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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Sep 26. 2022

우리 주위에 있는 익숙한 것들과 그러지 않은 것들

프로젝트 - 잊히길 원하는 사람들

200X 년 어느 날. 필자는 굴지의 유통업체의 파업 현장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새벽부터 옥쇄투쟁을 하던 파업현장에서 수많은 기자들이 모여 현장의 긴박함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연히 공권력이 투입되니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이후 며칠이 지난 시점. 필자는 중랑구의 모 유통업체의 파업 현장을 취재차 방문하였다. 그 유통업체는 여전히 영업 중이었고, 주차장을 중심으로 노조원들의 파업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 필자는 그 현장을 촬영하고자 방문하였다. 당연히, 그 현장은 영원히 잊힐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현장에 사진을 찍는 순간, 시위를 진행하는 한 사람이 다가와 카메라를 빼앗으며 이야길 한다.


"XX 현장에서 오신 분이지요?"


그렇다. 그 현장은 필자가 보기에 어떠한 대책도 없는 현장이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하였다면 당연히 기록으로 남겨야 하였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기록으로 남기길 원하지 않았고, 그 내용을 남기고자 하였을 때도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찬가지로 필자가 해당 내용에 대해서 기록을 남겨 국내의 모 사이트에 투고를 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생존권 투쟁이 "진실"이 아닌 양. 단지 해프닝 인양 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 생존의 투쟁은 의외의 순간에 주목을 받는다. 바로 웹툰이자 드라마로 나온 "송곳"이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사실, 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언제나 그 마트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마트의 직원들이 노조 조끼를 입고, 머리띠를 싸 매고 "단결", "투쟁"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는 것은 분명 있어왔던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파업을 하고 시위를 하였어도 우린 지나쳤을 뿐이다. 그 어느 누구도 기록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현실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 당시의 진실에 대한 공방은 중요하지 않다. 어찌 되었건 벌써 10년이 지난 일에 대한 기억이니 어느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어느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투쟁의 기억으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당연히, 이 글을 쓰는 필자나 - 이 당시 이곳을 방문했던 단순한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쳤을 일이 되었을 뿐이다. 당연히 필자의 컴퓨터에 남아있는 내용조차 오래전 초점이 나간 사진 몇 컷이 전부였을 뿐이니까. 당연히 이때의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할 생각은 없다. 아니, 이때의 이야기는 단지 하나의 이미지 환기를 위한 첫 시작에 불과하다.

코로나가 한 창이던 시절, 어느 한 지하철역에서 "차별금지"를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지만 이 표지반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막 초 겨울이 한창이라 추운 날씨에 입김이 서리곤 하였지만, 이들이 들고 있는 입간판을 자세히 읽는 사람도, 그 내용을 조금이라도 전달하고자 하는 상호 교환의 장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이 시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막 시작된 시기였다. 당연히, 유통업계에서는 대목이었지만, 코로나라 그런지 그 어느 곳에도 사람은 없었다. 명동 한 복판으로 돌아보자. 수많은 노점상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던 그 순간은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맑은 햇살에 멋진 그림을 찍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만 연출되었을 뿐이다. 이 당시 인터넷의 여론은 "세금 한 푼"안 내는 사람들에 대해 코로나가 "정의구현"을 하였고, 이제 명동은 시민들의 땅이 되었다는 내용뿐이었다. 하지만, 그 현장이 과연 "정의구현"의 현장이라 할 수 있을까? 모두가 다 생존에 대해 이야기하는 와중에, 누군가는 생존의 공간을 철수해야 하고, 누군가는 "차별금지"를 부르짖고 있지만, 정작 그 현장에서 진실로 필요한 사람들의 손길은 외면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수많은 기업들은 사상 최대 호황을 맞는다. 어느 한 편으로는 코로나로 고통을 받는 시기였으나 - 어느 기업은 사상 최대 호황, 호실적으로 찬사를 받게 된다. 누군가의 고통이,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되는 시기. 당연히 약 30여 넌 전 IMF 사태 때, 누군가는 뛰어오르는 환율로 엄청난 호실적을 경험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당연히, 지금도 마찬가지다. 영 끌을 하는 갭 투자자는 과연 오르기만 하는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었다.

사실, 너무나 작은 순간에서도 우리는 단지 놓칠 뿐이었다. 한 유통업체의 파업 현장에서 - 공권력의 투쟁 속에서, 공권력은 진짜 용하다 할 정도로 일반 고객과 파업 현장의 직원들을 절묘하게 골라내었다. 당연히, 얼굴에 "고객"이라는 표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절묘하게 1인 시위를 하는 현장을 두 눈에 각인되지 않도록 잘 피해나갔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은 이 상황에 큰돈 번 몇몇의 모습을 기억을 하지만, 일자리를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영원히 잊히고 있을 뿐이다.

즉, 우리의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집중하려 하더라도, 우리가 바라보는 그것들은 단지 우리의 기억이 혹은 우리의 인식이 보고 싶어 하는 그것 들뿐이었다. 즉, 우리 주위에 익숙한 그것들은 때론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으나, 우리의 두 눈은 불편함을 애써 피해 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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