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기존에 사놨던 안경테에 알을 맞추러 예전에 다녔던 안경원에 갔다. 그 안경원은 남대문시장 안에 있는데, 아저씨께서 사기를 칠 것 같지 않았고 남대문시장이 동네 안경원보다는 쌀 듯해서 안경을 바꾸거나 해야 할 땐 그 가게를 찾는다. 이번에 확인해 보니 거의 5년에 한 번씩 찾았더라.
이번에는 안경테를 사놓은 게 있어서 알만 맞추러 갔다. 테를 사놓고 왜 한참을 그냥 방치했냐고? 첫 번째는 남대문 시장에 가는 게 귀찮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이미 쓰는 안경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안경테를 실수로 사무실에 놓고 왔더니 집에서 작업을 할 수가 없는 게 너무 불편해서, 그리고 마침 명동에 갈 일이 생겨서 알을 맞췄다.
내가 안경테를 선택하는 기준은 가격, 무게, 모양이다. 다 보는 것 아니냐고? 맞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격은 상한선을 그어 놓고, 모양은 항상 비슷한 것을 쓰기 때문에 또 그대로 두고, 결국은 무게에서 선택이 많이 갈린다. 그런데 안경을 쓰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날 컨디션에 따라 안경의 무게는 개인의 기분과 컨디션에 엄청 큰 영향을 미친다. 사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안경의 무게가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컨디션이 나쁘거나 피곤한 날에 무거운 안경을 쓰면 얼굴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난 무조건 가벼운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안경이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서는 내 얼굴에 뭔가 얹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안정감을 주기도 하니까.
이번엔 안경테 두 개를 들고 갔다. 엄청 가벼운 것 하나, 그리고 조금 무게감이 있는 것 하나. 안경테를 보신 안경원 주인아저씨는 알만 맞추는 게 내심 편하진 않은 듯했지만, 기록을 보니 10년 전부터 오던 사람에게 그 티를 내지도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안경테들을 보더니 내 가벼운 테를 보고 '이게 밖으로 휘어져 있어서 초점이 안 맞는다. 안경은 가운데가 단단한 걸 사서 휘지 않고 중심을 잡아주게 해야 한다. 이건 좀 그냥 그렇네.'라고 하시더니 조금 더 무게감이 있는 테는 잡고 '이건 괜찮네'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가격은 가벼운 테가 무거운 테보다 더 나간다는 것을 그분도 모르셨을 리가 없다.
기준의 차이였다. 그 아저씨의 기준은 안정감과 기능적으로 눈 자체에 편안함을 주는 것이었다. 그 기준에선 그 아저씨의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안경을 그런 면에서 접근하지 않는, 직접 안경을 쓰는 내겐 착용감과 테의 무게가 가장 중요했다. 그런 기준에선 그 아저씨가 저평가했던 안경테가 훨씬 우월했다. 어떤 이들은 안경의 '본질'인 기능에는 그 아저씨의 기준이 더 맞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항상 착용하고 있는 안경의 특징에 비춰보면 그것을 착용하고 싶지 않거나, 착용하는 게 불편하다면 우린 그 본질을 맛보지도 않고 그 옵션을 버리게 될 텐데, 그렇다면 무엇이 더 중요할까?
모든 것은 '기준'의 차이다. 기준의 '다름'이 항상 '틀림'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대부분이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는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틀림이 다름이라는 공식은 어르신들의 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세대 간 갈등을 보면 그 갈등의 이면에는 모든 세대가 각자 본인과 다름은 틀림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현상 또는 경향성이 있는 듯하다.
안경 하나에서도 기준의 다름이 이렇게 세밀하게 작용하는데, 안경보다 복잡한 사회문제들은 그 다름과 틀림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을까? 무엇인가가 틀리다고 단정하기 전에 한 걸음 물러서서 그것이 다름인지 틀림인지를 생각만 해봐도 우리 사회에 갈등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