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가끔 타던 지하철이 생각난다. 청량리역을 시작으로 서울역까지는 지하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역을 지나 남영역으로 달리는 순간, 지하철은 밖으로 나와 밖의 멋진 모습을 만들어주기 시작한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달리는 순간, 밖의 나무와 건물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시작한다. 자주 타지는 않았지만, 항상 엄마와 함께 지하철을 탈 땐 설레었다. 어쩌면 늘 집 근처만 있다가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설렘이 있기 때문에 지하철 타는 순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요즘은 출퇴근길에 항상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출퇴근 시간 합쳐 약 2시간을 지하철에서 시간을 보낸다. 물론, 요즘은 지하철이 잘 발달하여 대부분 지하로 움직여 밖의 멋진 모습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지하철을 탈 때마다 핸드폰을 쳐다보거나 책을 보며 시간을 때울 뿐이다. 어린 시절 지하철 탈 때마다 창문을 쳐다보며 신기해하던 그때와는 참 다른 모습이 되어가는 듯하다.
어린 시절 타던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의자만 있다면 버스는 더 좋은 놀이기구였다. 버스는 터널을 빼고는 절대로 지하로 가질 않았다. 그 말은 버스를 타며 창문을 바라보면 신기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버스는 지하철보다 더 천천히 달렸다. 특히, 그 시절 도로는 지금보다 더 복잡했다. 지금이야 버스전용차선이 있어 버스는 있는 힘껏 빨리 달릴 수 있었지만, 그 시절 버스는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느림보였다. 어쩌다 한 번 버스가 한 시간이 지나도 안 올 경우가 있었다. 그땐 엄마는 한 숨을 쉬며 일반 버스보다 더 비쌌던 좌석버스를 타고 갔었다. 좌석버스는 의자도 있었지만, 시원한 에어컨도 나왔고 창문도 큼직했기 때문에 밖을 구경하기 정말 좋았다. 밖이라고 마냥 특이한 게 있는 건 아니었다. 간판 이름을 읽고, 플래카드를 보고, 극장의 포스터 그림을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가끔 신기한 차량을 구경하기도 했는데, 차보다는 밖의 신기한 건물들이 멋있어 보였고, 가끔 보이는 포클레인(굴삭기)과 불도저와 같은 건설용 중장비 차량이 멋지게 보였다. 사실 쉽게 보던 것이 아니다 보니 보는 것 자체가 신기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버스는 어쩌다 한 번 타는 특별한 행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버스를 타는 순간 제일 먼저 눈을 돌려 빈 의자가 있는지, 빈 손잡이가 있는지 훑어보는 것으로 탑승 의식을 치른다. 분명 그때보단 더 쾌적한 환경이었을 건데,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순간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만의 세상으로 빠지는 경험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버스와 지하철을 자주 활용하곤 한다. 그리 거창한 여행을 할 필요는 없다. 그냥 평소에 가보지 못한 그 동네를 찾아가 보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카메라 가방에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내가 바라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보기로 했다. 마침, 그날은 와이프와 아이들이 일이 있어 처갓집에 가게 되어 4 ~ 5시간 정도 여유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편한 옷을 입고, 편한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분명 1 ~ 2시간 걸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가볍게 들고 간다 해도, 더운 날 카메라를 들고 가는 게 쉽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날도 더울 테니, 텀블러에 시원한 아이스커피와 얼음도 가득 넣어야 했다. 챙긴 짐만 해도 한 아름이었다. 물론, 문제는 어딜 가야 할지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출발하기 전 점심식사 겸 라면을 하나 끓이며 유튜브를 보던 중 "개미마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서대문구에 있는 한 달동네에 동네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와의 인터뷰가 참 신선해 보였다. 문제는 "개미마을"까지 거리가 꽤 있어 4시간의 시간 동안 방문하기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중계동의 "백사마을"이었다. 대학생 시절 동아리에서 보았던 다큐멘터리 영화 "상계동 올림픽"의 그 동네. 아무런 계획 없이, 트럭에 이주민을 태우고 강제로 구획을 나누어 거주를 지시하였던 그곳. 이제는 재개발의 분위기로 다시 살던 곳을 떠나라 이야길 했다. 그곳의 주민들은 벌써 몇 차례나 이주와 퇴거를 경험해야 했다. 물론 내가 이곳을 선택한 것은 종종 시간이 날 때마다 사진을 찍으며 기록해 두었던 Street Photography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평소 가보지 못했던 곳을 가보고자 하는 생각에서 선택한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집 앞에서 버스 한 번만 타고 30분 정도 바깥 구경만 하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결정한 코스이기도 했다.
석계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야 할 목적지를 확인한다. 다행히 백사마을은 종점까지 가야 했으니, 굳이 안내 방송에 집중할 필요도 없었다. 바깥 경치를 구경하며 짧은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기만 하면 되었다. 특히, 경춘선 숲길을 지나칠 때는 아이들과 같이 소풍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노원구는 아파트 단지가 많았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재각각의 아파트 조경과 놀이터를 구경할 수 있었다. 분명 방학 때 시간이 허락한다면, 아이와 함께 놀이터 탐험기를 구상해 보는 것도 좋은 글감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이건 버스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분명 버스를 타고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고 바깥 경치를 구경하다 보면, 언젠가 꼭 가야 할 곳 혹은 가고 싶은 곳을 발견할 확률이 높았다. 물론, 그 수많은 곳 중에 반드시 방문을 할 확률은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눈이 새롭고 - 꼭 경험해보고 싶은 곳, 혹은 사진으로 꼭 남겨보고 싶은 곳들을 발견하기 때문에 오늘은 뭘 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소재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은 의자에 여유가 있으면 나 혼자 앉아 타인의 방해 없이 고스란히 나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기회도 주기 때문에 버스라는 공간은 분명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많은 수단이었다.
버스에 비해 지하철은 다소 재미가 없을 수 있다. 당연히, 지하철을 타려면 버스와 함께 연결해서 탑승을 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하철 자체가 지하로만 다니는 경우가 많아 밖을 구경할 여유가 없다는 아쉬움이 더욱 컸다. 단지 전광판이나 방송에 집중을 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것으로 지하철의 탑승 의식을 시작한다. 하지만, 지하철은 낯선 공간을 방문할 때 또 다른 색다른 경험을 주게 된다. 물론 내 목적지는 역만 정해졌고, 그곳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결정하지 않은 때였다. 그땐 분명 1호선의 제기역만 선택을 하였을 뿐 그 뒤 목표는 정해지지 않은 때였다. 수많은 출구 중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 나름의 뽑기의 순간이 다가왔다. 어디를 가든 지간에 내가 선택한 출구를 중심으로 하여 그곳으로 직진을 하면 그만이었다. 당연히 그곳은 주택가가 될 수도 있고, 경동시장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청계천이나 신설동 방향이 될 수도 있었다. 어딜 선택하든 새로운 목적지가 보일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운 좋게 이날의 뽑기는 약령시장에서 시작을 했다. 코로나가 한창인지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약령시장의 쓸쓸함을 담기에도 충분한 새로움을 얻을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약령시장을 중심으로 하여 조금만 더 걸어가게 되면 경동시장과 연결이 되고 - 경동시장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청과물시장과 청량리 시장이 연결이 되니 다양한 시장도 구경할 수 있는 즐거움도 함께 얻을 수 있었다. 약령시장과 다르게 경동시장은 여전히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잠깐 멈춰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기보다, 마음 편하게 존 포커싱으로 셔터만 누르는 것으로 촬영을 대신했다. 당연히, 피사체에 찍힌 사진은 많이 흔들리고 초점도 나간 볼품없는 사진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분명 어느 역에 내려야 할지만 결정을 하고, 그다음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 결과 재미난 사진들이 만들어지게 된 것도 우연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 큰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다. 단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 두 발이 이끄는 대로 걸어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내 차를 끌고 가는 순간 모든 것이 고민의 연속이었다. 주차는 어디에 해야 하고, 어딜 가든 다시 차가 주차된 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지나가다 맛있어 보이는 시장 먹거리에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냥 정해진 코스만을 따라 걸어가다 다시 돌아와야 하는 제한사항이 생기게 된다. 때론 여행을 떠나다 보면 좀 더 멀리 가 볼까?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래서 보통 아무 생각 없이 밖을 나갈 땐 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된다.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타던 지하철과 버스는 지금과는 항상 다른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분명,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무언가 새로운 기분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항상 설레었던 것 같다. 이젠 지하철과 버스가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새롭다기보다는 의자에 앉아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고자 할 때가 많다. 하지만, 무심코 밖으로 나갔을 때의 설렘. 그때는 분명 어린 시절 느꼈던 그 설렘과는 다를지라도 항상 설레게 만드는 그 무엇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