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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May 07. 2023

실직에 대처하는 우리 모두들의 자세 - 9부

9부. 주말의 무거운 짐을 견뎌야 한다.

우리는 늘 착각한다. 명함에 적혀있는 직급과 회사가 "영원한 나"를 대변할 것이란 착각이다. 내가 대기업의 사원이면 영원한 대기업의 구성원이 될 것만 같고, 내가 대기업의 임원이면 나의 능력과 권력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명함에 적혀있는 이름과 직위는 허울뿐인 영광이었다. 내가 대기발령을 받는 순간 메신저를 통해 술 약속을 하고, 농담이나 하던 그 사람들의 소식은 그 순간 다 사라져 버렸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종종 연락드릴게요. 건강하세요."


난 아직 떠나지 않았지만, 그들은 나의 끝을 본인들 마음대로 만들어버린다. 내 회사생활은 대기발령과 함께 끝났고, 이제 더 이상 "조직생활"은 없을 것이란 마침표를 그어버린 것이다. 돈이 궁하면 보험회사나 외판원 생활을 할 것이고, 그나마 돈을 좀 모아두었으면 자영업의 세계에 빠져들 것이며, 그러다 종종 회사 동료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내 존재를 알리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것이란 착각을 가지게 된다. 맞다. 착각이다. 내 인생도 착각이고, 그들의 판단도 착각이다. 아직 난 끝나지 않았고, 그들은 내가 "끝났을 것"이란 착각을 하게 된다.

어느 날인가 안부차 문자를 보냈다. 한참 후배였는데 마침 좋은 소식을 들어서 축하한다는 안부인사였다. 물론 나는 별생각 없이 보냈지만, 그 후배는 "그동안 마음 불편하셨지요?"라는 말과 함께 이야길 시작했다. 그 후배도 말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이미 머릿속에는 나의 결과를 정해두었으니 당연히 어떤 말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만 쌓이다 말을 꺼내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렇다. 마침 끝이 날 것만 같은 그 이야기. 이미 마무리가 되었어야 할 이야기지만, 난 그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구차하게 매달려 있었다. "대기발령"의 끝은 모두들의 아쉬움 속에 작별인사를 하며, 치킨집 CEO가 되어 회식 때 놀러 오라는 안부를 전하는 모습으로 끝이 님 기길 원하는 기대감을 조금씩 사라지게 만들었다.

물론 차라리 끝이 있는 게 아름다울 수 있다. 한 선배는 대기발령 혹은 퇴직 위로금의 제안이 놓여있는 테이블 위에 앉게 되었을 때 잠시간의 대기발령을 선택했다. 사실 그 선배는 구차하게 남아있을 생각으로 선택한 게 아니었다. 한 명이라도 동료들의 연락처를 저장해 두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동료들의 연락처를 최대한 수집했다고 했을 때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밖을 나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그는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선배들, 후배들에게 연락을 하며 열심히 보험 상품을 홍보했다. 일부 선배는 그가 불쌍해서 가입을 해주기도 했다. 사실 그는 그것을 노렸다. 그래서 자신에게 사업비가 많이 떨어지고 수익성도 좋은 상품을 고민 없이 홍보했다. 당연히 보험의 약관이나 보장에 대한 설명은 부실해도 상관없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떠난 사람들의 예의로 어떠한 클레임도 질문도 없이 그 상품을 선택하곤 했다. 당연히 그 선배는 그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어차피 떠날 사람이고, 남아있는 사람들과 관계는 "비즈니스"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 최대한 본인의 실적이나 많이 채우자는 생각으로 한 사람씩 연락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그 약효는 1달 조금 넘게 갔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그냥 가만히 있더라도 그 약효는 1달을 못 갈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경쟁사로 이동한다면 그래도 상황은 좀 다르다. 대 놓고 연락을 하지 않지만, 여전히 입에서 오르내리며 험담으로 영원히 기억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미담과 추억은 악담으로 남겨지게 되고, 그 사람의 업적도 자연스레 사라지게 된다. 당연히 남아 있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기억과 흔적 아닌 흔적뿐이다. 무언가 남기고 싶다면 - 그리고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면 이 선택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물론, 혹시라도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과거의 전쟁터 앞에 작은 식당을 차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미안한 마음에 소주 한 잔 하러 찾아갈 것이고, 떠난 사람은 그 핑계로 후배들에게 - 그리고 선배들에게 훈수를 둬가며 회사와 자신과 남아있는 마지막 인연의 끈을 끊지 않으려 하곤 한다. 물론, 서울 시내 한 복판에 식당을 차릴 수 있는 금전적 여유와 무언가를 도전할 수 있는 당당함과 용기, 당연히 음식 맛만 보장이 된다면 이 선택은 나쁘지 않다. 물론, 맛이 없어도 사람들은 찾아오겠지만, 이것도 한 달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니, 그 역사도 자신이 능력만 있으면 조금 더 길게 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결국 끝은 정해져 있다. 떠나야 한다. 아니, 남고 싶더라도 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그 방법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회사는 "쓰임이 있다면" 다시 받아줄 생각도 있다고 넌지시 이야길 했다. 그리고 그 쓰임을 증명하기 위해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은 노트북을 화물 엘리베이터 출입구에 놔두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 노트북은 어쩌면 회사의 배려일지 모른다. 정확하게 나의 자리와 내 영역이다. 내 존재는 이제 회사에서 조금씩 지워져 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평소처럼 출근시간에 출근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낯익은 얼굴들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지만 그들의 표정이 다소 밝지만은 않았다. 짐짓 억지로 인사를 하는 듯 보이지만, 대부분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마치 내가 무슨 사고라도 친 사람처럼, 혹은 몹쓸 전염병에 걸려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시킬 것처럼 그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영역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과의 인사 - 관계가 사라지니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자판기 커피에 담배 한 대를 피며 시간을 때우던 그 동료들은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신나게 가래침을 뱉던 사이였지만, 이젠 서로 얼굴도 바라보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시간 되시면 6층에서 담배나 한 대 태울까요?"


이 메시지는 영원히 읽히지 않았다. 당연히 내 존재가 사라지니, 내가 보낸 메시지 마저 주인을 잃은 듯 저 하늘에 둥실둥실 떠 오를 뿐이었다. 주인 잃은 메시지를 뒤로 하며 조용히 혼자 6층에 가서 무료 자판기의 커피를 한 잔 뽑아 담배를 뽑아 물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낯익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지만, 그들은 나에게 인사를 건넬 생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듯했다. 어쩌다 우연찮게 내 앞에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 경우, 어색한 미소로 인사를 하며 "다음에 식사라도 한 번 하시죠." 혹은 "언제 소주라도 한 잔 하시죠."라는 상투적인 인사만 건넬 뿐이니 차라리 입구에 자리를 잡고 있을까란 생각도 해보곤 했다.

어차피 버티기만 하면 이길 싸움이었다면 차라리 버티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 존재를 -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하나씩 지워버리고 있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지우개를 저 하늘부터 열심히 지워버리는 듯. 내가 좋아했던 선배들, 그리고 동기들, 그리고 후배들과의 관계를 영원히 지워버리는 듯했다. 나 역시 내가 보내는 메시지와 문자의 주인이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더 이상의 관계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꺠닳게 되었다. 그렇다. 이 커다란 건물에서 난 이제 혼자이다.

아직 가족들에게도 이 상황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어머니께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아니, 친한 친구들에게만큼이라도 이 상황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난 아직 그 상황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단지, 내 상황에 대해 어렴풋이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그냥 버텨라. 버티면 분명 기회가 올 거라 이야길 했다. 사실 그 이야긴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대기발령이나 "실직"이라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 장인어른께 전화를 드려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할 생각이라 이야길 한 적이 있었다. 장인어른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불 같이 화를 내며, 왜 그만두냐고 언성을 높이셨다. 그만한 직장이 없거니와, 그냥 다니지 돈 몇 푼에 옮길 생각은 하지 마라. 평생 다닐 생각으로 그 회사를 다녀라 이야길 했다. 평생 노동만 하셨던 장인어른의 입장에서는 일반 사무직도 버티기만 하면 한평생 다닐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테이블에 오른 그 순간 와이프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냐는 말과 함께 그만 두면 뭐 먹고 살 거냐는 말, 애들 학원비는 어떻게 할 거냔 말을 하니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 버텨야지. 버티는 게 답이란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사인을 하지 못하고 "대기발령"이란 선택을 하게 되었다. 분명 기다리다 보면 답이 올 거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 존재와 관계를 영원히 지우려 하고 있으니, 그 기다림의 끝도 그들이 생각하는 결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니 조금씩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영원히 고립된 이곳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혼자 담배를 피우거나, 혼자 담배를 피우며 무료 자판기의 커피를 뽑아먹거나, 혹은 무료 자판기의 커피만 뽑아멱으며 담배는 그만 피우는 것 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나눠볼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말이다.

이 생활은 매일 똑같이 지내가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일상. 영원히 갇혀있을 것만 같은 감옥에서 나는 말 한마디 못하고,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은 노트북을 무심히 바라보며 시간만 때우고 있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첫 번째 주말을 기다리는 것이다. 금요일 오후 3시부터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으니 5시 30분이 되자 나는 기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집에 가면 마음 편하게 소주 한 잔을 하며 그간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까라는 고민. 실컷 잠을 자며 그동안 쉬지 못했던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릴까란 고민. 혹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며 시간이나 때울까라는 고민. 그 모든 선택지를 들고 가며 조용히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집에서도 여전히 불안했다. 단지 출근하지 않는 주말일 뿐이었지만, 그 주말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음 주에 무엇을 해야 하고 - 어떻게 버텨야 할지에 대한 고민일 뿐 그 이상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소주를 마셔도 여전히 우울했고, 잠에서 깨어나는 그 순간도 우울할 뿐이었다. 잠이 든 그 순간에는 차라리 편하고 행복해지길 바랐지만, 꿈속에서 조차 난 여전히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만 꿀뿐, 행복한 꿈은 남지도 않았다. 그러니 나에게 남겨진 주말의 행복조차 무거움의 연속이었다. 무언가를 배울까라는 사치를 부려보기도 했지만, 사실 남아있는 거라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밖에 없었으니 그 짐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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