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을 두려워하는 당신을 위한 헌정사
얼마 전 필름 카메라인 Nikon FM2를 들고 한 가지 작은 프로젝트를 구상해봤다. 36컷 + a를 가지고 단지 집 주위 5Km 이내의 공간에서 사진을 찍어보기였다. 스튜디오에서 이쁜 모델의 포즈를 가리키며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고, 좋은 장비를 가지고 멋진 풍경을 찍어본 적도 없지만, 분명 가장 흔하고 사소한 공간에 대해 사진을 찍으면 무언가 "다르게 바라보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그때는 비염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했다가 수술을 위해 입원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이었다. 사실 불편하게 짐을 싼 상태에서 카메라 하나 더 들고 가는 건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왠지 캐리어를 끌고 다니니 여행을 떠나는 관광객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사실 눈앞에 있는 늘 보던 공간을 사진으로 찍는 게 오히려 새로운 행동일 수 있었다. 아파트에서 여행용 캐리어를 끌며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으니 경비 아저씨도 연신 이상한 듯 쳐다보곤 했다. 혹시 구청에서 점검을 나온 건지? 아니면 머리가 살짝 돈 사람인 건지? 그러다 경비 아저씨도 용기를 내어 나한테 "혹시 무슨 일이세요?"라고 말을 건다. 우리 주위의 공간을 찍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이 글은 사진에 관한 글이 아니다. 여기서 내가 선택한 Nikon FM2도 정말 오래되고 장롱에 몇십 년은 처박아둔 그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을 사람들의 심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 글은 사실 목적을 가지고 쓰게 된 글이다.
20대까지 내 삶의 대부분은 집 밖을 벗어나질 못했다. 그나마 친구들과 소주 한 잔 하자고 할 때는 잠시 시간을 내어 외출을 하는 정도, 학교를 가기 위에 움직이는 정도가 다 였다. 집에서 컴퓨터나 하고 TV나 보는 일상이 하루의 대부분이었던 시절. 사실 그 당시 친구들의 싸이월드를 보았을 때 여행사진이 한 장씩 늘어나는 것을 보았을 때 참 부럽기만 했다. 혼자 여행을 떠난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니면 집 밖을 나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행"의 즐거움을 느껴보질 못했다. 그나마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을 다니며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와이프를 만나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조금씩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정답은 없었다. 여행이라는 게 꼭 거창하게 먼 곳을 떠날 필요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꼭 숙소를 잡아서 잠을 자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맘 편하게 가까운 곳을 돌아보는 것도 하나의 멋진 여행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만 더 상상을 해 보면, 집 밖의 늘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는 것도 여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여행의 시작이라 생각했다. 아니, 더 중요한 것은 집 안의 나만의 공간에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그 공간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친한 지인과 대화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분은 늘 주말만 되면 혼자 있는다는 것이 두려웠고, 주말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걱정이 된다 했다. 난 잠시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하다, 그분에게 이야길 했다. 우선 중고장터에서 적당한 가격의 카메라부터 사라고 했다. 그러니 그분은 "웬 카메라?"냐고 반문을 한다. 내 이야긴 그랬다. 카메라 하나를 사서 목에 매고 주말마다 신나게 나가보라 했다. 집 앞의 시장. 집 앞의 건널목. 한 블록 건너서의 골목길. 두 블록 지난 뒤의 순댓국집. 그 모든 것을 사진으로 찍어보라 했다. 사실, 우리가 여행을 다니며 찍는 모습이 집 앞 공간의 한 컷 한 컷으로 남길 수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소중한 작업이지 않을까?
분명 똑같은 우체통이라 하더라도, 똑같은 공중전화라 하더라도, 그곳에 있는 모습은 내가 늘 보아오던 모습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약간의 그림자와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사진으로 남길 땐 분명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리고 이른 아침의 햇빛이 혹은 늦은 저녁의 노을이 함께 어우러졌을 때의 모습은 어떠한가? 늘 자주 보던 것도 그날의 빛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그게 여행의 매력이다. 그 매력을 "사진"이라는 소재와 함께 같이 즐길 수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여행으로서 가치가 될 수 있다.
이 사진은 거창한 여행기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이불 밖이 두려워 밖을 못 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고 싶었다. 단지, 그분들이 없는 것은 "용기"일뿐이지, 충분히 많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 난 거기에 사진이라는 소재를 더하고 싶었다. 용기를 내고 함께 나아가 본다면 분명 새로운 공간을 찾을 수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론 아름다움으로, 때론 행복함으로, 때론 신기함으로 눈과 마음을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여행을 하기 위한 목적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그 즐거움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멀고 거창한 곳을 갈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찌 보면, 집 앞 그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그냥 집 앞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그것으로, 평생의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게 시작이다. 단지 용기가 없었을 뿐이지, 돈 몇 푼 없어 못 나갔을 뿐이지. 충분히 아름다움을 경험할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는 단지 하나의 소품일 뿐이다. 정 안되면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들고 열심히 뛰어다니면 된다.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운 그것을 머릭 속에, 기억 속에 사진으로 남기면 된다. 그게 바로 여행의 매력이고, 여행의 장점이며,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 안에 이불속에서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켜며 혼 자 있다는 외로움에 눈물 흘리기보다, 한 번 밖으로 나가 사진도 찍어보고, 맛있는 음식도 맛보고, 커피도 한 잔 마실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한 번 용기를 가져보자. 그리고 떠나자. 우리 모두 여행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