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소대 들어! 현 시각부로, 장교교육대 소대원들은 세신을 실시한다. 현 시간 16시 43분. 각 소대는 16시 50분까지 세신을 완료한다!"
토요일 오후. 어김없이 방송은 흘러나온다. 이제 입교한 지 3주 차가 되었을까? 우리가 입은 CS복이나 체련복에선 이제 땀냄새인지? 아니면 썩은 곰팡이 냄새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악취가 진동한다. 머리도 간신히 보급으로 준 오이비누로 감았을 뿐이며, 목욕도 오이비누로 했지만, 그 흔한 타월 하나 없었고 수건도 고작 보급받은 두 개 밖에 없었으니 씻으나 안 씻으나 냄새가 나는 건 똑같았다. 단지 씻는다는 건 따뜻한 물을 몸에 끼얹을 수 있다는 특혜밖에 없었다.
하지만 뜨거운 물을 끼얹을 수 있는 특혜도 소수만 누릴 수 있었다. 우리 장교교육대 총원은 현재 118명이며, 그 118명 중 여군 사관후보생은 총 10명이라 그 여군이 먼저 세신을 해야 했다. 단지 남녀 차별 때문에 여군이 먼저 씻는 것은 아니었다. 장교교육대는 대다수의 남군들과 극 소수의 여군들이 입교하였으나, 군 사령부에서는 합리적으로 여군을 위한 시설을 안 만들고 순서만 지정하는 것으로 남군과 여군을 분리시키는 방안을 고안해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군은 여군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으니, 세신을 먼저 해야 했지만 보일러는 세신이 결정된 직후 틀었으니 처음 나오는 물은 얼음장보다 차가운 냉기 가득한 찬물이었다. 당연히 그 찬물로 씻는다는 것은 3월의 바닷바람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긴 머리를 재빨리 씻고 말려야 하나 장교교육대는 그 흔한 드라이기도 없었으니 세수와 발만 씻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그다음은 1소대부터 남군들의 몫이었다. 아직 보일러는 가동 중이었으니 1소대 역시 찬물로 씻어야 했다. 그다음 2소대, 3소대... 마지막 5소대 까지였으나 보일러는 그중에 잠깐의 시간 동안 뜨거운 물이 나올 뿐이다. 그러니 결론은 누구나 찬물로 대충 씻고, 잠시 혜택 받은 사람들만 뜨거운 물로 대충 씻는 혜택을 받을 뿐이었다. 전 소대가 7분 동안 세신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속옷 정도만 갈아입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훈육 대장들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 그들이 씻는지 안 씻는지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들은 건수를 잡아야 할 뿐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아직 민간인 때가 묻어있는 후보생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군인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일 뿐이었으며, 그 작업의 결과는 아무 생각 없는 나무토막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군대를 간 계기도 너무나 즉흥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한창 대학원을 다녔을 때 지도 교수의 부당한 대우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정말 우연히 학부를 조기졸업 했을 때, 그 지도 교수는 나에게 소주를 한 잔 사주며 이야기했다.
"정군은 정말 재능이 많은 친구야. 하지만 딱 한 가지 부족한 건 참 스승이 없기 때문이야. 그 참스승을 이제는 만나야 하지 않겠어?"
그 지도 교수의 말은 정확했다. 당시 유명 학회의 학회장까지 하며, 학문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김교수는 사람 보는 눈까지 정확했는데, 내가 참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물론, 재수를 하였을 때 추천서를 써줘 이렇게 대학을 가게 되긴 하였지만, 그 선생님께는 단 한 번도 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나의 스승이라 이야기할 순 없고 그저 은인일 뿐이었다. 그러니 난 그때까지 참스승을 만나지 못했으나, 문제는 그 이후로도 만난 적이 없었다. 김교수는 단지 학문적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이지만, 그 학문적 명성이 본인의 실력이었다기보다는 단지 와이프의 후광과 자신의 집안의 영향력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교수는 당시 아버지가 총장이었으니, 대학 교수의 임용권을 적절히 잘 사용했고 - 마침 그 분야의 교수가 몇 년 후 은퇴할 것이란 것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으니, 박사 학위 전공을 급하게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남들이 연구하지 않았던 분야였으니 그 분야의 일인지가 되었으며, 일인자가 되니 자연스럽게 TV출연이 잦아지게 되는 연쇄 순환의 고리 속에 대학원 생들의 역할은 말도 못 하게 만났었다.
그 교수의 와이프도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대학교수였으며, 본인의 교수 임용을 위해 아버지의 힘과 와이프의 영향력을 이용하고자 정든 부인과 딸을 헌신짝처럼 내팽겨 쳤다는 것. 그리고 그 교수와 결혼을 약속한 그 순간 두 학자의 삶을 보필하기 위해 대학원생들이 필요했다는 것은 이미 암묵적으로 유명했었다. 외동아들이 태어났을 때, 외동아들의 케어부터 시작하여 목욕은 그의 와이프의 몫이 아닌 대학원생의 몫이었으며, 그의 와이프는 아이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상아탑에 다시 돌아와 "진정한 학자"라는 칭호가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찬사가 이어졌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 그리고 유치원을 다닐 때 해야 할 일은 이미 대학원생들의 몫이었다. 등원과 하원뿐만 아니라 준비물 준비, 원복 세탁 등등은 대학원생의 몫이었으며, 심지 외아들이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할 때도 그 몫은 대학원생이 해야 할 일이었다.
문제는 외아들을 챙겨주는 대학원생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자신을 챙겨주는 대학원생도 당연히 존재했으니 각자의 역할 분담은 철저하게 나눠져 있었으니 누구는 대리운전 담당, 누구는 장보기 담당, 누구는 집안 청소 담당 등등 각자의 역할을 철저히 맡아서 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체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당연한 듯, 대학원생들은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었고, 학위를 따고 싶었으나 그 교수 밑에 있으면 의도적으로 그러했는지 아니면 다들 공부를 등한시해서 그러했는지 학위 취득이 번번이 미끄러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학위 취득을 하였으면 다행이지만, 그 이후에도 유학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 학교에 남아 박사학위를 해야 했으며, 박사를 마친뒤에는 지도 교수가 점지해 준 강의 몇 개를 하며 연명해야 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그 교수를 떠났다. 새로운 대학원생도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그를 만났으며 남들이 업무 분장에 따라 철저히 일을 나눠 수행하던 것을 나와 선배 대학원생, 박사학위 취득을 한 이 박사와 나눠해야 해야 한다는 단점이 생기게 된다. 난 외아들의 등원, 대리운전, 논문 초안 작성등을 당연히 해 주어야 했지만, 그 논문의 공동저자의 이름에는 항상 빠져있었으니, 그 순간 내 꿈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난 더 이상 대리운전도 하기 싫었고, 외아들의 등원과 하원을 책임져 주기도 싫었다. 그리고, 지도 교수의 강요로 군 입대 연기를 계속 진행하기에는 30대 넘는 나이에 입대를 한 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마이너스였기 때문에 27살의 나이에 어떻게든 군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난 그날 지도교수를 찾아갔다.
"교수님. 저 내년 3월 1일에 입대합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지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도 마무리 준비를 해야 하니 그때까지 필요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김교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에게 재떨이를 던진다.
"야이 개새끼야! 너 박사 학위 취득할 때 까진 군대 못 간다고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어? 네가 군대를 가고 싶었으면 애초에 대학원 들어가기 전에 갔다 왔어야지!"
다행히 내 머리를 맞추진 못했지만, 담배꽁초와 담뱃재가 내 머리 위에 조심스럽게 앉아있었다. 분명 끈적이는 것은 가래침이 분명했으니, 김교수는 나에게 기억에 남는 선물을 주었던 것이다. 그날 지도 교수의 욕을 정신없이 들은 뒤, 난 조용히 인사하며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교수는 악에 받쳤는지 나에게 문자 메시지로, 음성 메시지로, 전화로 여러 수단을 동원해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채찍이었다. 그러다 필요한 건 당근이라 생각했는지 다시 한번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정군. 내가 그땐 화가 너무 많이 났나 보네. 공부를 아직 마치지 않고 군대를 간다는 건 자네한테도 마이너스야. 이왕 공부를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마쳐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음성메시지는 더 간절하게 남겨져 있었다.
"정군. 나 김교수네. 자네가 그렇게 무책임한 친구인 줄 몰랐네. 분명 자네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끝 마쳐야 할 일이 있으니 그걸 꼭 마무리하고 군대를 갔으면 하네."
난 그 교수의 사이버 강의 교안을 만들어줘야 했고, 논문을 두 편 더 써줘야 했다. 교수 평가는 1년에 학술등재지 기준 4편을 써야 했으니, 난 그 교수의 업적의 절반을 채워줘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일들이 있었던 거 같은데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음성메시지가 남겨진 뒤, 그 뒤에는 대학원 선배들이 찾아온다. 30대 후반의 박사학위 과정인 김 선생과 이박사는 내가 떠나면 그 일을 본인이 다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절박한 나머지 찾아왔던 것이다. 난 그 둘과 소주 한 잔을 하며 간절히 이야기했다.
"전 개가 될지언정, 노예가 되긴 싫습니다."
그리고 난 떠났다. 그리고 군 입대를 결정했다. 이왕 가는 김에 강한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해병대를 지원했으나, 해병대는 해군의 예하부대였으니 입교는 포항이 아닌 진해에서 시작되었다. 진해의 입교 장소는 너무나 화려했다. 장교들 아니 사관학교 학생들을 위한 장소였으니 2인 1실의 내무실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호텔과 같았다. 내무실 안에는 개별 샤워실과 세면대가 있었으며, 아침에는 늘 시리얼과 우유가 배식되었다. 아침을 종종 걸었던 나는 시리얼과 우유가 좀 더 먹기 편했던 음식이었다. 당시 우리는 해군 후보생들과 같이 훈련을 받았는데, 해군 우보생들은 시리얼과 우유를 암묵적으로 "짤짤이"라고 이야길 했으니, 나도 아침마다 "오늘은 짤짤이나 먹어야겠다."라고 이야기하며 시작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고작 2주간만 진해에서 보내야 했다. 실제 해군과 해병대는 다른 훈련을 받아야 했으니 해병대의 요람이었던 포항으로의 이동은 우리의 마지막 휴식이었다. 버스를 타고 몇 시간 남짓 이동을 한 뒤, 훈육 대장은 조용히 해병대 군가를 자장가 삼아 잘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난 뒤에 우리는 지옥으로 떨어졌음을 실감했다. 버스에 내리는 그 순간, 우리의 집이 들어있는 더플백은 연병장에 던져지며 우리는 그 순간부터 모래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잔디가 깔려있던 멋진 연병장과는 달리 포항의 장교 교육대는 굵은 모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포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진흙탕을 뒹굴기 시작했다.
이유는 없었다. 훈육 장교들은 훈육 대장의 지침을 받아 그들의 때를 벗겨내야 한다고 했다. 이미 민간인 때가 묻어 있었으나, 그 민간인 때를 더 해 물개들의 때도 묻어 있었으니 그때를 푹 불려 벗기려면 더더욱 굴려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리고 그 논리에 따라 우리는 정신없이 구르기 시작했다. 왼쪽 가슴에는 아직 정식 해병대원이 아닌지라 노란색 장판으로 만든 명찰이 달려 있었으니, 예정된 6주간의 빨간 명찰 수여식을 맞추려면 더더욱 굴려야 하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리고 그나마 2주라는 시간이 낭비가 되었으니, 4주라는 시간 동안 더욱 정신없이 굴려야 한다는 것은 검증된 방법론이라 생각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니 우리에게 세신 시간은 고작 7분이 주어졌을 뿐이다. 118명의 후보생은 7분 동안 다 씻어야 하고, 다시 CS복으로 환복 한 뒤 그다음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그 과정은 무엇이 되었건 여전히 진흙탕을 뒹굴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때 같은 소대에 있었던 준홍이 툴툴 거리며 이야길 했다.
"아... 씨펄. 지들이 7분 만에 씻으라 해. 속옷도 빨 시간이 없는데, 목욕이라도 시켜줘야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을까? 그 순간 노석진 중위가 조용히 우리 소대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노석진 중위는 다른 훈육장교보다 더 거칠게 우리를 대했던 터였다. 그는 준홍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우리 소대를 향해 소리친다.
"38번 후보생 빼고 다 구부려!"
옷을 갈아입고, 세신 준비를 하던 우리는 반사적으로 다 엎드려뻗쳐를 시작한다. 해군의 전통이라고 했던가? 해군은 나름 얼차려도 자신들의 용어로 바꾸었다 했다. 엎드려뻗쳐는 구부려, 운동화는 함상화, 운동복은 체련복, 식판은 츄라이 등등 우리가 익숙지 못한 단어를 훈육 대장은 열거했다. 준홍은 자신의 말 한마디 때문에 소대원들이 고통받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손을 들었다.
"사관후보생 이준홍! 죄송합니다!"
세신을 위해 옷을 다 벗은지라 꼴이 우스웠지만, 그는 손을 들며 이야기했다.
"뭐야? 38번?"
"3주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하고, 7분 동안 118명이 다 씻으라고 하니 못 참고 이야길 했습니다. 소대장님! 몸이 너무 근질근질 거려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노 중위는 그 이야기를 듣지 않고 소리친다.
"너만 못 씻었어? 여기 있는 새끼들 다 못 씻었어. 그리고 전쟁 중엔 편하게 씻을 수 있을 거 같아?"
그러더니 우리를 쳐다보며 이야기한다.
"다 일어서. 모두 강강술래 준비!"
우리는 모두 손가락으로 귀를 잡고 반사적으로 쪼그려 앉는다. 강강술래는 해군 사관학교에서 고안한 멋진 얼차려 방법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10회를 실시하라 하면, 열심히 우리는 단체로 토끼뜀을 열 번 뛰어야 한다. 하지만, 왜 강강술래라 하냐 하면, 좌로 뛰며 10번, 우로 뛰며 9번... 그래서 1번이 될 때까지 좌우로 오와 열을 맞춰 뛰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간 대기를 하며 10번 정도만 하길 바라는 간절한 눈치였다. 하지만 노 중위는 그리 쉽게 끝내지 않았다.
"100회!"
우리는 복명복창을 하며, "100회!"라고 소리쳤으나, 노 중위는 아직 분이 안 풀렸는지, "목소리가 작다. 200회!"라고 2배 늘리기 시작했다. 이젠 총 몇 개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200개 이상 늘지는 않았으나 준홍만은 그대로 서 있었다.
"소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소대원들은 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넌 가만히 있어! 너희들은 똑똑히 기억해 둬라. 이빨 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소대원 한 새끼 때문에 너희들이 어떻게 고생하는지 똑똑히 기억해 둬라."
우리는 열심히 토끼뜀을 뛰며 준홍을 바라본다. 하지만, 우리의 눈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준홍에 대한 감정이 생기게 되었고, 그 이후 준홍과 우리 모두는 상상하지 못한 일로 엮이게 될 거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의 연재는 프롤로그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부분도 제가 왜 실패만 계속하였는지? 어떻게 그 실패를 디딤돌 삼아 다시 일어섰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부분만큼은 좀 더 자세하게 쓰고 싶어 소설 형식으로 작성을 해 보았습니다.
당연히, 일부는 과장되었을 거고, 모두 실명이 아닌 가명입니다.
당연히 장소도 거짓된 장소가 되어야겠지요.
그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지만,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실제와는 무관한 가상의 이야기들입니다.
순전히 제가 경험한 작은 이들이 모여, 저의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이야기이니 만큼 불편하지 않게 봐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