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난 카메라를 들고 간다

(그래서, 난 카메라를 들고 간다 1화)

by 별빛바람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하면 적잖이 놀라 한다. 거기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심지어 한 대도 아니고 여러 대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난 사진을 잘 찍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진을 사랑하기 때문에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남들과는 다르게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전문 사진작가"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스마트폰으로 다 찍을 수 있는데" 쓸 대 없는데 돈을 쓴다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사진 찍는 것을 너무나 사랑하는데, 그것을 피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가?

2011년 오랜 장교 생활을 마치며 나를 위한 선물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이며 구매하였던 값비싼 똑딱이 카메라인 Leica X1은 현재 첫째 딸 스텔라가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내 카메라 취미를 혼자만 간직하고 싶지 않아 사랑하는 나의 반려자 첼리나에게는 Leica TL2와 Summicron-TL 23/2.0 렌즈를 생일 선물로 구해주었다. 막내딸 소피아는 언니 어렸을 때 어린이날 선물로 사준 핑크색의 Sony NEX-3N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어쩌면 우리 가족은 내가 가족 다음으로 사랑하는 사진 때문에 전부 사진 찍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Leica X1을 들고 사진을 찍는 첫째 딸 스텔라(Leica M-E, Summicron-m 50/2.0 ASPH)

사실 처음부터 사진을 사랑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어떤 취미가 좋을지 고민을 하던 중에 우연찮게 본 노신사의 모습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멀쑥한 정장에 중절모를 쓴 노신사는 어깨에 작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이리저리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DSLR이 뭔지, 똑딱이 카메라가 뭔지도 몰랐으며, 카메라 브랜드와 렌즈의 종류도 알지 못했던 때였다. 그 노신사의 모습은 너무도 평화로워 보였다. 가끔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곤 하였으며, 무엇을 찍는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멋있어 보였다. 한 없이 현실에 치여가며 취직 걱정을 하던 전역을 앞둔 말년 중위의 눈에는 여유로움을 즐기는 사진 찍는 노신사의 모습이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까까머리 말년 중위는 용기를 내서 그 노신사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혹시 찍으시는 카메라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노신사는 웃으면서 자신이 가진 카메라와 렌즈를 설명하였다. 그땐 카메라의 모델명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내 기억으로 Leica M9을 사용하셨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어떤 용기가 있었는지, 나는 감히 어디서 그 카메라를 살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군복 입은 젊은 청년의 패기 있는 질문에 감동을 하였는지, 충무로의 반도카메라를 설명해주었다. 그곳에 가서 상담을 받고, 원하는 카메라를 꼭 구입하라고 하였다. 그 당시 나는 한 달에 150만 원 조금 넘게 받는 중위였으며, 착실히 36개월간 모은 월급 약 3천만 원 정도가 통장에 들어있었던 용기 있는 젊은이였는지 모른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Leica라는 브랜드를 검색해 보았다. 역사가 깊은 RF 카메라(Range Finder : 뷰파인더와 렌즈가 서로 분리된 카메라로 상대적으로 작은 카메라를 만들 수 있으나, 뷰파인더와 렌즈의 보는 영역이 달라 결과물이 다를 수 있는 카메라)를 만들던 브랜드였으나, 태초부터 고가의 카메라였기 때문에 많은 유저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카메라였다는 정도가 내가 찾아본 정보였다. 당시 Leica M9이라는 800만 원 상당의 디지털카메라와 M7과 MP라는 필름 카메라가 있었고, 렌즈도 몇 백만 원을 넘는 가격이었기 때문에 내가 모은 돈을 다 털어도 충분히 즐길만한 구성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땐 왜 캐논이나 니콘을 찾아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 노신사가 들고 있던 Leica 카메라가 참 멋져 보였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루 시간을 내어 충무로의 반도카메라를 방문하였다. M 시리즈는 도저히 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살 수 있는 기종은 Leica C-Lux와 D-Lux, 그리고 X1 정도였다. C-lux와 D-lux는 파나소닉의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카메라로 당시 100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살 수 있었으나, X1은 이미 300만 원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큰돈을 들여야 살 수 있는 카메라였다. 반도카메라 실장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카메라를 잘 알지 못했다. 그냥 무엇에 이끌렸는지 330만 원이란 거금을 들여 Leica X1과 케이스 그리고 뷰파인더를 구매했다. 회색 박스에 라이카 로고가 그려진 쇼핑백에 담긴 카메라를 들고 지하철을 타며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만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기쁜 마음에 카메라 박스를 열고 메모리카드를 넣고 전원을 켰다. 아뿔싸. 이 카메라는 Elmarit 28/2.8(풀프레임 환산 기준 35mm) 단렌즈 카메라였다. 좋게 말하면 나쁘지 않은 렌즈가 달려있는 카메라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초보자는 절대로 찍을 수 없는 그런 카메라였다. 나에게 카메라는 어느 한 곳에 서서 줌 버튼을 누르며 자동으로 설정된 값을 촬영하는 것이었지, 단렌즈라는 개념조차 모르던 시기였다. 눈앞에 330만 원이라는 돈이 허공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용하기 어려운 카메라를 들고, 카메라를 처음 시작한 까까머리 말년 중위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렇다고 위수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군 복무를 하던 김포 주위를 돌며 이곳저곳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이후 까까머리 말년 중위는 직장인이 되었고, 여자 친구를 만났다. 여자 친구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여전히 Leica X1을 들고 다녔다. 반응속도도 느리고, 연사도 되지 않는 단렌즈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여자 친구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때론 흑백으로, 때론 컬러로 찍으며 사진을 남기곤 했다.


Leica X1으로 찍은 첫 번째 컷. (Leica X1, Elmarit-M 28/2.8)

그 후 여자 친구는 떠나고 평생의 반려자로 돌아오게 된다. 그때 역시 겁 없이 신혼여행 준비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카메라를 샀다. 마찬가지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여친렌즈 / 애기 만두 이런 정보만을 종합하여 180만 원의 예산을 들여 Canon 60D와 EF 35/2.0과 EF 85/1.8 렌즈를 구입하였다. 역시 사진을 어떻게 찍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이 렌즈가 좋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35mm 화각은 만능이고, 85mm 화각은 인물사진을 찍는데 최적의 화각이다. 그것은 풀프레임 카메라일 때 이야기이긴 하다. 당시 유명한 오두막(5D Mark2)였다면 충분히 멋지게 활용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산 바디는 1.6 배율의 크롭 바디였다. 35mm는 50mm의 표준 화각을 보여주었고, 85mm 화각은 전문가도 활용하기 어려운 135mm 화각을 만들었다. 그래서, 주로 35mm 이용하였으나 표준화각의 답답함 때문에 번들 렌즈인 EF-S 18-55/3.5-5.6 렌즈를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물론 가끔 사용하는 85mm 렌즈가 멋진 장면을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초보자인 내가 사용하기에는 EF-S 번들 렌즈만 한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무엇을 찍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Drive 모드를 걸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이후 첫 째가 태어날 때쯤 나름 이쁜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핑계로 UFO 렌즈(Sigma 18-35/1.8)를 구입하게 된다. 크롭 바디 환산 기준 28-50mm 정도 화각으로 여행을 다니며 찍기에 상당히 좋았던 렌즈였다. 이 렌즈는 무려 10년 넘게 우리 가족과 함께하며 가족의 일상을 남겨준 좋은 렌즈였다. 함께 여행을 가며, 함께 생일 축하를 하며, 함께 기뻐하며 모든 것들을 기록하였다.


첫째 딸이 태어난 순간(Canon EOS 60D, Sigma 18-35/1.8)

이 글은 카메라 장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난 여전히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하지만, 사진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진은 순간의 기억을 단 한 순간의 장면으로 담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항상 카메라를 들고 간다. 나의 가족의 행복한 순간.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자 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만큼은 내가 누른 셔터를 통해 영원히 간직할 수 있었다. 카메라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 기억의 도구였으며 마법의 상자였다. 때론 건강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고, 때론 젊고 풋풋했던 나와 첼리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스텔라와 소피아가 태어난 그 순간을 간직하며 기억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의 추억을 기록하던 Canon 60D는 어느 날 갑자기 셔터박스가 망가져버렸다. 공교롭게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난 뒤 복귀한 그날이었다. 이미 두 번째 셔터박스가 망가졌고, AS 기간도 한참 지난 뒤였다. AS센터에서 셔터박스 교체 가격은 중고 가격을 훌쩍 뛰어남 긴 지 오래였다. 그 당시 이미 Canon 60D는 1,800만 화소의 구식 카메라일 뿐이었다. 참 기분이 묘했다. 알츠하이머를 앓으셨던 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을 끝으로 장렬히 전사한 뒤로 나는 한 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다. 아니 찍지 못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Canon 200D 리퍼를 판매한다는 걸 보고 40만 원을 들여 구입을 했으나 옛날만큼 열정적으로 찍지는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 있어 처서 번째로 찾아온 사진에 대한 권태기였을지도 모른다.

항상 가족의 움직임만을 찍어대던 카메라는 피사체의 한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보는 순간은 그저 가족의 소중한 순간이긴 하였으나, 남들에게 보여주고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그런 사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 사용하기 어려웠던 Leica X1의 피사체는 가족이라는 한정된 프레임만은 아니었다. 내가 걸어갔던 그곳, 내가 인상 깊었던 그 모습. 지나가다 마주친 우체통에서, 그리고 쓰레기통에서 나 만의 메시지를 남기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때만큼 카메라를 들고 길을 걷던 순간은 늘 주위를 둘러보며 관찰하던 그런 모습이었다. 몇 년 전 까까머리 말년 중위가 부러워했던 노신사의 모습처럼.


김포 마송의 버스 정류장. 지금은 이곳도 번화가가 되었다.(Leica X1, Elmarit 28/2.8)

그리고 한 참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까까머리 말년 중위는 사용하지 못할 Leica X1을 들고 다녔으나, 이제 중년이 된 나는 필름 카메라인 Leica MP를 늘 가방에 넣어두고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곤 한다. 가족의 행복한 순간도 함께 담지만, 한 편으로는 내가 바라보는 이 순간을 35mm 필름에 남기고자 셔터를 눌러댄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36장이라는 정해진 매수 안에서 한 장을 찍을 때마다 더욱 신중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열심히 셔터를 연사 하며 남기고 싶었던 찰나의 순간이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남긴 나만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 순간은 기계의 도움이 아닌, 필름과 빛 그리고 나의 손을 통해 3박자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내 카메라 가방에는 항상 두 대의 카메라가 들려있다. 찰나의 순간을 찍고 싶을 때 들고 다니는 Leica SL과 결정적인 순간을 찍고 싶을 때 들고 다니는 Leica MP이다. 물론, Leica이기 때문에 사진이 잘 나온다 할 수는 없다. 충분히 Sony, Canon, Nikon 등 다양한 브랜드가 저렴한 가격에 좋은 카메라를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위 브랜드는 호환 렌즈도 충분히 많이 있기 때문에 저렴하면서도 최고 품질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셔터 스피드 또한 엄청 빠르기 때문에 내가 가진 Leica MP의 1/1000초의 한계를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Leica를 고집하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소 비싼 브랜드이긴 하지만, 십몇 년 전 나에게 사진이라는 열정을 눈뜨게 해 준 노신사의 모습처럼 찰나의 순간이라 할 지라도 한 템포 쉬어가며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는 나의 모습을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Leica 이상으로 다른 카메라도 훌륭한 카메라라고 생각한다.

내가 찍은 사진 각각의 사진에는 분명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때론 슬픈 순간이기 때문에, 때론 희망에 찬 순간이기 때문에 내 느낌 그대로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특히, 필름 사진을 시작한 그 이후부터는 한 장의 사진을 찍었을 때 느낌과 기분도 함께 기억에 남는다는 장점도 함께 생기게 되었다. 물론, 필름 사진은 내 기억의 한계 때문인지 몰라도 어떤 렌즈와 어떤 필름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내가 간직한 기억이 때론 왜곡되었다 할지라도, 그 당시의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 한 장을 통해서 그때의 느낌도 함께 간직할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겐 더욱 소중한 마법의 상자였다.

그래. 난 여전히 가방 속에 카메라를 넣고 다닌다. 그리고 늘 이야기 하지만, 카메라에 진심이고 사진에 진심이다. 때론 내가 하는 일 이상으로 사진에 몰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사진이 가진 매력, 카메라가 주는 매력을 쉽사리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도 가방 속에는 카메라가 하나 들어가 있다. 첼리나와 스텔라는 이 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카메라 바디 두 개 이상은 넣지 말라고 핀잔을 준다. 어쩔 수 없다. 필름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핑계로 그리고 필름 카메라가 남기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만큼 남기고 싶은 순간도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하며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그래서 난,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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