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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Sep 25. 2022

프로젝트 - 잊히길 바라는 사람들

우리 주위에 있는 익숙했던 모든 것들에 대하여

예전부터 글을 쓰고자 마음먹었을 때, 나의 최종 목표는 "불편해지는 글"을 쓰자는 생각이었다. 이 세상엔 아름다운 글들이 너무 많으니, 나 하나쯤은 불편한 글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기자가 되고 싶었다. 잠깐 인턴 기자 생활도 해보고, 여러 루트로 언론사 생활을 경험해 보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꿈과는 괴리가 있었다. 아마 내 마음속에서 생각한 기자는 처절한 밑바닥까지 경험한 경험담을 글로 쓴 에릭 블레어(혹은 조지 오웰)와 같은 글쓰기를 해보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로버트 카파와 같이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달려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상가였던 에릭 블레어
활동가였던 로버트 카파

하지만 나 자신이 이상가이자 활동가가 되고자 한다면 충분히 마음먹기에 따라 실행 가능하단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조금만 더 움직인다면, 그리고 조금만 더 둘러본다면 충분히 재밌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단지, 내가 부족한 건 상상력뿐이며, 글쓰기 실력일 뿐이란 것. 그러니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필요하지만 읽기 불편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분명 가능한 일들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불편함을 싫어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연신 눌러대는 셔터가 "불편함"을 만들기 위함이란 것을 알게 된다면 더더욱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모 지역의 재개발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땐 가볍게 필름 카메라 하나를 들고 편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스케치 사진을 찍고 있었고, 혹시라도 얻어걸리면 그것으로 글이나 쓰자는 심정이었다. 무너진 담벼락 사이의 깨진 유리창과 널브러진 건축 잔해 사이의 모습을 뷰 파인더에 담으려는 순간 어느 덩치 큰 남자가 달려왔다.


"아! 시팔! 너 뭐하는 새끼야?"


한눈에 봐도 이 지역 사람이 아닌 걸 알았다. 마침 내가 사진을 찍던 그곳에서 조금 위로 보니 이탈리아 M사의 고급 세단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난 단지, 사진을 찍으며 그곳을 바라보며 프레임에 참 안 어울리는 차가 주차되어있다 생각했을 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요리조리 잘 피해 가며 사진을 찍었는데 마침 그 덩치 큰 남자에게 걸렸던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 남자는 뭘 찍었는지 사진을 보여달라 했다. 난 사진작가고 서울의 거리와 석양에 대해 찍고 있다고 대충 둘러댔지만(당연히 그런 주제는 나도 처음 생각해 본 주제였다.) 다짜고짜 "아... 시팔! 사진 보여달라고! 귓구멍에 X 박았어?" 라며 인상을 쓰고 손으로 내 머리를 툭툭 쳤다. 당연히 난 미소를 지으며 이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라서 보여줄 수 없다 했다. 그리고 보면 알겠지만, 이제 막 한 컷을 찍은 거라 했다. 요즘 필름값도 비싸서 그러니 한 번만 봐주라 했다.

역시 우리나라는 인정에 약해서일까? 그 남자는 나를 한 번 위아래로 쳐다보더나 "여기서 사진 다시는 찍지 마쇼. 나중엔 그 카메라 박살날 줄 아쇼."라고 하며 다시 M사 차량으로 이동했다. 아마, 그 덩치 큰 남자의 역할은 이 동네를 방문하는 기존 원주민들이 방문하는지, 혹은 전국 철거민 연합에서 시위 준비를 하는지 등을 점검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철거 용역 업체 직원 일지 모른다. 아니면, 그 덩치 큰 남자는 그 지역 땅을 다 소유한 사람이라, 간신히 자신의 땅의 권리를 주장하게 된 불쌍한 남자일 수 있었다. 어찌 되었건 소중한 카메라가 망가질 뻔했다.

출입금지(Lieca MP, Summicron DR 50/2, Fuji Superia 400)

세상은 더 재밌는 일들로 넘친다. 어느 한 지역을 지나다 보면 마천루가 하늘을 찌르는 그곳에 힘겹게 앉아 구걸을 하는 한 할머니가 계셨다. 당연히, 그분에 대한 소문은 무성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구걸을 하고, 저녁 10시가 되면 외제차(아주 오래전엔 그랜저였다가, 최근엔 벤츠까지 발전했다) 한대가 와서 모시고 간다 했다. 강남에 큰 빌딩의 건물주이지만, 그 건물을 일으켜 세운 것은 구걸로 인한 것이며 여전히 엄청난 수입을 얻는다 했다. 당연히 세금 한 푼 안 낸다 했다. 난 그분을 자세히 보았다. 껌 몇 통을 바닥에 늘어놓고 팔고 계실 뿐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천 원짜리 한 장을 드리고, 껌 한 통을 집어간다. 근데, 그 껌 한 통의 가격은 편의점에서도 천 원이다. 당연히 수익이 남는 장사는 아니다. 간간히 사람들이 돈 몇 백 원을 던지고 가긴 하지만, 여전히 수군대는 건 그 할머니는 부자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 까? 내가 사진을 찍고 난 뒤, 하루 날 잡아서 인터뷰를 해 볼까 생각을 했는데 참 가슴 아픈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단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야길 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정답은 사라지게 되고, 그 이야길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당연히 사라지게 된다. 어느 누구도, "내가 이야기했다."라는 말 보다, 누구한테 들었던 이야기임을 강조하며 점점 이야기의 진실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잊히길 바란다.

외면(Leica M-E 240, Summicron-m 50/2 ASPH)

대학 시절 자주 가던 카페인 "엘빈"과 "학림다방"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이젠 그런 분위기의 카페는 대부분 사라졌다. 드리퍼로 내리던 커피는 카페 라테가 아닌 카페 오레가 있었고, 비엔나커피가 있었으며, 헤이즐넛 향이 그 카페의 시그니쳐였다. 달콤하며 계피향이 풍기던 싸구려 쿠키의 맛. 하지만, 그 커피숍은 이제 커피 전문점이 되고, 수많은 커피 전문점들은 또다시 하나의 이름으로 변하게 된다. 단지, 조그만 토큰 가게 사이즈에서 에스 프로세 머신을 연신 누르는 바리스타의 손놀림만 보는 게 저렴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광명(Leica M-E240, Summicron-m 50/2 ASPH)

하지만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잊히길 원하고 있다. 우리가 바로 보는 집들, 벽돌들, 쓰레기통들 조차 다 사라지길 바란다. 어린 시절 대문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켠켠히 쌓여있던 연탄재는 좋은 놀이기구였다. 발로 뻥뻥 차고 깨뜨리던 그 연탄재는 이제는 너무나 신기해서 아이들은 그런 게 있는지 조차 모른다 한다. 부모님을 졸라 샀던 CD 플레이어. 이젠 그런 것도 다 사라지고 없다. 당연하지만 잊혀진 것이다.

난 불편함을 원한다. 당연히, 그 불편함은 왜 불편한지 이유가 있어야 충분히 감수할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이 글을 쓰고 나면 그 불편함 때문에 거부감이 드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써야 하는 글이라면 한 번 내가 써보고 싶다.

주기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하나의 주제가 완성되면 사진은 글을 보충하기 위해 - 글은 사진을 보충하기 위해 채워보고자 한다. 당연히, 내 글 실력은 비루하며, 나의 사진 실력은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쓰고자 하는 목적은 사람에 대한 관심,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이니, 그 목적이 조금이나마 맞아떨어졌으면 한다. 당연히 불편함은 나 만 느껴야 한다. 여러분들은 그 불편함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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