을 전달해 주겠다고 했으나,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지만 꾹 참으며 관심 없다고 이야길 했다. 모든 것들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새 차를 뽑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작년에 받은 상여금과 연차 보상금 등을 합하면 중고 외제차 한 대 정도는 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40대가 되면 꼭 오픈카를 타고 싶다고 했는데, 그 꿈이 실현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버이날에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신나게 드라이브를 할 것이라는 큰 꿈을 갖게 되었다. 이건 단지 나의 희망이었고 꿈이었지만, 그 꿈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난 테이블에 앉게 되었고, 그 테이블에서 어떤 협상을 해야 할지 어떠한 생각도 머릿속에 남아있질 않았다. 그리고 이 상황을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지도 아직 머릿속에 잡히지도 않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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