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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Jul 20. 2022

거리 사진 4 - 잠시 쉬어가기

(거리의 아무거나 찍기)

학원을 다니느라 분주한 큰 딸의 일정을 맞추기 쉽지 않아 그날은 호캉스 겸 송파에 있는 한 호텔에 투숙하기로 했다. 원래 목적은 1박을 하고 다음날 워터파크에서 신나게 놀고 집으로 복귀하는 일정이었으나, 마침 저녁에 둘째 딸 소피아가 열이 나기 시작하여 일정을 조정하였다. 생각하지 못한 일정이 생기다 보니, 카메라의 뷰파인더는 어디를 응시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하지만, 뷰파인더가 꼭 특별한 것을 찍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내 눈이 따라가는 대로, 내 마음이 따라가는 대로 한 컷씩 남기기 시작했다.


준비 혹은 기다림(Leica MP, Voigtlander Nokton 35/1.2 ASPH 2, Ilford XP2 400)

실내 포장마차는 아직 준비를 하지 않은 듯했다. 시간은 이제 막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나, 테이블의 의자는 아직 식탁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별 의미 없는 사진일 수 있지만, 무언가 기다리고자 하는 이미지는 우리의 간절함을 간접 접으로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일 수 있다. 두 번째 카메라를 꺼내 같은 장소를 또다시 사진을 찍어본다. 필름과는 다른 질감이 사진으로 남겨졌을 거라 기대를 해 본다. 당연히 디지털과 아날로그 필름의 결과물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만족도는 아날로그 필름이 더 높기는 하지만, 때론 편리함이 사진을 찍는데 주된 요소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기다림(Leica SL, Sigma 24-70/2.8)

거리 사진을 찍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촬영하기다. 불특정 다수가 지나가는 거리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허락도 없이 셔터를 누른다면 상당한 불쾌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정말 괜찮은 포토그래퍼라면 명함에 "전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며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동의하는 사람에 한하여 사진을 촬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러질 않는다. 일본의 포토그래퍼 타츠오 스즈키의 논란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의 작품 활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다.

후지필름에서 X100v가 출시되었을 때, X-포토그래퍼를 선정하여 해당 작가에게 후지필름의 카메라를 대여해 주고 각자의 작품을 찍도록 하였다. 타츠오 스즈키의 작품을 구글에서 검색해 보면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 많이 있으나, 실제 이 작품을 어떻게 촬영하는지 후지필름의 광고 영상을 보았을 때 충격은 상당하였다. 내가 사진을 찍는 행위가 사진을 찍힌 것에 대한 불쾌함을 상쇄할 정도로 의미가 있는 일인지에 대한 논쟁이 발생하였다. 타츠오 스즈키의 작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하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불특정 상황에 대해 "스트리트 포토그래피"에 대한 장르의 정의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작업하는 스트리트 포토에서 항상 포함하고자 하는 것은 불특정 다수의 자연스러운 표정이다. 하지만, 그 부분이 논란이 많기 때문에 쉽사리 찍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내가 찍는 피사체의 대상은 나의 가족과 주변의 지형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지나가며 바라본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것도 상당히 재밌는 작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 마주친 커다란 스마일의 웃음은 상당히 낯설 수 있지만, 사진으로 표현될 수 있는 아주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물론 이 동네를 잘 알고, 거주하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있고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나처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스마일 구가 주는 매력은 놀라움과 신기함, 반가움이 함께 교차되어 나타나게 된다. 길 한복판에 스마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당연히 처음 보는 것이니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다.


스마일(Leica SL, Sigma 24-70/2.8)

이 날, 셔터의 대부분은 두 딸을 향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때론 낯설고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내가 결정한 색감에 의해 혹은 때론 흑백으로 변환이 됨으로써 낯설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게 다가오게 된다. 이것이 사진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거리에서 보는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 새로운 색으로, 그리고 새로운 프레임으로 다가왔을 때의 느낌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늘 익숙하지만, 새로운 것이기에, 또 한 번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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