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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Aug 07. 2022

거리사진 8 - 낯설지는 않지만, 익숙하지 않은 그곳

신이문역 주위 거리 걷기

서울 주변에 이런 역이 있다는 것도 놀라겠지만, 이런 오르막이 있고, 이렇게 낯선 곳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서울은 여전히 높은 마천루가 형성되었으며, 편리함과 도시화의 상징인 아파트가 저 멀리 펼쳐져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곳은 서울에서 몇 안 되는 낯설지는 않지만, 익숙하지 않은 그곳이 있다. 그곳은 신이문역 주변의 이문동 지역. 한 때는 이문 제2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었지만, 현재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는 그곳이다.


신이문역 입구(Leica SL, Sigma 24-70/f2.8)
하늘로 가는 길(Leica SL, Sigma 24-70/f2.8)

우리의 시각에서 역 주변은 분명 번화가다. 유명한 프랜차이즈, 심지어 번화가의 상징인 스타벅스나 하다못해 투썸플레이스라도 있는 그곳. 언제나 약속 장소는 XX역 몇 번 출구라 하면 그곳 주위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그곳이기에 지하철 역 주변으로 모든 인프라들이 모여든다. 무언가를 찾으러 갈 때도 지하철역에서 몇 미터 떨어졌는지부터 먼저 체크해 본다. 택시를 타더라도 지하철역 주변으로 우선 찾아간다. 그곳에 가면 스마트폰 지도를 사용하든 문의를 하든 분명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참 낯설지는 않다. 이미 몇십 년 전. 나 어린 시절 1호선을 지나 국철 구간의 역을 내렸을 때 보았을 그런 광경이 펼쳐진다. 특히, 역 바로 옆에 있는 고가도로가 만들어낸 그림자 때문에 그런가? 이곳은 입구부터 참 낯설지는 않지만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단절(Leica SL, Sigma 24-70/f2.8)
단절(Leica SL, Sigma 24-70/f2.8)

이곳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고가도로와 역을 사이에 두고 한 곳은 좀 오래되었지만 아파트촌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 반대편은 어린 시절 익숙한 양옥 건물들이 빽빽하게 놓여있다. 특히, 이러한 단절감을 더욱이나 강조하려는 듯, 철망으로 서로의 세계를 단절시킨다. 분명, 그 당시 이 철망을 치던 그 시기에는 아파트도 새로운 아파트였다. 하지만, 이미 10년이 지난 아파트다 보니 페인트 칠도 군데군데 떨어지기 시작하여 음산한 분위기가 연출이 되는 묘한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 보자. 이곳은 지하철 출구도 단절의 대상이다. 보통은 지하철역 출구는 근처에서 원형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이곳은 민가 지역과 아파트 지역을 철저히 구분해 놓는다. 그러다 보니, 민가 지역은 자칭 "토끼로"라고 불리는 그 굴을 지나 들어가면 양옥집 사이에 작은 지하철 출입구가 보인다. 당연히, 혹시라도 잘못 내리게 되어 원 목적지를 찾으러 간다 하면 한참 해멜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다. 왜 이렇게 단절을 해 놓았을까? 당연히 이렇게 단절을 이루게 된 목적은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당시의 공무원들도, 도시계획 담당자들도, 혹은 건설사도 다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목적은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그런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눈은 상당히 상대적이다.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를 바라보게 되면 당연히 인상을 쓸 수밖에 없다. 지저분한 것, 혐오스러운 것, 낯선 것, 익숙하지 않은 그 모든 것. 그러다 보니, 우리 주위에 있는 것들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항상 쓰레기를 버리더라도, 그 쓰레기를 소각하고 매립하는 곳이 어디인지 본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차량을 본 사람도 많지 않겠지만, 그 음식물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 낯설지는 않은 것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 단지 이야기로만 들어본 그것들이 우리들이 인지하지 못한 그곳 바로 옆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이 빈민촌이나 달동네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타 서울지역에 비해 좀 더 낙후되었을 뿐, 나름 양옥을 지으며 규칙성 있게 인프라를 형성했다는 것은 이곳도 사람들이 모여가며 나름 계획적으로 집을 지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 단위 도시계획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골목골목 굽이쳐 있으며,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져 있는 그런 곳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당연히, 차 한 대 빠져나가기 힘든 곳이 형성된 것이다.


막다른 골목(Leica MP, Summicron-C 40/2.0, Kentmere 400)
끝없이 펼쳐진 거리(Leica MP, Summicron-C 40/2.0, Kentmere 400)
좁은 골목길(Leica MP, Summicron-C 40/2.0, Kentmere 400)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나름 규칙이 있는 곳이었다. 보통의 골목길에 놓여 있는 쓰레기봉투를 이곳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보아도 쓰레기 조각, 혹은 휴짓조각이나 담배꽁초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나름 내 골목 앞에 대한 주인의식이 있는 그곳이라 그런지 아침마다 쓸고 닦는 그런 익숙한 모습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미로와 같은 골목이지만, 그 미로에서 길을 잃을지언정, 인정은 잃지 않은 그런 곳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분리하려 한다. 익숙하지 않아서, 혹은 재개발 계획이 취소되어 속상해서 그런지 모른다. 그러나 아파트가 들어서고, 아파트 광장에 있는 휴지조각과 쓰레기들을 과연 우리의 이웃들이 치운다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자본주의의 논리로 누군가에게 고용된 청소부들의 도움에 의해 청소되고 정리가 된다. 이 골목길과는 다른 모습이 연출된다. 그런 모습 속에서 우리는 낯설지는 않지만, 익숙하지 않은 그 모든 것들을 보게 된다.


지하철 역을 나오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낯설지는 않지만 익숙한 그곳은 문구점이다. 요즘은 초등학교 주변 문구점들이 많이 사라졌다. 학생수 부족으로, 혹은 e-커머스의 발달로 직접 만져보고 구입하는 것보다 쿠팡과 같은 곳의 로켓 배송이 더욱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직접 사서 구입하는 것보다는 인터넷에서 주문하는 게 더 익숙하다. 굳이 덥거나 추운 날 힘을 빼서 갈 필요도 없기도 하지만, 비대면 무료 반품도 가능하기 때문에 물걸은 구입하며 생기는 감정이란 것도 배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문구점의 추억은 어떨까? 꼭 무엇을 산다기보다는 몇 백 원짜리 조립식 프라모델 신제품을 구경하기 위해, 그 당시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한 핫 장난감이나 액세서리들을 구입하기 위해 며칠이고 지켜보는 게 일상이었다. 딱히 쇼핑을 한다기보다는 학교 끝나고 바로 뛰어가던 그곳. 그곳에서 팔던 100원짜리 떡볶이와 50원짜리 군것질거리를 먹으며, 혹시 배탈 나지 않을까 걱정하던 그 시절의 추억. 하지만, 이제 초등학교 주변에도 문구점은 사라졌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 그 문구점들도 이젠 사라지고 편의점 하나가 남았을 뿐이다. 그 당시 나 보다 한 살 어렸던 문구점 사장님 딸은 뭐하고 지낼까? 아마 문구점이 사라지며 내가 살던 그곳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추억(Leica MP, Summicron-C 40/2.0, Kentmere 400)

꼭 문구점이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 옥상에 빨래를 널던 그 모습. 바람이 불면 나풀거리는 빨래의 모습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이제는 매연 때문에, 혹은 문명의 이기인 자동 건조기의 역할 때문에, 혹은 개인 프라이버시 때문에 빨랫줄에 너는 빨래를 볼 수 없지만, 아직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 역시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다. 나도 몇 년 전부터였나? 출근하기 전 거실에 행거를 펼쳐놓고 빨래를 널거나, 세탁기의 건조기 기능을 활용해서 자동 건조를 하고 빨래를 정리하던 그 순간이 너무 익숙하다 보니, 시원한 자연풍을 받으며 빨래를 말리던 그 모습을 바라보니 익숙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빨래(Leica MP, Summicron-C 40/2.0, Kentmere 400)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는 것은 이미 우리들 뇌리 속에 혹은 TV 드라마를 통해 바라보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눈으로 바라보지 못한 것은 그만큼 사라질 수밖에 없는 풍경이란 의미도 된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습관이 바뀌고 그러다 보면 당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들도 존재할 것이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쓰레기는 매일 버리는 것이었고, 음식물 쓰레기와 구분하여 버리는 것도 낯선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나눠 버려야 하는 만큼 세상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런 변화들 속에서 아직은 변하지 않은 곳들이 존재한다. 많게는 몇 백 년 전의 모습으로, 짧게는 10 ~ 20년 전의 모습으로 잠시 멈춰있는 그곳. 어쩌면 이곳은 우리에겐 낯설지 않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눈이 억지로 찾아보질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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