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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어떻게 봐야 할까?

by Simon de Cyrene
정치는 그 나라 시민들의 수준을 보여준다

'정치는 그 나라 시민(국민)들의 수준을 보여준다.'는 말. 너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자주 회자되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서 '정말 그러한가?'라는 말을 묻지도 않고, 왜 그런지에 대해서 따져보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위 명제 또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정치가 그 나라 구성원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은 근대국가에서 민주주의 또는 최소한 투표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선거는 유일하게 그 국가의 구성원들이 전원, 최소한 성인들은 전원 참여할 수 있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굉장히 많지만 선거만큼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활동 또는 절차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는 정치를 하는, 즉 정부를 다스리는데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을 결정하는 절차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의사결정을 '직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선거에 후보로 나선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앞에 내세울까? '무엇을 내세워야 할까?'가 아니라 '내세울까?'가 이 질문의 핵심이다. 무엇을 내세워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해서는 굉장히 모범적인 답안이 제시될 수 있고,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은 모두 그 모범답안을 말하겠지만 현실에서 당선이 되기 위해서 내세우게 '되는' 것이 꼭 내세워야 '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후보로 나서는 사람들은 '자신이 내세웠을 때 승리할 수 있는', 즉 '선택받을 수 있는 것'을 앞세운다. 그 나라의 정치가 그 나라 구성원들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그 국가의 국민들이 정말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을 분석하고 따져서 그것을 기준으로 선택한다면 후보로 나서는 사람들은 그 핵심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그로 인한 성과를 앞세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본다면 후보들은 자신을 당선시킬 그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선거는 이처럼 철저히 시장원리에 의해서 작동된다. 따라서 그 시장에 어떤 것들이 진열되어 있는지는 그 사회에서 무엇이 통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선거는, 정치는 그 국가의 시민의식과 문화 수준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게 되어있다.


우리나라 정치의 수준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은 어떠한가? 두 말할 것 없이 형편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칭 보수와 자칭 진보가 존재하지만, 그들이 하는 주장들을 들어보면 그 안에는 사실 이념적인 지향성이 거의 없다. 당파'싸움'이 있을 뿐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에게 통할 말과 통하지 않을 말을 골라서 할 뿐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안면 몰수하고 적극적으로 시행하며, 그게 통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왜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을까? 그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가 너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너무나도 당연히도 남북한이 분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우리나라에 안보적인 위협과 불확실성의 원인제공자로 한반도에 존재하다 보니 우리나라는 조금 심하게 말하면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기준으로 양분되어 있다. 여기에다 하필이면 주요 세력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정당을 만들어서 지역에 따라 세력이 갈라져 있다보니 정치를 하려고 하는, 권력을 손에 쥐려는 사람들은 그러한 집단들 중 자신에게 유리합 집단을 규합하는데만 관심이 있다.


그 두 번째 이유는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국민들의 시민의식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1987년에 헌법이 개정되는 시점에 성인이었던, 아니 사실은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사람들까지도 대부분이 선거가 갖는 의미가 무엇이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식이 없던 사람들이다. 그건 그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런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 대학에 진학해서 이념적인 공부를 했던 사람들이 아니라면 50세 이상인 분들은 사회구조적으로 시민의식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학교 설립하는 것을 인가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기 전, 즉 9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대학에 진학할 기회가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렇다 보니 50세 이상인 분들 중 상당수, 특히 그때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고 지금도 넉넉하지 않으며 교육받을 기회도 제대로 부여받지 못했던 분들은 자신이 경험한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박정희 때가 좋았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고, 반대로 군사정권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가족이나 지인이 있었던 사람들은 그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치가 성숙하는데 필요한 것

따라서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이 매우 낮은 것은 자연스럽게 당연한 일이다. 아니 사실은 정치인들이 가장 나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투표를 하는 사람들 중에 일정 연령 이상의 분들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들이 살아온 시대가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휘둘리게 되어 있지만, 지금 정치를 하는 기성세대들 중 상당수는 그 시대에 교육받을 기회를 부여받고 그 이후에 어떤 형태로든 많은 것을 누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엄연히 말하면 무엇인가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안 하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권력에 집착하는 바람에 이제는 할 줄 모르게 되었지만 한 때는 알았던 사람들이고,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형성된 사람들의 성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정치가 조금 나아지고 정파가 아니라 정책 중심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사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정치영역은 국가를 막론하고 다 권력중심으로 움직이고 깨끗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정책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척'이라도 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최소한 100-200년 이상의 민주주의와 관련된 변화들을 겪은 국가들이다. 그런 점을 감안했을 때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고, 우리는 지금 그 변화기에 서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사람들은 트럼프가 당선된 것을 보고 미국 정치도 똑같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트럼프는 미국 백인 서민들의 마음에 부합하는 정책들을 공약에 많이 포함시켰고, 그 정책들이 그들의 결정을 움직인 결과 당선된 것이다. 정파 중심으로 정치가 이뤄졌다면 트럼프는 당선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 군부독재를 경험한 기억이 없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투표를 하고 그 사람들의 투표 경향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람들이 단순히 정당이나 세력이 아니라 정말 일 잘할 사람, 말이 되는 정책을 앞세운 사람에 한 표를 행사하고 그게 그 세대의 흐름이 되면 정치인들도 그에 맞춰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말 제대로 된 법률을 만들고, 제대로 협상하고 토론할 줄 아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정책과 공약을 갖고 당선될 때야 비로소 우리나라 정계가 애들 싸움터가 아니라 정계다워질 것이다. 물론 그때도 세력을 규합해서 당선되기 위한 시도는 끊임없이 이뤄질 것이고 그게 통하는 지역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지역에서 그런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름값이나 정당이 아닌 정책과 경력 및 실력으로 당선되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우리나라 정치가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사실 우리나라 정치가 아직도 이 정도 수준밖에 안되고 항상 편 가르기와 싸우기만 하는 것은 정치인과 함께 투표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나 하나 투표하지 않는다고, 나 하나 그냥 정당 보고 투표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안일한 생각들이 모여서, 그게 그 세대의 분위기가 됨으로 인해 80-90년대부터 투표해왔던 기성세대의 투표성향이 그대로 반영될 수 있게 방치한 군사독재정권 이후 세대들도 지금의 정치적인 상황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내년 총선부터 조금씩이라도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상적인 소망을 갖는 것은 역시나 너무나 이상적인 생각에 불과할 것이다.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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