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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Jul 26. 2022

거리 사진 6 - 사라진 다는 것은?

(중계동 백사마을의 흔적 남기기)

마크 네빌을 꿈꾸며(Iphone 11)

비 온 뒤라 그런지 그날은 참 날씨가 맑았다. 하지만 날씨는 여전히 덥고 습했다.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중계동 백사마을"의 촬영은 순전히 즉흥적인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진작부터 방문하고자 하였던 곳이지만, 쉽사리 시도하기 어려웠던 그곳. 그곳도 마찬가지로 재개발을 진행하기 위해 한창인 곳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 상 "달동네"라는 개념은 작은 방 한편에 여러 식구가 모여 살던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생각을 해 보니, 내가 살던 그곳이 달동네였던 것 같다. 분명 "달동네"에 대한 기준은 많이 바뀌었지만, 언젠가는 "산동네"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또 언젠가는 "달동네"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하였다. 당연히 외국에서는 Shanty town이라 부르는 그곳. 혹은 Slum이라 부르는 그곳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단지 집을 구성하는 재료가 같아서 판잣집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은 아직은 존재하던 곳이었다.

우리의 주위를 둘러보자. 분명 우리들의 머릿속에, 그리고 TV에서 혹은 얼핏 지나가던 그곳에서 바라보았던 그곳이다. 단지, 머릿속에 남기지 못한 이유는 무심코 지나가다 보니 그곳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쳤기 때문일 듯. 항상 존재했던 그곳. 내가 어린 시절 살며 친구들과 뛰어놀던 그곳. 어쩌면 나에게만큼은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곳에 대한 기억을 찾는 여행이 될는지 모르겠다.

중계동 백사마을은 중계본동 104번지라 백사마을이라 불린 곳이었다. 이곳의 역사는 중요하지 않다. 정부의 보여주기 정책의 희생으로, 그리고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에서 너무나 자세히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단지 오늘의 그곳을 기록에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려 했다. 이곳 백사마을은 30여 년 전에는 정부의 정책에 의한 슬픈 이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지금은 재개발이라는 목적에 의해 또다시 이주를 해야 하는 슬픔이 남겨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은 원 주민들이 아닌 투기 자본이라는 돈의 흐름에 따라 또 다른 이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되고 있다.

백사마을 입구(Leica SL, Sigma 24-70 / 2.8)
철망 아래서(Leica SL, Sigma 24-70 / 2.8)

입구를 가득 채운 그곳의 모습은 재개발을 안내하고자 하는 그곳의 모습이었다. 정말 작고 불편한 이 땅이 재개발을 통해 브랜드 아파트가 되면서 엄청난 프리미엄과 반드시 떠나야 한다는 강요만이 남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그곳이 삶의 터전이었지만, 이제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부를 쥐어줄 그곳이었다. 물론, 이곳은 이동하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혹은 경제적인 논리로 전혀 개발이 되지 않았던 곳이다. 판자 몇 개를 얽기 설기 올려놓아 만든 지붕과 반듯하지 못한 골목들, 그리고 폐허가 된 집과 아직 새로운 터전을 찾지 못해 이주하지 못한 사람들이 뒤얽혀 있다. 그리고 한 편에는 "XX 개발 소유"라는 이름으로, 거주자의 권리가 아닌 부의 권리를 표시해 놓은 표지판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마치 미로와 같은 그곳. 그 미로를 따라 끝없이 올라가면, 여전히 그곳에 사람은 살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곳을 표시라도 하 듯, 그곳에는 허름한 판잣집 앞에 너무나 화려한 듯 생기 넘치는 꽃으로 수를 놓는다. 그들에게 있어 이곳은 단지 좁은 집이 아니라, 피로를 풀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일 것이다. 그리고 남아 있는 것은 먼 미래의 희망을 간직한 그곳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에 남은 것은 깨진 유리창과 벽돌, 쓰러질 듯한 판자와 철조망. 그리고 이주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폐허들만 넘쳐나는 그곳. 그렇다. 이곳 역시 잊히길 바라는 사람들에 의해 가꾸어지고 있었다.


불길이 지나간 곳(Leica SL, Sigma 24-70/2.8)
십자가가 떠난 이후(Leica SL, Sigma 24-70 / 2.8)
손님이 떠난 구멍가게(Leica SL, Sigma 24-70 / 2.8)

보통 재개발 구역은 전부 이주하여 쓰레기만 남았거나, 재개발이 예정되어 어떠한 유지보수도 이루어지지 않은 슬럼화 된 집들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백사마을은 다른 곳이다. 이곳은 애초부터 불암산 근처 산 길을 중심으로 하여 오르막길에 좁다란 길목을 따라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물론, 이러한 집의 원 주인은 따로 있다. 그들은 거주지의 주거 환경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더 많은 사람들이 세 들어 살고, 그 들이 매달 쥐어주는 사글세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래서 내가 어린 시절 달동네에는 여러 세대가 모여 살았지만 화장실이 하나였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공용화장실이 군대군대 보일 뿐, 실제 각 세대마다 화장실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여러 식구들이 사용하던 화장실 한편에는 신문지 몇 장이 접혀 있었다. 화장지 쓰는 것도 아까워 쓰던 신문지 몇 장. 이곳이 이런 것은 여길 살아가는 사람들이 게을러서 그랬겠는가? 분명 돈 몇 푼이라도 더 벌고자 하는 원 주인들의 욕심 때문에 생겨난 불편함이다.

또 하나의 이곳의 특징 중 하나는 골목이다. 골목길 굽이 굽이 걷다 보면, 냉장고 하나, 장롱 하나가 옮겨질 수 있는 골목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상당히 좁다란 골목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집 기구를 구비하여 살아간다. 아무리 좁은 골목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꿈이 좁아지진 않았을 것이다.


골목길(Leica MP, Elmarit-m 28/2.8 2 ndm Ilford XP2 400)

하지만 이제 이곳은 많은 거주민들이 떠나가는 곳이다. 이제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은 소수밖에 없다. 2018년 재개발이 확정된 이후, 이곳은 건설사의 재개발을 위한 이주가 진행되는 곳이다. 올 가을이 지나면 사라질 그곳. 그곳의 사진을 남기며 이 글을 마친다.

십자가가 떠난 그곳(Leica MP, Elmarit-M 28/2.8 2nd, Ilford XP2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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