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치학에 대하여
요즘 부쩍 교수님들께 부탁을 하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한다. 학부시절 은사님, 지도교수님, 내 학위논문 심사 커미티에 계셨던 교수님들 또는 그냥 사적으로 아는 교수님들께. 강의할만한 곳 혹시 알아봐 주실 수 있냐고, 혹시 교수님네 학교에서 강의 하나만 주시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고 싶단 마음이 굴뚝 같이 일어난다. 수도 없이 뜨는 강사와 교수 모집공고를 보면서. 갓 박사를 받아서 강의 경력이 없고, 학교 센터 기관지에 실린 글은 있어도 등재지에 실린 글이 없어서 내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단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유혹은 유혹으로 끝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고, 부탁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부터 그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내 일은 내가 책임져야 한단 인식이, 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에 그게 습관이 됐었다. 심지어는 부모님께서 '넌 대체 왜 부모한테도 부탁을 안 하니?'라고 할 정도로 사소한 것까지 내가 직접 하는 것이 내겐 편했고, 난 그것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서부턴가 난 다른 이유로 부탁을 하지 않는다. 내가 부탁을 하는 순간, 내가 그것에 구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고, 난 그래서 부탁을 잘 안하는 편이다. 이는 내가 부탁을 해서, 상대방을 그것을 들어주고 나면 상대가 내게 뭔가를 부탁했을 때 내가 거절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뭔가 부탁을 해서 받았거나 하게 되었다면, 나는 그것을 그만두거나 버리면 안 되게 되어서 그것에 구속될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자, 내가 부탁을 해서 상대방이 뭔가를 내게 해주기 위해 자신의 힘, 노력, 영향력을 썼다면, 내가 그것을 포기하거나 그만뒀을 때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그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굉장히 곤란해질 수도 있다.
상황이 바뀌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맞다. 그런데 그러한 변명을 대는 사람들은 보통 본인이 그 상황에서 더 좋은 게 생기면 그걸 포기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 것일 텐데, 사실 장기적으로는 자신이 그걸 포기하는 게 더 많은 것을 잃게 만들 수도 있다.
이는 특히 일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예를 들면 내가 부탁해서 어떤 일을 맡거나 어디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더 좋은 자리가 생기거나 본인이 시간이 안되어서 그걸 못하겠다고 하면 그 부탁을 들어준 사람은 다시는 그 사람에게 어떤 일도 맡기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더 최악의 경우에는 “그 사람이 부탁을 하고 기껏 주선해줬더니 더 좋은 게 생겼다며 그냥 버리더라”면서 그 사람은 본인 이익만 아는 사람이라고 주위에, 혹은 결정적인 순간에 말하고 다님으로 인해 그 사람의 앞길을 막을 수도 있다.
그래서 큰 일과 관련되어 있을수록, 관계가 좁게 형성되는 영역일수록 부탁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부탁을 하면, 그것을 내가 반드시 하겠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 그럴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부탁을 하기보다 본인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맞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내게 부탁해 오는 경우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다른 사람이 내게 부탁한 것은, 그 사람이 날 필요로 하기 때문이고 난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사정에 변경이 생겨서 그 일을 못하게 되었다면, 양해를 구하고 마무리만 잘하면 사실 상대의 입장에선 자신이 부탁을 했던 사람에게 뭐라고 해서는 안된다. 그 부탁에 대한 대가를 어떤 형태로 지급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사람이 꼭 해주지 않아도 될 일을 그 사람이 해주려다가 상황이 바뀌어서 못해주겠다고 하면, 그게 어떻게 그 사람 탓이 되겠나?
이처럼 누가 부탁을 하고, 부탁을 받는지는 그 부탁에 대한 말을 하는 순간 갑과 을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래서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부탁은 하지 않는 게 낫다. 그게 그 사람이 주체적이고, 자주적으로 사는데 도움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