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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원인 없는 열매는 없다.

by Simon de Cyrene

우리 집은, 정확히 말하면 우리 부모님은 지적질의 달인이고 칭찬하는 법을 모르신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평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끊임없는 채찍질은 하시는데 당근은 주는 법을 모르신다. 쉬지 않고 채찍질을 하고 본인의 방법으로 강요를 하는데 그 말에게 당근을 주지 않으면 그 말은 어떻게 될까? 지치고 상처투성이가 되며 점점 그 주인에게서 피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항상 그렇게 자라왔다. 이 예시를 들으면 어머니께선 '넌 지금 언제 적 얘기를 갖고 아직도 그러니?'라고 하시겠지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해외에서 살면서 중학교 학생회장에 당선되었을 때 내가 들어야 했던 말은 '어머 우리 아들 잘했네, 잘됐다, 수고했어'가 아니라 '여러 나라 애들 있는데 한국 사람이 학생회장이 되면 성적도 잘 받아야 하는 거 알지?'였다. 내가 항상 이 예시를 드는 것은 이 예시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채찍질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순간에는 몰랐지만 부모님에게 그런 얘기와 채찍질을 들으면서 내게 생겼던 가장 안 좋은 습관은, 나도 모르게 나 역시 사람들을 그렇게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었다. 우리 집에선 사람이 외모, 학력, 결과 등으로 평가되었고, 항상 잘못된 것이 날카롭게 지적되었는데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돌아보니 나도 마찬가지로 그러고 있더라. 내가 싫어졌고, 내가 혐오스러워졌다.


나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할만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모님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기는 참으로 힘들더라. 나는 죽도록 힘들게 노력하고 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너 방 안에서 공부하고 있는 거 맞니? 그런데 왜 떨어져?'에서부터 해서 '너는 살을 좀 빼야 사람다워져'까지. 부모님의 판단 대상이 되었던 내 모습은 정말로 다양했다.


그 집중포화를 뚫고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부모님과 대립각을 세워야 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굉장히 많이 대든 편이다. 한 때는 '난 정말 나쁜 호로자식인가?'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하지만 나이가 들고 심리학, 교육학 관련된 서적들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우리 가정의 분위기에서 성장한 아이는 누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단 것이다. 그래서 난 더 싸웠고, 더 대들었다. 부모님께 그건 내가 기본도 안된 예의가 없는 사람이어 서로 받아들여졌겠지만, 내겐 그게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넌 이걸 이렇게 해야지'라는 말을 이젠 그만 듣고 싶었다.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누군가 해주고, 힘들 때 옆에서 안아줬으면 좋겠단 생각을, 길고 긴 인생의 터널을 지나면서 했다. 하지만 집에서 내게 돌아오는 것은 너 때문에 우리가 힘들잖아, 너 때문에 우리가 시골에 못 가잖아, 너 때문에 내가 아직도 일해야 하잖아라는 피드백이었다. 심지어 동생이 언성을 높이면 그것도 장남인 나의 잘못으로 돌아왔다. 지겹고, 지치는 5-6년을 그렇게 보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선 모든 것이, 내 탓이었다.


지금도 두 분은 달라지지 않으셨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이번 주에만 3-4번째 '너는 살을 빼야 연애하고 결혼하지'란 말을, 오늘은 일어나서 방 밖으로 나선 지 10분도 되지 않아 들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 말을 받고 지나가면서 '내가 이 말은 안 하고 있었는데, 넌 정말 살 빼야 되고 그러려면 생활패턴을 바꿔야 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니까 살이 안 빠지지. 피곤한 것도 살이 쪄서 그런 거야.'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내가 이 말은 안 하고 있었는데]라고 하는 순간 사실 얼마 동안이 되었든 지난 얼마 동안 말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또 모든 것은 내 탓이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보통 2-3개월은 지쳐서 뻗어 있다는데 단 하루도 온전히 쉬지 못한 내 상황은 고려된 적이 없다. 그에 대해서도 난 항상 '너 논문은 언제 쓰니? 글은 언제 마무리돼?' 등의 압박뿐이었다.


객관적으로 살펴보자. 30대 후반이 되면 누군가를 소개받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또 내가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까탈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는 그래서 사실 난 개인적으로 서두르고 싶지도 않다. 물론 외적으로 다듬어지면 조금 더 플러스 요소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난 살이 빠졌을 땐 연애를 오히려 못했었다. 지인들에게 항상 하는 표현을 쓰자면 난 매니아층이 있는 성향의 사람이지 만인의 연인은 아니다. 외적인 면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말이다 (쓰고 보니 사실 외적인 면도...).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자리를 잡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난 지금 여러 가지 일들이 몰려들어서 감당하지 못하고 일이 계속 밀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 요소들은 전혀 고려가 되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반복적으로 판단받고 있다.


이제는 알고, 받아도 들였다. 부모님께서 바뀌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사실 부모님도 그렇게 되신 것은 본인 잘못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와 두 분의 성장환경의 영향이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이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을 때 아버지께 '그럼 우리 피 안에 저주라도 흐른단 거냐 지금?'이란 말을 들은 건 또 다른 애기다.) 그렇지 않은 가정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가정들에서는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있다는 것도. 사실 내가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각을 날카롭게 세울 때 동생은 '형은 왜 그냥 넘어가지를 못해? 부모님이 바뀌지 않을 거란 걸 받아들이고 그냥 넘겨'라고 나를 힐난했었고, 나도 결국 그걸 받아들이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계속 부딪힐 수밖에 없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같은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나고 싶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도 않고 '싫다'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두 분의 자녀로 성장하고 자라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두 분은 '네 부모로 사는 것도 힘들어'라고 하시고, 그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고 두 분을 힘들게 하는 나의 성향은 안타깝게도 두 분에게도 그래도 있는 것이 두 분께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다. 이 모든 게 두 분이 나쁘고 극악한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두 분이 칭찬하고 달래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러하는 법을 모르고, 그건 그런 가정환경에서 성장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나라에선 그런 문화가 '유교적인 분위기'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건 사실 조선 후기, 일제 치하와 성장 일변도의 사회적 분위기의 결과물이다. 뿌리가 없는 열매는 없다. 식물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도. 그리고 그 원인이 해결되기 전에는 절대로 그 열매가, 외부로 표출되는 현상이 달라질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악플도, 최근에 일어나는 가정 안에서의 살인도 모두 뿌리는 그러한 사회적 특성에 있다.


그리고 사실 그 가장 큰 원인은 진정한 사랑의 부재 때문이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이고 실수는 용납하는 관용적인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는 매우 부족하고, 이는 결국 애정결핍으로 인한 것이다. 가정에서부터 사회까지. 그러다보니 가정에서든, 회사에서든, 학교에서든 사회구조적으로 더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분노하고 폭발하면 그걸 찍어 누르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 사회에선 그런 사람들을 '꼰대'라고 한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은 나이, 경력 등과 무관하게 상대의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걸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과연 할 수 있을까? 쉽게 장담하기엔 우리 사회에 있는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기 좋아하는 뿌리가 너무 깊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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