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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바람 Sep 27. 2022

거리사진 16 - 믿기 위해 찾아가기

세계 여러 나라의 종교 시설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순간, 그 들은 여기저기 성상으로 가득 채웠다. 성상이 있는 그곳, 예수님의 얼굴이 있는 그곳은 적들의 공격을 성스럽게 피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당시 비잔티움은 그랬다. 하지만, 그 틈을 파고들며 성상을 파괴한다. 이유는 다나 하나다. 성상이 있는 틈을 파고들어 세속의 왕이 들어가길 원했던 것이다. 결국 우리 눈에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은 "종교"의 근원으로 작용하길 원헀다. 세속의 왕은 현재의 신이 되길 원했고, 그 모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세상을 초월하는 초월자로서 신이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혹은 우리의 미래를 기원해줄 존재로서 남아있었다. 파괴의 신 시바를 사랑하는 인도는 사실 세상의 삶이 그만큼 고되고 힘들었기 때문이라 한다. 차라리 모든 것들이 다 없어지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길 바라는 마음.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는지 모른다.

한 동안 인도네시아의 주재 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지만, 그래도 모든 국민은 자신이 "이슬람"이라 이야기를 해야 했다. 사실 법이 그랬다. 그러나 자카르타 대성당은 여전히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의 스타일로 신을 찬미하고, 미래에 대한 기원을 가졌다. 그리고, 필자가 방문했던 그 순간 인도네시아의 전통 복장을 입은 신부의 모습. 어찌 보면 한 가족의 미래를 기원하는 예식이 인도네시아의 전통과 더불어 진행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결혼식(Leica X1, Elmarit 28/2.8)
화동(Leica X1, Elmarit 28/2.8)

그 바로 옆에 있는 모스크는 천주교와 이슬람이 상호 공존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상황이 믿기질 않는다. 조금만 서쪽으로 간다면 중동에서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지만, 이곳은 "종교"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가 서로를 마주 보며 자연스럽게 지내고 있었다. 

모스크(Leica X1, Elmarit 28/2.8)

사실 이 이야기의 목적은 여러 지역의 종교적 이미지에 대해 남겨보고자 했다. 역시 내가 제일 처음 찍었던 곳도 김포의 통진 성당에서였다. 그리고 최근 방문한 이태원의 모스크는 방문조차 하질 못했다. 적어도, 인도네시아의 모스크는 무슬림이 아니더라도 방문을 하고 알라의 성스러움과 자비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면, 이태원의 모스크는 무슬림이 아니라면 방문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한국인을 보는 순간 그들은 찢어진 눈을 하며 한국인을 무시하곤 했다. 그 순간 우리는 고민을 하게 된다. 과연 종교의 자비가 사라지는 것은 지역의 특성 때문인가? 아니면 사람의 마음 때문인가? 적어도, 한국에서 만큼은 종교는 참으로 배타적으로 다가왔다.

이태원 이슬람 사원(Leica MP, Voitglander Nokton 35/1.2 ASPH, Fuji Superia Premium 400)

종교적으로 힘을 쓰지 못하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성당은 있었다. 그곳에의 천주교인들은 "기리 스탄"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박해를 당했다. 그 박해 때문인지 일본의 천주교인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성당은 항상 오픈되어 있다.

오사카 우메다 성당(Canon EOS 60D, Sigma 18-35/1.8 DC)

마찬가지로 명동 성당도 어느 순간부터 종교시설로서가 아닌 모두가 방문하고 마음의 안식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어간다. 종교는 강요하고자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 종교를 느끼는 사람이 감동하여 느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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