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카메라 : Leica MP, Elmarit-m 28/2.8, Ilford XP2 400, Adobe Lightroom 보정
사진을 찍을 때 제일 필요한 것은 당연히 "카메라"이겠지만, 카메라가 준비가 된 다면 그다음부터 고민은 무엇을 찍을까에서부터 시작한다. 인물을 찍을 것인가? 정물을 찍을 것인가? 아니면 풍경을 찍을 것인가? 이 상황에 따라 각각의 장비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촬영 기법도 차이가 있어야 하니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사진 찍는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나올 것만 같은 멋진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내공이 부족했다. 그래서 인물보다는 주변의 풍경을, 주변의 풍경보다는 거리의 모습을 찍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니 내 눈을 통해 바라보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단 생각을 가지고 언제나 사진을 찍곤 했다.
특히, "색"에 대한 감각이 없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흑백을 선택할 때도 많았다. 아무래도 흑백을 선택하면, 사진과 우리 주위가 만들어내는 빛과 색의 조화보다는 빛과 그림자라는 단순한 조합으로 형태를 만들어내니 조금 더 쉬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맘에 드는 색감을 찍더라도 그 색감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정도의 색감은 아니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보여주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 흑백을 선택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부족한 나의 실력을 "흑백"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숨기고 - 희석되게 만드는 의도가 좀 더 강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위의 거리 사진을 찍을 땐 그 어느 때보다 편했다. 두 발로 걸으며 "눈"으로 바라본 세상들의 이미지들은 다시 뷰파인더와 필름이 새롭게 재 해석을 하고, 자주 가는 현상소의 사장님의 손길에 의해 또 한 번 재해석되는 결과를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Adobe Lightroom을 통해 또 한 번 조정을 하니 실제 가지고 있는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니 그 순간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항상 출-퇴근을 할 때나, 외출을 할 때, 혹은 누군가를 만날 때 카메라를 들고 찾아가곤 했다.
물론, 항상 아무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사진을 찍지만은 않았다. 아주 가끔씩은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사진을 찍을 때도 있으니, 마침 이번 사진이 그러했다. 언젠가부터 노원 "백사마을"을 방문해야겠단 생각을 했었다. 다큐멘터리 혹은 르포 프로그램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았던 백사마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단 생각도 있었고, 어린 시절 기억에 있던 그 달동네의 풍경이 요즘은 어떠한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생각을 품고 카메라를 들고 가는 그 순간도 몇 달이 걸려서야 가능했다. 아무래도 일과 병행하려다 보니 힘들다는 핑계 - 주말에 가족들과 떨어져서 혼자 사진을 찍으러 가려는 미안함 때문에 한 순간 때문에라도 쉽게 나가질 못했다. 하지만 마침 그 순간은 나 혼자 집에 있었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갔을 때, 이미 "백사마을"은 재개발의 열풍으로 정신이 없었다. 주위의 부동산 간판과 건축 시공사의 플래카드, 유치권과 소유권을 주장하는 표지판들이 서로 뒤엉켜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그곳이 "생존"을 위한 작은 삶의 터전이 될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곳은 "일확천금"을 얻기 위한 기회의 땅이 되고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의 손길보다는 소유권을 주장하는 푯말이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풍경인 듯했다.
조용히 그곳을 걸어가며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분명 사람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 그곳이었지만, 누군가 살아가는 곳과 단지 소유권만 주장하는 곳의 차이가 금방 눈에 띄었다. 바로 화단이었다. 작은 화단에 살며시 얼굴을 내민 꽃 몇 송이. 그 꽃 몇 송이가 이곳은 사람이 살아간다고 표시를 해 둔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오래된 건물의 모습과 무너진 돌 담만을 응시했다면 절대 찾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분명 누군가의 생각에서 만들어낸 아름다움이었고, 간직해야 할 순간이었다. 그러니 사람이 살아가는 온기는 "꽃"이라는 매개채로 사진으로 만들어가곤 했다.
이 순간은 분명 의도를 하고 방문을 하였기 때문에 적절한 렌즈와 적절한 필름을 함께 들고 갔던 때였다. 항상 모든 사진이 아름답게 찍어지지는 않는다.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고 방문을 하였을 때는 의도하지 않은 사진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아쉽게 필름이 떨어져서 사진을 찍지 못하는 순간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분명 그 순간에 만들어낸 이미지는 내가 바라보는 그 순간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미지였으니 말이다. 물론 다시 바라본다면 그 느낌은 어느 정도 사라질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순간의 느낌이 참 아름답게 다가올 수 있으니 기대감을 갖고 사진을 찍곤 한다.
때론 목적을 가지고 의도하고 찍는 사진도 있지만, 생각했던 그 폐허의 모습이 아닌 의도치 않은 아름다움을 찾았을 때의 기쁨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