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게에 대하여
가버나움와 기생충, 우리나라의 교육
'가버나움'을 봤다. 극장에서 보고 싶었지만 늦게나마 본 게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어떤 이들은 가버나움이 조금은 많이 복잡하고 극단적인 환경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부모가 무엇인가를 더 해줬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그런데 '가버나움'을 보면서 영화 '기생충'이 계속 떠오르고,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가버나움을 보면서 기생충이 떠오른 것은 그 안에서 상황들이 개인의 나태함과 게으름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자인의 부모님은 무책임하게 무조건 아이를 낳는 사람들로 보기보다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피임을 제대로 할 줄도 모르고, 경제적으로 극빈한 상황에서 자신들도 벗어나기가 힘들었던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따라서 사실 가버나움을 보면서 자인의 부모에게 돌을 던지지는 못하게 되더라.
그와 달리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서는 다른 형태로 자녀들에게 잔인한 부모들이 많다.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고, 공부를 강요하고, 특정 대학의 전공을 가라고 강요하는 부모들이 그들이다. 어떤 이들은 이 지점에서 그 부모들이 왜 나쁘냐고, 그 부모들이 얼마나 아이들을 위해서 많은 것을 해주고 있냐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사실이다. 그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많이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떤 가정에서는 집 몇 채의 돈이 아이의 교육에 들어갈 것이다.
누구를 위한 소비인가?
하지만 그게 정말 그 아이에게 주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비하는 것인가? 정말 그 아이에게 그게 최선인가? 그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인가?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인가? 아니다. 대부분, 아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렇게 루틴화 된 삶을 사는 아이들 중에 그런 삶을 원했던 아이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학부시절에 영어학원에서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강남에서 해본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방학에 하루에 학원 3-4개를 돌면서 사는 삶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부모님에게 혼나는 것이 무서워서, 그리고 그런 삶 밖에 몰라서 그렇게 살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 본인이 그 삶을 원한다고 말하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목표로 하는 대학과 전공이 본인에게 정말 잘 맞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교육체계 하에서 다른 아이들과 경쟁하고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경주마처럼 달리는 것이 그 아이가 원했던 것이며, 그 아이의 본래 성향이었을까? 최소한 그 부분만큼은 나쁘게 말하면 부모에 의해서 강요된, 좋게 말하면 학습된 것임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서 어떤 부모들은 그럴지도 모른다. '아이가 그렇게 보내달라고 했다고' 그런데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아이들은 부모는 아이들이 듣는 줄도 모르는 말들을 다 듣고 부모에게서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한 일들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의 말투와 행동을 닮고, 일정 연령 이상이 될 때까지는 부모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많이 받는다. 따라서 아이가 원한다고 한 것은 사실은 그 아이의 시선에서 부모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한다고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고,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더 잔인한 것일까? 사회구조적인 상황으로 인해서 아이에게 충분히 주지 못하는 부모와 자신이 원하는 삶,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적인 지위와 직업, 가치를 아이에게 실질적으로 강요하는 부모. 난 후자라고 생각한다. 이는 전자는 정말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지만 후자는 부모가 선택에 의해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사실은 본인이 아이에게 원하는 것을 아이에게 강요한 것을 절대로 아이를 '위해서' 해준 것이라고 하지 말자. 그건 자신을 위해서 소비한 것이지 아이를 위해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아이를 그렇게 양육하고 부모의 생각대로 강요하는 것이 나쁜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부모가 모든 것을 구조화시키고 짜준 아이는 성장한 이후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본인이 결정을 내릴 줄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인이 자신의 자녀보다 더 오래 살고 싶은 게 아닌 이상, 아이를 그렇게 양육하는 것은 최악의 양육방식이 아닐까? 50이 넘어서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어'라고 말하며 갑자기 전문직을 때려치운 사람도, 30이 가까이 되어서도 어느 회사에 어떻게 자소서를 쓸 줄 모르는 사람도 사실은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아이를 자신의 도구로 전락시킨 부모에 의해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부모가 되면 어른이 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부모들이 가장 모르는 것은, 본인이 혼내는 아이의 모습이 사실은 본인 안에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과 말, 가치관을 무의식 중에 따라 한다. 나 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정말 싫어했던 부모님의 모습이 내 안에서 그대로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굉장히 많다.
그렇다면 좋은 부모는,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주위에 피해를 끼칠 때 무조건 혼내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어디에서 이런 것을 보고 배웠을까?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라고 고민해 볼 것이다. 그리고 정말 좋은 부모는 '애가 뭐를 알아?'라고 무조건 혼내고 아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안 되게 들리더라도 최대한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이다. 항상은 아니라도 최소한 상황이 허락할 때는 말이다.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았던 시간이 짧았을 뿐 나와 동일한 인격체이니까. 또 그러다 보면 그 부모는 어느 순간 아이와 진지하게 대화하며 그 아이가 선택할 진로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대화하고 있게 될 것이다. 물론 본인의 인생에 대한 최종 결정은 그 아이가 할 수 있게 존중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애를 가져 봐야 어른이 돼'라고 말한다. 나도 개인적으로 그에 동의하는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맥락과 조금 다른 맥락으로 그 표현을 이해한다. 사람들은 보통 아이를 키우는 게 정말 힘들어도 그걸 참아내고 그 아이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단 차원에서 그 표현을 쓴다. 그런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난 그보다도 '아이를 키우면서 그 속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들을 보면서 아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주기 위해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습관들을 바꾸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애를 가져 봐야 어른이 된다는 표현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그것이야 말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진짜 사랑을 할 줄 아는 것이며, 진짜 사랑은 그 사람이 상대를 위해 나 자신을 바꾸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가졌지만 그 아이에게 내가 생각하는 삶을 강요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야 말로 아이를 갖지 않는 게 나을뻔한 사람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