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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이 오히려 깨끗한 그곳

by 별빛바람

소대장들은 부모님과의 인사가 끝나고 나면 바로 행동이 달라진다. 멋진 군복을 입고 젠틀한 이미지를 보여주다가도, 골목길을 걷는 순간 "XX새끼"라는 말부터 시작하여 기합과 얼차려의 연속을 보여주곤 한다. 물론, 사관후보생과 소대장들은 분명 "각자의 임무"가 있긴 하지만, 소대장들은 16주 동안 잘 훈련시키면 되며 - 사관후보생들은 16주 동안 잘 버티면 된다는 동상이몽의 관계 속에서 서로 간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

문제는 소대장들을 배치하는 목적과 이유에 있었다. 실제 목적은 소대장들을 통해 정예 장교를 단시간 내에 육성시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다들 그 상황은 잘 알지 않은가? 어떠한 조직이라 하더라도 16주가 아니라 몇 년간 야전에서 빼야 할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과연 엘리트를 뽑을지부터가 의문이다. 이 상황은 회사 생활 때도 동일했다. 신입사원 입문교육을 받았을 때, 신입사원들을 지도하는 지도선배들은 무려 2 달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의 현장에서 빠져 있어야 했다. 핏이 맞는 정장과 항상 깔끔한 모습. 회사의 모든 사항에 대해 하나에서 끝까지 자신 있게 설명해 주던 그 선배들의 모습은 신입사원들에게서는 회사 생활 이후 처음으로 보게 되는 멋진 선배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일부는 그 선배의 멋진 모습에 반하게 되어 연인 관계가 되기도 했으니 한 사람의 미래에 있어서 분명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각자의 역할과 임무가 있는 곳에서 한 사람이 몇 달간 빠져야 한다면 그 공백은 모두들 간의 고통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현장의 지휘자 혹은 팀장은 자연스럽게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 사람들은 철저한 교육과 훈련으로 무장이 되어 그 순간에서 만큼은 best practice가 되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다가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멋진 모습을 보며 정예 장교로, 멋진 직장인으로 변해가곤 했다.

물론, 그 상황을 역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디든 존재한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할 때의 일이었다. 한 지도 선배는 남자 후배들에게는 참 까칠하게 대했지만, 여자 후배들에게만큼은 그 어느 누구보다 자연스럽고 성실하게 모든 것을 대해주던 선배였다. 좀 어딘지 모르게 어리숙해 보이긴 했지만 성실한 모습에 모두들 반했고 - 그 선배 주변에는 수많은 여자 후배들이 진을 치곤 했다. 물론, 여자 후배만으로 한정하진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듯한 이미지를 가진 후배들이 있다면 그 후배들은 남자 후배던 여자후배던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던 선배가 어느 날 급하게 퇴사를 한다고 메일을 보냈다.


"정든 XX 년 입사 후배들에게..."


장문의 편지였고, 자신은 먼 미래를 위해 - 더 나은 길을 찾기 위해 떠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는 후배들도 많았다. 아니, 그 선배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모했던 친구들도 있었음은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선배가 그만둔 것은 어이없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SI팀에서 ERP 운영을 담당하던 그 선배는 업무 역량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지 그룹 입문교육 지도선배 자격으로 전배를 받는다. 그리고 그 역할을 몇 년 수행하다 보니 "워낙 역할을 잘하였는지..." 전문적인 지도선배가 되었고, 수많은 후배들에게 우상의 존재가 되었다. 물론, 그 선배는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수많은 후배들의 우상이 되다 보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성적인 접근도 문제없이 하게 되었고 - 그중에는 마음을 나눔과 동시에 몸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사랑도 나누고 모든 것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거기 까지만 했어도 멈췄어야 했다. 그 후배가 단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고, 그중에는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여기까지만 하고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선배는 이미 부인이 있었고, 쌍둥이 아들이 있었으며 그 시점이 이미 7살이 되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니 그 선배는 "조심스럽게" 그 문제가 터지기 전에 퇴사를 하는 것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연인이 될 거라 생각했던 후배들 중에는 부인이 있는 걸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 선배는 회사 일보다는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했고, 관계를 맺는 걸 좋아했던 것이다. 물론 그 관계가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군대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그 소대장들이 "과연" "믿고" "따라야" 할 존재였는가였다.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그 선배들의 행동은 정예 장교를 만들기 위함 보다는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존재 같아 보였다. 밥을 단 1분 만에 다 먹으라고 하지 않나, 어느 날 삼계탕이 나왔을 때 - 뼈 하나라도 남기면 안 된다는 가혹행위.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철모로 구타를 하는 행위 등등 그 모든 것들이 훈련과 교육이란 이름 아래 열심히 자행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누구도 "잘못되었다"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단지, 그 상황이 당연한 듯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며, 심지어 그 억압되고 고립된 환경 속에서 그 소대장들의 모습이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조금씩 변해지기 시작했다. 강자를 동경하고 - 약자를 배척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갖게 되었다. 당연하지만, 동기들 중에는 좀 더 뛰어난 동기도 있었겠지만, 좀 부족한 동기들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좀 부족한 동기들은 "놀림"의 대상이었고,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20년 / 30년이 지난 시점에도 우린 변하질 않았다. 언젠가 몇몇 동기들이 임관 몇 주년 기념이라는 명목으로 단톡방을 만들었고, 우리는 반가워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하였다. 그러다 좀 약했던 동기의 이름이 나오니 우리 모두는 20년 전 그때로 돌아가든 듯 그 동기의 말투를 따라 하고, 놀리며 그 자리에서 히히덕거리는 존재가 되었다. 현역 군인이 있기도 했던 그 자리에서 우리는 이미 악마가 되었고, 그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훈련은 철저한 평가제였다. 달리기부터 시작해 사격이나 모든 것들이 다 평가였다. 당연하게도 한 사람의 전투력을 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소대장은 소대 전체가 책임을 지는 방법을 선택했다. 누군가 한 명이 평가 사격의 평가 기준에서 미달이 된다면 당연히 그 책임은 "소대 전체"의 몫이었다. 그 소대 전체의 책임이 되면 우린 얼차려든 밥을 늦게 먹든 어떠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 불이익 속에서 우리는 좀 못하는 동기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정답은 아니었지만, 우리 모두는 그 방법이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동기애"라 생각했지만, 몸이 괴롭고,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 "동기애"라는 명목하에 모든 것을 덮어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니 그 "동기애"라는 이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상황이 변하게 되었으며, "우리는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니 불만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상황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지도 못하게 되는 그런 비열한 존재가 되어만 갔다.

저녁이 되면 매일 크림빵 하나에 우유 하나를 저녁 간식으로 배급받곤 했다. 힘든 훈련과 불편함 속에서 크림빵 하나와 우유 하나는 정말 꿀맛과 같은 존재였다. 소대장은 딱 머릿수에 맞게 빵과 우유를 나눠줬지만 우리들 중 누구는 더욱 배고프기도 했으니 그 빵을 하나 몰래 숨겨가곤 했다. 당연히도 누군가는 못 먹게 되고 우리는 "그 빵"을 훔쳐간 사람을 마음속으로 생각해 비난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좀 더 많이 먹는 식탐 많은 동기가 있었을 테니, 그 사람에 대한 암묵적인 따돌림이 시작된 것이다. 고작 빵 하나 때문이다. 누군가가 빵 하나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얼차려"를 받을게 뻔하니 모두가 고통스러울 바에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잘못이 있을 것 같은 누군가를 향해 비난하고 따돌리는 게 더욱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상황은 임관 전까지도 계속되었다. 심지어 "임관 반지"를 맞춘 그 순간. 일부 인원들은 그 반지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당연하지만 그 반지의 "존재"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누군가 가져갔을 거라 추측을 했을 뿐이다. 누가 가져갔는지는 모른다. 문제는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고통받으니 우리는 그중 누군가라고 지목을 하고, 그 사람을 따돌리기만 하면 된다는 합리적인 결정을 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오히려 진흙탕에 허우적거리는 게 더욱 깨끗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 속에서 나는 우연찮게 보급 병과였던 동기 준홍을 만나게 되었다. 그 동기는 모든 게 불만이었고, 밥이 불만이었으며, 빨래 시간, 목욕시간 모든 게 불만이었던 친구였다. 하지만 그 불만을 혼자 가슴속에 담아두기보다 "불만을 이야기"하게 되어 우리 모두가 불편해지게 만들었던 친구였다. 특히 목욕탕에서 이야기했던 그 불만 하나로 우리는 모두 얼차려를 받곤 했지만, 그 친구의 "불만"은 끝이 없었다.


"아 시팔... 잘못된 게 있으면 당연히 잘못되었다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냐?"


임관 후 나와 준홍은 서로 다른 사단을 배치받았기 때문에 한동안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물론, 준홍과의 일은 마지막 전역 3개월 전에 있었던 한 사건 덕분에 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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