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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by Simon de Cyrene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내 시간을 낸다. 그게 내 일이 엄청나게 방해되는 게 아니라면. 그리고 나는 정말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고마움의 표시로 뭔가를 줄 때면 내 도움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는 지를 항상 돌아보게 된다. 사실 '도움'이라는 것 자체가 대가를 전제로 하지 않는 것이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하기에 대가를 기대하고 도움을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대가를 원하는 경우에는 처음부터 대가를 요구하는 편이다.


내 도움에 대해 기대하는 대가를 굳이 꼽으라면 그건 고맙다는 의사표시 정도이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그리고 도움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기에 난 그 이상을 바라고 누군가를 돕진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솔직히 망설여지는 경우가 더 많다. 이는 고맙다는 말은커녕 내게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도움을 당연한 게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돈을 내고 변호사를 고용해야 할 건에 대해서 '아직은 소송에 간 게 아니라서 돈 주고 변호사를 고용하긴 조금 그렇다'면서 나한테 수시로 전화를 해서 법적인 것을 물어보거나, 자료들을 검토해 달라고 해서 자료들을 검토하고 심지어 서면 초안을 써줬음에도 그 메일에 조차 답이 없었던 경험을 나는 꽤나 많이 해왔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 해준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 상황이 안타까워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단 마음에 도와줬던 것이다. 물론, 소송에 엮인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도 정신없기에 악의를 갖고 그랬다기보다 정신이 없어서 잊어버린 경우도 있을 테지만, 몇 년 만에 연락이 와서 그렇게 도움을 받고 그걸 당연시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지는 않다. 내 시간과 노력을 들인 도움을 받았다면, 그것을 최소한 당연하게는 여기지 말아야 한다.


내 경우에는 법률적인 것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그렇게 연락이 많이 오지만,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모든 지인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과 관련되어 그런 부탁이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그리고 기껏 도와줬더니 그걸 당연시하고, 너무 화가 나서 '야 최소한 고맙단 말은 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하자 '너한테는 그거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뭘 쪼잔하게 그걸 갖고 그래'라고 반응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최소한 그런 경험을 하진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나도 그렇게 화를 냈으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이 내게 해주거나 시간을 쓰는 것은 어느 경우에도 당연하지 않다. 상대가 기꺼이 도움을 준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어도 고마워하고 잊지 않는 게 맞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 나는 도와준 것을 기억도 못하는데 상대가 그때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었다며 고마움을 표현하면 그게 그렇게 감동으로 다가오더라. 그리고 그 작은 걸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게 또 고마워지더라.


우리 모두가, 모든 일에 그런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은, 아니 많이 더 아름다워 지지 않을까? 그 사람이 당신에게 해준 것을 한 번 그 사람이 받는 시급에 그 사람이 도와주는데 소요된 시간을 곱해보면 그 사람이 준 도움의 가치가 얼마인지를 알 수 있다. 그만큼의 대가를 주라는 것이 아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이 그만큼의 대가를 자신에게 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단 것이다.


그 사람에게 무엇인가가 쉬운 것은, 그 사람이 그것을 쉽게 할 수 있을 때까지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해서 그 일을 하는데 숙련되었거나 그와 관련된 인프라가 있기 때문이다.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걸 활용할 권리가 당연하게 생기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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