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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Oct 02. 2022

12년 간의 추억 / 12년 만의 시작

새로운 길을 걸어갑니다.

11년 7월 4일.

군대를 전역 한 지 딱 4일이 되는 시점에 회사를 입사하게 된다. 다른 동기들보다 운이 좋았던 건지, 그나마 난 전역 전에 입사에 성공을 하였고, 맘 편하게 입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4일이라는 시간은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탈 바꿈 하기란 쉽지 않은 시간이긴 했다. 모든 것을 "다, 나, 까"로 끝나야 하며,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던 군대와 달리 회사는 아무래도 조금이나마 자율성이 보장이 되었던 곳이었다.

그리고 12년이란 시간이 흐른다. 군인으로서의 시간보다, 대학생으로서의 시간보다 직장인이란 시간이 더 길었던 지난 12년. 항상 내가 속한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자랑스러워했으며, 다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추억으로서 늘 기뻐했다. 물론, 좌절도 있었고,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많았던 추억의 12년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아무래도 지난 12년간의 추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던 거 같다.



문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회계 용어인 "차변"과 "대변"의 뜻을 잘 알지 못했다. 아무래도 생소하다 보니, 외계인만의 용어가 아닐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당연히, "차변"과 "대변"의 뜻을 몰랐으니 전표를 어떻게 기표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기존의 "차변"과 "대변"의 결과만 보고 확인하여 전표를 발생시켰고 어마어마한 일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건 딱 입사 1년도 안되었을 때의 추억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사람들과 헤어지고 했던 것 같다. 당연히 많은 입사동기들이 있었지만 하루하루 퇴사를 반복하는 동기들의 모습을 보며 점점 줄어들어가는 동기들의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난 잘 나가는 선두 그룹도 아니었고, 언제나 그렇지만 동기들 사이에서 늘 조용히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지난 12년 동안 발탁 진급도 없었고, 그냥 무난히 회사에 별 탈 없이 다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물론, 나도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입사 초기에는 방대한 꿈이 있었을 것이고, 그 꿈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은 우리가 고등학생 시절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를 하다, 인 서울 대학에서 지방 거점 국립대로 목표를 조금씩 낮추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아마 나도 현실의 벽과 나의 실력 등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 닳는 것은 너무 늦지 않았던 것 같다.


세상 무심한 듯 회사를 다녔다. 당연히 12년 동안 가족보다 회사의 직장 동료들과의 추억이 더 많다. 아무래도 하루 8시간이라 하더라도, 그 이상 야근을 하던 일상이 가족보다, 내 아이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당연히 내 가족보다 더 소중한 동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함께 울고 웃으며, 소주 한잔 하며 세상을 이야기하고, 회사의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하던 시절. 당연히 울고 웃으며 이야기했던 그 추억들은 나의 뱃살이 되고, 지방간이 되었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지난 12년 동안 "관리 회계"라는 한 직무를 했었고, 그중 9년 간은 한 팀에서 이름만 바뀐 채 근무를 하였다. 당연히 영전하는 선배들과 중간에 힘들어 그만두는 후배들을 보았고, 수많은 담당 임원과 부문장님, 본부장님을 모셨으며, 수많은 신사업에 대한 사업계획을 구상하며 지금까지 지내왔다. 물론, 난 내 직무에서 그리 뛰어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으니, 내 갈길은 이미 정해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수많은 고민을 해왔다. 당연히, 사람의 마음속에서 한 곳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 갑자기 변화를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지난 12년 간의 추억들은 그리 좋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리 나쁘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결국 내가 살아온 그 순간의 추억과 기억 모든 것들이 구성된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아빠로서의 삶. 직장인으로서의 삶.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작가 지망생으로서의 삶. 남편으로서의 삶.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진가로서의 삶. 그 모든 것을 만들고 구성해주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아무래도 지금의 회사 생활이 될 수밖에 없다. 하루 24시간 중 수면 시간 8시간을 제외한 16시간 중 출퇴근 2시간을 뺀 8시간 + a의 시간을 함께 하였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아직 2주가 남은 시점 이지미나, 좀 이른 송별회를 했고, 후배들이 만든 작은 감사패를 읽어보며 눈물을 흘린다. 당연히, 내 꿈 - 내 미래에 대한 목표가 정해져 있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방점을 찍고 새롭게 다시 나아가려 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아예 업종을 바꿔 새롭게 도전을 하는 길이니, 거기에 더불어 사람과의 관계, 회사의 업무 스타일 등 그 모든 것들을 새롭게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인 여전히 나에겐 걱정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작을 선택한 것은 나 자신을 위해 - 그리고 나의 후배들을 위한 선택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결국 나이 든 노병은 떠나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나에게 의존한 채 움직여왔던 모든 프로세스는 당연히 혁신이라는 모습에서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 당연하지만, 내가 사라지고 나서 단 한 달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일은 새롭게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아니, 한 달이 아니라 하루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난 내 나름 열심히 해왔다고 자부심을 느끼지만, 잠시간의 이별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의 만남과 인연은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떠나는 그 순간 아쉬운 후배들의 모습과 동기들의 모습을 보니 뭐라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은 사실이다.


더 많은 기억과 더 많은 추억들, 물론 그 기억과 추억 속에선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만, 사람의 기억은 참으로 아름답게 흘러만 가는 것 같다. 떠난다는 생각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아름다운 기억만 남아 있게 된다. 당연히, 나의 후배들과 동기들, 그리고 선배들의 기억 속에도 그렇게 아름다운 기억들만 남을 수 있다면 더욱 값진 일이 될 것이다. 

아마, 며칠이 지나면 카카오톡에, 혹은 전화번호 즐겨찾기란에 내 번호는 당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그래도 가슴 한편에서 나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잇따면 그것만으로도 지난 12년간의 추억은 나쁘지 않았다 생각한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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