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필름 카메라

(그래서, 난 카메라를 들고간다 2화)

by 별빛바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직장인이 된 지 10년, Leica X1을 산지 그 이상이 된 시점에 나는 Leica M-E(typ240)을 샀다. RF 카메라의 이중 합치가 처음이었고,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내가 직접 조정해야 했지만, 그래도 요즘 최신 디지털 Leica M은 조리개 우선 모드가 있어 셔터스피드까지 조정해도 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하지 않은 편리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이미 그때부터 난 필름으로 사진을 시작하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카메라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단지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지,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조차 모르던 그때였다.

그리고 필름 카메라는 더욱 몰랐다. 어떻게 필름을 넣어야 하는지도 몰랐으며, ISO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어떤 카메라가 초보자가 쓰기 좋은 카메라이고, 어떤 카메라가 인기가 많은지도 몰랐다. 단지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해외 출장이 한 창이던 때, 면세점에서 산 Lomo LC-A+가 있기는 했다. 과거 구) 소련에서 만든 Lomo LC-A와는 다르게 조리개 조정 값이 생략된 카메라였다. 어쩌면 Lomo가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원가 절감을 위해 조리개 조정을 생략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Lomo는 특히나 찍기 어려웠으며, 목측식 특유의 카메라 특성 때문에 제대로 찍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카메라였다.


아직은 3살인 스텔라(Lomo LC-A+, Kodak Colorplus 200)

정말 작고 앙증맞은 카메라였지만 몇 번 사용하지 않고 구석에 처 박아둔 거 같다. 결정적으로 사진의 결과물이 잘 나왔다면 자주 사용을 하였겠지만, 사진이 뭔지도 모르고, 목측식 거리 측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초보자가 성공적인 필름 사진을 찍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노출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에 10 롤이 넘는 필름을 샀지만, 거의 대부분 실패하고 잘 나온 사진은 거의 없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잘 나온 사진이 있었다면, 그래도 용기를 가지고 사진을 찍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한 차례 실패했던 필름 사진을 다시 도전을 하고 싶었던 것은 순전히 호기심 반, 열정 반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느 순간 디지털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눌러대는 나의 모습과는 다르게 사진 한 장을 찍으며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적어도 필름 사진을 찍게 되면 디지털 사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찍기보다,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진을 찍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건 순전히 필름 사진을 해보기 위해 내 나름대로 명분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아무 이유 없이 필름이 멋있어 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한번 필름 사진을 도전하고자 하였을 때는 이미 필름 카메라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뒤였다. 당시 충무로 및 남대문 카메라 샵을 통해 돌아다니는 소문은 중국 보따리상들이 필름 카메라를 싹쓸이한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유동성이 막히게 되어, 중국 수집가들이 필름 카메라에 눈독 들이기 시작했다는 소문이었다. 그 결과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태 좋은 Leica M3가 100만 원 수준이었지만, 이제 상태 안 좋은 M3도 200만 원 후반을 줘도 구입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름 카메라를 시작하려 하는 생각부터가 어리석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필름 가격도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 Lomo LC-A+를 시작하던 시기에 Kodak Colorplus 200의 가격은 3,500원 수준이었다. 그것도 배송료를 아낀다고 20 롤씩 모아서 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가 필름을 시작하고자 마음먹은 이 시기에 Colorplus 200의 가격은 7,000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 사이에 Kodak은 한 차례 필름 생산을 중지했으며,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아그파 필름은 더 이상 필름을 생산하지 않았다. 그나마 후지필름과 영국의 일포드, 켄트미어 등등 몇몇 업체만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리고 필름을 현상할 수 있는 곳도 많이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필름 사진이라니.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필름 사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과거 Canon 렌즈를 쓸 수 있는 EOS 5를 구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이 당시에 EOS 5는 15만 원 정도 가격을 형성하고 있어 비교적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나는 EOS 60D를 구매할 당시 EF 35/2.0과 EF 85/1.8 렌즈를 함께 구매하였기 때문에 별도로 렌즈를 살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EOS 5는 일반적인 Canon 카메라와 사용방법이 비슷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내가 EOS 5를 구매하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 중고나라의 법칙은 다시 한번 일어나게 되었다. 아무리 여러 장터를 뒤져보아도 EOS 5 매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EOS 5를 팔겠다는 사람이 많았으나, 딱 내가 구매하려는 그 순간이 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중고시장의 매물은 감쪽같이 사라지게 되었다.

며칠 동안 상사병을 중고장터를 헤맨 끝에, EOS 5보다는 그나마 신형이나 저가형으로 나온 EOS 30을 10만 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측광 모드 중 하나가 삭제되었다고는 하지만, 측광에 대한 개념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도전하는데 의미가 있다 생각하고 구매한 터였다. 그때는 막 여름이 시작될 무렵인 6월이었다. 그리고 예전 Lomo LC-A+에 사용하려고 사 두었던 Kodak Colorplus 200 몇 롤이 집에 굴러다니던 그 시기였다.

마침 부모님 댁을 방문했을 때, 집에는 곰팡이와 녹으로 범벅이 된 Minolta의 Hi-Matic 카메라를 발견하게 되었다. Leica M과 동일한 RF 방식의 카메라이며, 35mm 단렌즈가 붙어 있는 하이엔드 똑딱이 필름 카메라였다. 어떤 연유에서 부모님 댁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카메라는 사용하기 버거울 정도로 곰팡이가 피었으며 건전지 누액으로 녹이 슬어있었다. 어차피 사용하지 못할 카메라였지만 한 번 수리를 해보고 사용할 수 있으면 써 보자는 생각으로 집으로 들고 왔다.

그리고 주말이 되었을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세운상가의 제일 카메라가 우리나라에서 필름 카메라 수리로 유명한 곳이라 했다. 하지만 이미 나에게는 EOS 30이 있는데 이 Minolta 카메라를 수리할 이유는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미 30년이 지난 카메라였기 때문에 상태와 성능을 보장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 카메라는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카메라였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행복을 남겨준 카메라였을 것이다. 자녀의 졸업식에, 그리고 결혼식에 셔터를 눌러댔을 카메라였을 것이다. 그래서 살려주고 싶었다.

마침 그날은 스텔라가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차를 몰고 종묘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제일 카메라에 카메라를 맡겼다. 이미 내 가방에는 EOS 30이 들어있었다. 스텔라와 오랜만에 단 둘이 하는 외출이었지만, 카메라만 수리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는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종묘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 사당인 종묘는 이미 조선시대에 "종묘사직"이란 말을 통해 왕실과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이었다. 다소 덥기는 하였으나, 스텔라는 처음으로 방문한 역사 유적이었다.


종묘의 담벼락. 균형이 맞지 않는 담벼락과 살짝 기운 구도가 어우러진다.(Canon EOS 30, EF 35/2.0, Kodak Colorplus 200)

긴 설명을 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나이였다. 하지만 아빠와 함께 걷는 종묘 산책은 너무나 행복해했던 것 같다. 아직 그 나이에는 뛰어다니는걸 더 좋아하는 나이였다. 종묘의 의미보다는 멋들어지게 보이는 사당과 처마가 더 마음에 드는 그런 나이였다. 이미 이 당시 스텔라에게 선물로 Sony NEX-3N을 선물해 주었다. 다소 오래된 중고 카메라지만 핑크색 카메라의 미러리스 카메라는 첫째 아이가 가지고 놀기에는 참 좋은 카메라였다. 그리고 아이의 눈높이에 씩는 사진은 때론 참 아름답게 다가오기도 했다.


장난감 같은 핑크색 NEX-3N으로 촬영 중(Canon EOS 30, EF 35/2.0, Kodak Colorplus 200)
스텔라의 시선에서 보는 아빠(Sony NEX-3n, E 16-50/3.5-5.6)

EOS 30은 참 편한 카메라였다. 이미 AF(Auto Focus)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P 모드를 사용하면 아무 생각 없이 셔터만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 필름을 넣으면 자동으로 필름의 DX code를 인식하여 필름에 맞는 노출계 값을 세팅하였다. 요즘은 필름값이 비싸져서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긴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초당 몇 장씩 연사를 눌러댈 수 있었다. 요즘 디지털카메라와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은 그런 카메라였다.

카메라를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가 있다면, 그리고 필름 카메라를 처음으로 시작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EOS 30을 추천해준다. 렌즈도 저렴한 중고가 많이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20만 원 안팎으로 좋은 구성을 할 수 있다. 나도 이 카메라가 너무 마음에 들어 종종 가족 여행을 갈 때 들고 다니곤 한다. 비싼 24-70L렌즈 까지는 아니지만, 28-185 줌렌즈 하나만 있으면 밝은 낯에는 색감 밝은 사진을 재미있게 찍을 수 있었다. 물론, 필름 카메라이기 때문에 한 장 한 장을 고민하면서 찍어야 아까운 필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EOS 30은 딱 거기까지였다. 필름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내가 고민하고 통제할 수 있는 조건은 하나도 없었다. 정말 편하고 쉬운 카메라였지만, 너무 기계에 종속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디지털의 최신 기술이 편하긴 하였지만, 그 기술이 나 자신의 생각과 결정이 아닌 기계의 알고리즘에 의한 선택이었다는 것도 아쉬움이었다. 내가 원했던 생감과 표현이 아니라, 단지 디지털 프로그램의 결정에 의해서 만들어진 색감일 뿐이었다. 그러한 상황이 마찬가지로 EOS 30에서 보였다.

그래도 이 EOS 30을 쉽게 포기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최근에 상태 좋은 중고를 또 하나 구매하였다.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카메라는 상당히 가볍기 때문에 내가 의도한 사진 촬영의 목적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일한 카메라 두 대를 들고, 한 바디에는 50mm 표준렌즈를, 또 한 바디에는 35mm 광각렌즈를 들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런 사치는 다른 카메라 특히 Leica로도 가능하다. 돈만 충분하다면 말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동일한 화각의 렌즈를 두 개 가지고 있다면, 한 바디에는 컬러 필름을, 또 한 바디에는 흑백 필름을 넣고 동 시에 두 장씩 찍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동일한 바디 두 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는 뜻이다.


EOS 30을 구매한 후 첫 번째 컷.(Canon EOS 30, EF 35/2.0, Kodak Colorplus 200)
목욕하기 전 소피아(Canon EOS 30, EF 35/2,0, Kodak Colorplus 200)

세상에 좋은 카메라와 나쁜 카메라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카메라를 통해 찍는 사람이 바라보는 뷰파인더의 시선과 결과물만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을 구분하는 기준도 당연히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생각하게 만드는 사진과 나와 가족들 소수가 행복하게 하는 사진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입장에서 나의 사진은 대부분 소수가 행복하게 하는 사진이었다. 가족의 순간을 찍고, 가족의 순간을 남기기 위해 찍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통해 행복하고, 다시 한 번 더 미소 짓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더 많은 사진을 찍고 싶었다. 10년도 더 전, Lieca X1을 들고 거리를 누비던 그때가 다시 한번 생각났다. 내가 바라보는 그곳의 시선은 내가 느끼는 그 당시의 감정과 해석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 해석의 결과물이 때로는 남들과 동일하게 공유할 수도 있고, 때로는 다른 생각을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떨 땐 단지 1초도 안되어 넘어갈 수도 있고, 어떨 땐 1분 이상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게 바로 사진의 힘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찍는 사진은 디지털 기술의 힘을 100% 의지하기보다는 빛과 나의 생각과 판단의 조화를 통해 만들어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난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무겁지만 찰나의 순간을 찍을 수 없는 불편한 수동 필름 카메라 한 대와 아쉬움을 보완해 줄 디지털카메라 한 대를 짝꿍과 같이 들고 다닌다.


서울 면목동의 한 구멍가게. 이 간판은 몇 년 전에 사라졌다. (Leica X1, Elmarit 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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