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경력은 다소 특이합니다. 중학생 시절까지는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건 분명 다른 건 못해줘도 남들보다 빨리 컴퓨터 학원을 보내주시고, 386 DX, 120mb HDD에 16mb Ram을 탑재한 조립식 컴퓨터를 초등학교 4학년인 어린 저에게 사주셨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한창 학원에서 배우던 GW-Basic과 Turbo Pascal, C++ 등을 더듬더듬 배우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만 그 길을 쉽게 선택하진 못했습니다. 그러기에는 제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지요.
중학교 3학년 시절 청소년 문화재단이란 곳에서 운영한 CYC란 단체를 하며 컴퓨터 보안에 관심을 가져보기도 했고, 그 당시 현재도 활동 중인 후배인 MS MVP 무적전설(박성기 님)과 같이 PC와 여러 이야기들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 그 분야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었지만, 후배인 무적전설과 같이 한 길을 파고들만큼 전문적이진 못했으니 당연히 잠시 스쳐간 길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 시절 친구들이 항상 그러하듯, 저도 게임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RPG 게임 - 드래건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이스와 같은 스토리가 중심인 게임들을 좋아해 잠시나마 게임 제작자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게임 제작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을 제가 갖질 못했으니 그 꿈도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저의 어린 시절은 그저 "이야기"가 좋았고, 그 이야깃거리를 풀어나가는 게 좋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뒤 고등학생이 되며, 저의 꿈은 점점 좁혀져 "작가"라는 이상향을 향해 달려갔지만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대학 진학은 타협을 할 수밖에 없어 영문학으로 진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작가가 된다는 것은 평생 배고프며 살아야 한단 뜻이니 - 그나마 아버지께서는 못 벌어도 학교 선생이 되면 굶어 죽진 않지 않겠냐고 하며 그 길을 강요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아버지는 일반 대학보다는 교대를 진학하길 원했고, 서울에 있는 교대보다는 한적한 지방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치열한 경쟁 없이 살길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그러하질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세상이 변화하는 트렌드에 따라가는 것이 너무나 좋았고, 그걸 풀어가는 게 좋았으니 어찌 보면 컨설턴트의 길을 걷는 건 숙명이었는지 모릅니다.
사실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컨설턴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아니, 컨설턴트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지요. 다시 20대로 돌아가서, 대학생이 되어 진로를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전 아무 고민 없이 컨설팅사의 인턴을 지원했을 겁니다만 사실 그 일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지요. 장교 생활로 군 복무를 마무리하고, 너무나 당연한 듯 대기업 관리팀으로 입사를 하는 동안 사실 머릿속에는 아직 많은 길들에 대해 고민만 있었습니다. 대학시절엔 당연히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글로 돈을 벌어먹을 수 있는 길 중 하나는 "기자"라는 생각에 이왕이면 멋지게 살아보고자 종군 기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태국의 국제 프레스 센터에 꼭 입성을 하겠단 다짐을 하며 힘든 군 생활을 버텼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돈이 없었지요.
태국에 가려면 분명 돈이 필요하지만, 그 돈이 없었으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돈을 모으는 길 밖에 없없습니다. 소위 첫 월급이 80만 원이었으니 약 40개월 동안 호봉이 오르며 조금씩 오른 돈을 모아 4000만 원 정도 만들고, 그중 300만 원은 생에 첫 카메라인 Leica X1을 사고 나니 3700만 원이 남더군요. 그중 누나에게 빌린 등록급 700만 원을 갚고 나니 내 손에 있는 것은 약 3000만 원 정도였습니다. 간신히 태국에 갈 비행기표와 숙소 정도만 잡을 수 있는 돈이었지요. 그 돈 가지고는 뭘 할 수 없단 생각에 취직을 결심합니다. 그러다 운 좋게 대기업 관리팀에 아무 고민 없이 들어가게 되었으니 참 행운이다 생각을 했지요.
그 당시 목표는 딱 3년이었습니다. 연봉 2700에 계약을 했으니, 적당히 생활비와 이것저것 쓰고 나서 1년에 2000만 원씩 딱 3년을 모아 9000만 원 정도 모이면 그 돈으로 태국에 들어가 종군 기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돈으로 카메라와 렌즈를 사고, 어학 공부도 좀 하고 생활비도 하고 하면 충분한 돈이었겠지요. 하지만 그 꿈은 금방 사라집니다. 당연한 순서대로 회사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과 와이프의 돈이 모여 지금 살고 있는 보금자리의 첫 시작이 되었으니까요. 당연히 머릿속에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 생각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고 마음속 깊은 곳에 선 그 꿈에 대한 간절함만 가지고 있었지요.
그 모든 꿈의 도착지는 사실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일반 기업에서 "이야기"는 "숫자"였고, "돈"이었지요.
그 "숫자"와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관리팀 파트장으로 - 그리고 부장 직급으로서 관리회계 업무를 13년간 수행하다 보면 모든 농담과 대화의 주제가 "관리"에 포커스를 맞추어 이야길 하게 됩니다. 신입사원은 "건중자(건설 중인 자산)"이라 이야길 하고, 신입사원이 OJT 기간이 끝나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면 "감가(감가상각비)" 되었다고 농담을 합니다. 많은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성과가 더디게 나타나면 "수율"이 낮다고 이야길 하고, Output이 더디게 나타나면 "BOM"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길 하였지요. 저의 이야기에 대부분의 단어가 관리회계였으니, 작가라는 꿈에서 관리회계 담당자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다시 한번 이야기를 만들고자 달려가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13년의 회사원 생활을 뒤로하고 컨설턴트의 길을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저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이왕이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길이 좋고, 그 "이야기"중 내가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것들을 풀어갈 수 있는 길이면 더욱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분명 컨설턴트는 회사 현업 담당자보다 더 많은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더 넓은 생각을 가지고 그 회사가 진보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다방면으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라면 저는 너무나 협소하게 일을 하고 배워왔기 때문에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기회를 가지고 도전을 하게 된 것은 분명 많은 고마운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우선 이 길을 걷기 위해 무한으로 응원해 주셨던 저의 마지막 1차 상사였던 담당님의 격려가 컸습니다. 벌써 8년도 더 전에 함께 전 세계를 누비며 PI 업무를 함께 수행했던 추억의 함께 있었기 때문에 제가 선택한 길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해 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길을 가기 위해 도와주었던 많은 분들, 그리고 제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INF컨설팅 대표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지요.
앞으로 이 글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원래 사진과 글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였지만, 제가 하는 업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듯합니다. 당연히 일이 몰려들다 보면 글을 쓰기 힘들 수 있겠지요. 그래도 최대한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