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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상대보다 나를 돌아보자

by Simon de Cyrene
가족 나들이를 둘러싼 상황

어머니께서 현충일에 가족끼리 하루 정도 서울을 벗어나서 여행을 가자고 카톡방에 말씀하셨다. 이런저런 이유로 동생과 나는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이 부모님 두 분이 다녀오시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에 대해서 심히, 매우 섭섭하신 느낌이다.


우리 부모님뿐 아니라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이런 경우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 세대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너희는 왜 그렇게 이기적이냐고, 가족이 뭐냐고, 조금도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거나 카톡에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니지만 난 경험상 알고 있다. 어머니 마음에는 이미 그 말들이 오갔다는 것을.


하지만 사실 나나 내 동생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이기적이고 희생하려고 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건 부모님과 함께 야외로 나갈 경우 어떤 패턴이 반복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의사는 크게 상관없이 두 분이 원하시는 곳을 돌면서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하시는 패턴. 그렇다면 부모님께선 우리에게 맞춰서 가족모임을 하신 적이 있느냐면 또 그건 아니다. 나나 동생이 좋아하지만 두 분이 싫어하시는 것을 두 분은 절대로 하지 않으신다.


30대 초반과 후반인, 본인들이 나와 내 동생을 낳으셨던 나이인 두 아들이 그런 상황에서 가기 싫은 발걸음을 반드시 해야 할까? 그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독립시켜서 유지하는 측면이 있기에. 또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단 한 번도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패턴을 들어드리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내 기억에는 5월에 이미 한 번 우리 가족은 그렇게 경기도 외곽으로 나갔다 왔다. 그렇다면 독립된 주체인 아들들의 일정과 마음도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가족이 아니어도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이런 현상은 우리 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아니, 사실 우리 사회에서 관계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대부분 이러한 원리 때문에 일어난다. 어른, 또는 어떠한 사회체제에서든 윗사람이 원하는 것을 말하면 그걸 따르고 순종할 것을 요구하는 분위기. 내가 회사에 다닐 때 아이가 없는 우리 실장님은 그렇게 주말에 실 전체 워크숍을 하고 싶어 하시고 실제로 종종 하기도 하셨는데, 그 워크숍을 좋아한 직원들은 아무도, 아무도 없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 회사 분위기가 그래도 한국에선 자유로운 편이었다 보니 금요일부터 2박 3일 낚시, 산행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실장님의 요구는 종종 좌절되었단 것이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실장님은 히스테리 아닌 히스테리를 그렇게 부리시더라. '요즘 것들'이란 표현을 쓰시면서.


회사뿐인가? 권력을 이용한 성추행, 권력을 이용한 대학원생들 착취 등은 모두 '윗사람'이란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강제하려는 성향의 사람들이 만들어 낸 사회적 현상들이다. 단순히 가족 나들이에서 시작한 글에서 너무 멀리 나가는 것 아니냐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 두 가지 현상의 뿌리는 분명히 같다. 잘못된, 왜곡된 유교적 사고방식. 유교적 사고방식이라기보단 사실 상명하복의 군대문화에 가까운 그러한 인식과 행동이 우리나라에서 세대 간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부터 돌아보자

우리 사회에서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면 '너는' 또는 '요즘 젊은것들은'이라는 식의 발언을 너무나 쉽게 내뱉는다. 물론 정말 그 개인과 그 세대의 특징이 그러한 것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특징들은 많은 경우에 '다름'일 뿐 '틀림'은 아닌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리고 그 '다름'은 다름 그대로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두 사람, 혹은 집단 안에서 다양한 관계에 불편함이 있는 것은, 그리고 그 관계에서 한쪽이 가능하면 상대와 뭔가를 같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원인은 상대에게만 있지 않다. 상대가 그러는 것은 상대의 취향이나 성향 때문에 내게 그러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상대를 불편하게 하거나 힘들게 하기 때문에 그러는 면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하다면 내가 상대의 어떤 면 때문에 그러는지도 생각해 봐야 하지만 상대는 나의 어떤 면을 불편해하는지를 놓고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러한 불편함이 완전히 상대 탓이기만 한 경우는 없으니까.


그런 고민을 해 본 이후 그 원인을 파악한 이후에 우리는 상대와 맞출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맞추기 위해 노력을 하되, 도저히 맞춰지지 않는 부분으로 인해 그 관계가 불편하다면 우리는 상대와 내 사이의 다름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인정하고 그 관계에 쏟는 에너지를 줄여야 한다.


이게 가족이나 회사와 같이 끊을 수 없는 관계에서 그런 관계가 존재하면 그게 쉽지 않긴 하지만 우린 그런 관계일수록 문제를 터뜨리기보다 지혜롭게 다름을 그대로 묻고 지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맞다. 이는 사실 두 사람이 모두 다름을 다름으로 존중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가 편하지 않은 이유에 공감한다면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그게 안 되는 경우 한쪽은 그 다름이 틀림으로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러한 생각은 누구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쪽이 관계를 바꾸려고 들면, 내 경험상 그 관계는 더 멍들게 되어 있다.


이래야만 하는 현실과 관계들이 우리나라에 꽤나 많이 존재한단 것은 사실 굉장히 가슴 아픈 일이다. 모든 관계에서 위, 아래를 따지고 다름은 틀림이라고 생각하지만 않아도 그런 문제들은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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