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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May 30. 2023

실직에 대처하는 우리 모두들의 자세 - 13부

13부. 다툼

* 본 이야기는 현실과 아주 비슷할 수 있지만, 어느 특정 인물과 특정 회사 혹은 단체를 대상으로 만든 글이 아닌 작가의 순수한 창작에 의해 작성된 글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만약 본인의 회사, 단체, 인물과 유사하다 판단이 된다면 단지 그것은 우연일 뿐임을 미리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면 좋을까?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날 있었던 일을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금요일 저녁이었던 듯하다. 이미 권고사직의 이야기가 나오고, 대기발령이 시작된 그 시점에 동기들과 소주 한잔하고 싶다고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한 명은 같이 경쟁하던 사이였으나 나 보다 먼저 매니저 직함을 받았고, 한 명은 인사팀에서 잘 나가고 있으니 내 고민을 이야기하고 나누기 쉬울 거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내가 고민하기에 앞서, 그들은 내 고민보다 더 많은 것들을 들었으니 말이다.

며칠 전부터 만나자 했지만, 그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날 피했다. 이미 그랬다. 대기발령까지 받았으니 그들은 나를 만나는 게 부담스러웠으리라.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나와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나쁜 기운이 자신들에게 넘어가리라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난 잘못한 게 없었다. 단지 잘못한 게 있다면, 그 순간에 대처를 잘 못했을 뿐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인사를 하고, 나를 어필하고, 내 상황을 전달해 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난 그러질 못했다. 설마 나를 자를 건가?라는 자만심만 가졌을 뿐이다. 그리고 공채 출신이며, 업적이 많은 나에게 회사가 그런 결정을 내리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러하지 못했으니, 이미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 모든 일들은 진행이 되고 있었다.

내 이름과 직책은 회사의 인트라넷 상 조직도 어느 곳에도 뜨질 않았다. 회사에서는 내 존재를 지우고 싶었다. 내 책상을 치우고, 내 업무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다. 단지, 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사람 몇 명을 보내야 하는데, 내 명함이 좀 더 오래되었고, 저렴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들은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의 미래를 결정해 버렸고, 나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그 결정을 수용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미 만나기로 한 날, 그들과의 약속은 취소가 되어 난 무거운 발을 이끌며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 편하게 라면을 끓여 소주 한 잔을 하며 이런저런 고민을 해 보았다. 와이프와 아이들에게는 "그냥 속이 좀 불편해서..."라는 말을 하며 라면을 끓였을 뿐이지만, 거친 쌀밥과 반찬을 먹기에는 내 속이 받아주질 않았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아무 생각 없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소주 한 잔에 다 불어버린 라면 면발을 들이켜고 있을 때였다. 아마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나 보다. 갑자기 전화가 왔다. 인사팀에 있는 동기였다.


"어디야?"


어디긴, 집이지라고 이야길 하며, 나는 입에 머금고 있던 소주를 삼켰다. 그들은 조금만 기다리라며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했다. 난 이미 자려고 옷도 갈아입고 다 씻었으니 다음에 보자고 했다. 사실 이미 약속이 취소된 마당에 소주 한 병을 들이켠 상태에서 그 들을 만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 동기는 다짜고짜 나보고 기다리라 했다. 금방 온다고 했다. 막아도 억지로 올 것 같았지만, 정중하게 몇 차례를 거절하니, 이미 택시를 탔다고 한다. 금방 온다고 한다. 회사에서 출발한다고 하니 1시간 정도면 도착할 듯했다.

먹던 라면과 소주를 버리고 세수를 하고, 옷을 다시 갈아입었다. 얼추 9시면 도착할 듯했다. 지하철 역 앞으로 나오라고 하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9시 반이 되어서도 오질 않았다. 동기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30분이 지난 뒤, 동기가 전화를 한다. 조금만 기다리라 한다. 이제 곧 출발할 테니 금방 갈 거라 한다. 핸드폰 뒤 편에는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칠갑산이다. 술을 마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노래방을 좋아하고, 칠갑산을 힘차게 부르던 동기였다. 이미 노래방에서 한 시간은 더 걸려서야 올 듯했다. 난 다시 정중하게 노래방이 이제 막 시작한 거 같은데, 다음에 보자고 했지만 이미 끝났다고 한다. 물론, 내 생각이 맞았다. 그들은 그때 막 노래방에 들어갔었고, 한 시간이 더 지난 뒤에야 다시 전화가 온다. 11시가 넘은 시각. 그들은 이제 막 택시를 탈 거라 했다. 너무 늦었으니 돌아가라 하나, 택시가 잡히지 않아 늦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댄다. 그래도 오겠다는데 막을 수는 없어, 조금 더 기다리겠다 했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두 동기가 술에 만취해 택시에서 내린다. 이미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여 있었다. 무얼 먹고 싶냐고 하니, 해장국에 소주 한 잔 간단하게 먹고 싶다고 한다. 이미 나가기 전 주머니에 현금 5만 원을 들고 나온 뒤라, 소주 한잔 정도는 내가 살 수 있겠다 싶었다. 아무리 회사를 떠나가는 마당이라도, 비굴하게 얻어먹고 싶지는 않았다. 메뉴판을 보더니, 해장국보다 곱창전골이 맛있겠네, 여기 족발도 파니 족발도 시키자 하고 이 것 저 것 시키니 10만 원이 훌쩍 넘어버린다. 거기에 소주 1병에 맥주 2병을 시킨다. 이미 만취한 듯한데도 술이 계속 자신을 부르는 모양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


사실 그들은 내 상황을 알고 있었다. 권고사직을 통보받았고, 그 제안을 거부받아 현재 대기발령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소주 한 병을 비우며 했던 첫마디였다. 난 사실 힘들다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했다. 인사팀 동기는 이미 그 상황을 알고 있는 듯.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으라 하고,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고 이야길 한다. 난 그럴 용기가 나질 않는다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했으나, 그 들은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난 넌지시 팀장인 동기에게 이야길 꺼냈다. 예전처럼 기획 일을 다시 해 보고 싶은데 자리가 없겠느냐고 이야길 했다. 그 동기는 마시던 술잔을 집어던지더니 화를 내며 나를 쳐다본다.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무슨 소리긴. 당연히 이 회사를 떠나기 아까우니 너 한 테라도 내 미래를 부탁하고 싶을 따름이다고 이야길 했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손익관리와 제안서 작성은 자신 있으니 몇 년간은 마음 편하게 쓸 수 있지 않겠냐고 이야길 건넸다. 인사팀 동기는 내가 말하는 한 마디마다 꼬리를 달며 농담을 던진다. 


"미래? 윤미래?"

"손익? 소니?"

"제안? 제니?"


이런 시답지 않은 농담에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무언가는 부탁을 해야 하는 처지니 찬 밥 /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니 난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을 때 술잔을 던진 것이다.


"지금 뭔 소리냐고?"


술이 취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장난해? 인생이 장난이야?"


장난? 난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비굴하게 이야길 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장난"이라는 말로 돼 갚아 이야길 한다.


"장난해? 부탁을 한 다는 사람이 웃으면서 이야길 해?"


울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밝은 모습을 보이며 이야길 하고 싶었다.


"아니, 부탁을 한 다는 사람이 무릎이라도 꿇고 정중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러더니 그는 내 멱살을 잡더니 주먹으로 내 얼굴을 한 대 친다. 그리고 "인생이 장난이야?"라는 말을 한다. 그들은 그랬다. 날 위로하려고 만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만나자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내 생황이 어떤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언제 떠날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난 다시 웃으며 이야길 한다. 지금 이야기 한 건 없었던 걸로 하고, 앞으로 내 미래를 다시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다음 주에 본부장님과 부사장님을 잠시 뵈러 갈 예정이니 그때 얼굴이나 보자 하고, 술 값을 계산한다. 카드 값이 걱정이지만, 어쩔 수 없다. 괜히 이 자리에서 소주 한 잔 얻어먹어봐야, 난 더 비굴해질 뿐이다.

그 들은 내가 떠나고 난 뒤, 바에서 위스키를 두 병 더 마셨다고 한다. 아마 법인 카드로 결제를 했겠지만, 그 자리에 나는 없었다. 나와 헤어지기 위해 준비를 한 모양이다. 이왕이면 맨 정신으로 했으면, 좀 더 오랜 추억에 대해 회상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그러하지 못했다. 난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모든 것들을 정리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했다. 이제 내 이름과 직책이 적혀있는 명함이 필요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더 이상 회사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만 떠나야 할 시점이었다.


그리고 모두들에게 작별을 말해야 할 시점이었다.


집에 돌아온 뒤, 서랍에 있던 명함들을 무심히 바라본다. 그리고 웃으며 회사에서 주었던 배지며 상패들을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젠 그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는 것들이니 더 이상 이야기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간직할 필요도 없었다. 이젠 내가 해야 할 것은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었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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