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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Jul 23. 2022

거리 사진 5 - 다르게 바라보기

(흔한 일상의 새로운 시각)

우리의 일상에서 특별한 것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기보다는 사소한 움직임에서 조금씩 다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시간의 변화에서 계절의 변화,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그 순간의 찰나에서 큰 변화를 느끼기 어렵지만, 조금씩 변화해가는 것은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한 삶의 이치와 기본적으로 거리사진을 찍을 때 억지로 "특별한 것"을 찾지 않는 것이 제1의 원칙이다. 늘 지나가는 거리는 분명 변하지 않겠지만, 어느 순간 내가 찍은 거리 사진을 찾아보면 눈에 띄게 변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날은 카메라를 들고 종로 길거리를 나서던 때였다. 어린 시절, 3천 원이란 문화비에 달콤한 차 몇 잔과 컵라면 하나를 3시간 동안 즐길 수 있었던 "민들레 영토" 건물이 저 멀리서 보였다. 사실 지나갈 때마다 늘 보던 곳이고, 이곳이 폐업한지도 꽤 오래된 것 같지만, 문득 이곳을 지나가며 예전의 기억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그때의 시절과 지금의 내가 묘하게 교차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때론 거리사진은 이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찍는 그 순간을 통해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민들레 영토"는 고등학생 시절, 대학생 선배들을 따라 자주 찾아가던 곳이었다. 세상 낯설던 철없는 고등학생에게 달콤한 체리차와 맛있는 컵라면을 3천 원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천국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큰 강아지(아마 골든 레트리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마리가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서빙을 보던 누나들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나옴직한 메이드복을 입었던 것 같다. 벌써 25년도 더 지난 오래전 추억이다. 그리고 대학 시절, 학우들과 스터디를 한다는 명목으로 방문하여 한 껏 수다를 떨다 가던 곳. 레이스 달린 식탁보와 커튼이 이뻤던 그곳. 소개팅도 하고, 미팅도 하며 20대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했던 그곳. 하지만, 그곳은 이제 건물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고, 사람들도 무심히 지나가는 그런 곳이 되고 말았다.


Once upon a time, there was "민들레 영토"(Leica MP, Summicron 50/2.0 DR, Ilford XP2 400)
무심히 지나가는 그곳(Leica SL, Summilux 50/1.4 3rd)

이곳의 화려한 벽돌은 이제 조금씩 떨어져 나간다. 그만큼 나의 20대의 추억도 하나씩 사라져 갈 수 있다. 거리사진은 기록을 위한 움직임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역사의 사료로 남길 수 없지만, 거리사진만큼은 내가 기억한 "추억"에 대한 역사적 사료로, 그리고 먼 훗날 후손들 - 그리고 역사학자들의 역사적 단초를 제공하기 위한 하나의 숭고한 작업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상일지라도,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는, 그리고 몇 년 후 나에게는 분명 새롭게 다가올 수 있는 그런 순간이 되는 것이다.

일상의 거리는 늘 변함이 없다. 언제나 똑같은 차량이 똑같은 거리를 지나간다. 일상의 출퇴근도 동일하다. 사람들은 힘 없이 걸어가며, 회사를 향해 그리고 집을 향해 걸어간다. 목적지도 늘 변함이 없다. 단지, 날짜가 지나고 시간이 지날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생각하면, 정말 변화 없이 지나가는 그 순간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곳에는 늘 있던 것이 생기기도 하고, 없던 것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은 빛의 방향이 될 수 있고, 무언가 주차한 스쿠터의 위치, 쓰레기를 가득 싣다 잠시 쉬어가는 리어카의 휴식이 될 수도 있다. 


잠시 기다림(Leica SL, Summilux 50/1.4 3rd)

시선을 돌려 피맛골로 가 본다. 그곳 역시 늘 변화하던 곳이었고, 저녁만 되면 늘 시끄럽던 곳이었다. 막걸리 한잔, 소주 한잔을 걸치며 저녁을 때우던 그곳. 하지만 이제 그 피맛골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있다. 그곳의 어지러운 전선줄과 배관의 흔적은 남아있지만, 그때와 같이 구불구불 미로와 같은 골목길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쪽은 가벽이, 한쪽은 옛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변해만 가는 걸 인지하는 건 오랜만에 방문하였을 때나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의 특권이다.


피맛골 1(Leica SL, Summilux 50/1.4 3rd)

거리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피사체는 어느 특정 사물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지만, 난 거리 전체의 모습을 바라보고자 한다. 그 거리는 분명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나가는 거리였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그 거리는 분명 우리가 다르게 보았을 때 특별하게 다가갈 수 있는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때론 프레임에 가둠으로써, 때론 흑백이라는 색을 통제함으로써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때론 나의 믿음과 신념이 거리 사진의 모습을 완성할 수 있다고 본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찍고 있으면 늘 듣는 이야기는 "뭐가 특별한 게 있어서" 혹은 "뭘 찍을 게 있다고" 사진을 찍는가 라는 잔소리였다. 사실, 나도 찍을 게 없다고 느낄 때도 많다. 그렇다면 그 거리는 이미 나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더 이상 변화를 찾을 만큼  집중할 수 없는 그런 거리란 뜻이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바라본다면, 그것은 정말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게 오늘이 될지, 혹은 먼 미래가 될지라도 말이다. 다르게 보면, 세상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일 수 있다.


흔적(Leica MP, Summicron 50/2.0 DR, Ilford XP2 400)
복잡함 속 정돈(Leica MP, Summicron 50/2.0 DR, Ilford XP2 400)
연결의 흔적(Leica MP, Summicron 50/2.0 DR, Ilrod XP2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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