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시장경제원리의 허상에 대하여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가?
경제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로 한다. 학부시절에 미시경제와 거시경제 과목을 듣는 과정에서 경제학을 이중으로 전공하지 않기로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20대에 사회생활을 전혀 해보지 않은, 아는 것도 별 것 없었던 내가 보기에도 인간은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존재인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그것을 전제로 하는 학문을 공부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그러한 나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혹은 원하는 것만큼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고,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서 상황과 사람을 판단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 안에 일어나는 감정에 휘둘린다.
그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일까? 아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란 것은 자신과 현실에서 떨어져서 세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단 것을 의미한다. '개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라는 '이성'에 대한 사전적 정의와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한 것'이라는 '합리'의 사전적 정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란 것은 개념과 이론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상황을 판단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은 감정, 욕구, 욕심, 욕망과 같은 감정과 감성에 휘둘리는 존재다. 사람들이 왜 각종 중독에 빠지고 정신과 병원을 찾으며, 심리상담을 받을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때 인간은 그런 것에 휘둘리거나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개인에 따라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에게도 그러한 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난 감정에 절대 휘둘리지 않고 매사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야'라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자신이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에 휘둘리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시장경제원리의 허점
그래서 사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로 하는 시장경제원리를 과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시장경제원리는 어디까지 원리이고 이론이며 형식이고,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완전히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인간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단순히 '시장경제원리에 따라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내가 '반시장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난 기본적으로 시장경제원리를 기초로 경제제도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장경제원리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비합리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효율을 보충 및 보완하는 조치들은 이뤄져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사람들은 '작은 정부' 얘기를 하지만, 이론적으로 '작은 정부'의 이야기가 나온 것은 정부의 역할이 그렇게 크지 않았고 지금과 같은 국제사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수백 년 전의 이야기이다. 사실 국가들의 연합체인 UN이 존재하고 국제법의 규범성이 실질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가장 작은 정부의 역할도 이미 작은정부에 대한 이론적인 논의가 이뤄지던 시기의 기준으로는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작은 정부'에 대한 얘기를 할 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건 작은 정부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특정 사안에 대해서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사안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작은 정부'라는 얘기를 들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뚜렷한 근거 없이 '이게 옳은 거야'라고만 주장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들의 해결방안은 제시하지도 못한다. 그게 어떻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의 사고방식일 수 있을까? 그건 본인의 '믿음'일뿐이다.
'그냥 그렇게 하면 해결될꺼야'라는 말과 '다른 나라를 봐'라는 말 어디에 이성과 합리성이 들어 있나? 그런 말을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A국가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정책과 B국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정책을 근거로 특정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A와 B국가의 현실은 우리나라 또는 사회와 다르고, 그 두 국가가 그 두 가지 정책을 병행하지 않는 것에는 보통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예쁜 눈, 코, 입을 모아놓는다고 잘생기거나 예쁜 얼굴이 되는 건 아닌 것처럼, 특정 국가에서 펼치는 정책이라고 해서 그게 우리나라에 맞으리라는 법도 없다. 그런 사람들은 그러한 주장을 하면서 '이렇게 가면 우리나라는 결국 C라는 국가처럼 망할꺼야'라고 하지만 그 국가는 누가봐도 우리나라와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값이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될까?
'집값'이라는 제목을 달고 이렇게 길게 인간의 비합리성과 시장경제원리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그러한 비합리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집값'인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원리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재화의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런데 주택시장을 보자. 집값과 수요의 균형이 이뤄져 있나? 주택의 가격은 정말로 사람들이 그만큼 원하기 때문에 올라간 것인가? 사람들과 언론은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시장경제원리의 작용으로 집값이 올라간다고 하기 위해서는 부동산들이 항상 엄청 바빠야 하고 모든 동네에 이사 다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야 한다. 이는 '시장 가격'이란 것은 많은 거래들이 모이고, 샘플들이 충분히 있어야 형성되고 판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시장가격'이라는 것이 형성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한 단지 또는 집 한 채를 놓고 봤을 때 매매는 물론이고 이사를 다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내가 사는 단지만 놓고 보면 이삿짐 센터 트럭이 이 단지에 들어오는 건 1년에 10번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지의 집에 대해서는 가격이 조회되고, 그 가격은 놀랍게도 매년 얼마씩 오른다. 부동산을 하시는 분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에 앉아서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보내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부동산을 방문했을 때 '지금 그전에 오신 분 집 보여드려야 하니 기다리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모든 부동산 사무실에는 지나다닐 때마다 직원들이 앉아 있더라. 이는 집의 거래가 '시장가격'이 형성될만큼 자주, 그리고 많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요와 공급을 정확히 반영한 '시장가격'이 형성될 정도로 부동산 거래가 자주 이뤄지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은 대부분 안정을 원하고 잘 정착하고 싶어하지 지속적으로 환경이 변하는 즐기지 않는다. 부동산 거래가 다른 물건의 매매만큼 자주 이뤄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집값이 형성되는 원리
이처럼 집값은 '시장'에 의해서 형성되지 않는다. 시장은 일정한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집 한 채가 특정 가격에 팔리면, 사람들은 그것을 '시장 가격'이라고 부른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집을 그 가격보다 낮게 팔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값이 형성되는 이러한 방식은 집값은 시장 가격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팔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투영되어서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집값에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그건 학교 인근의 원룸의 월세가 아닐까 싶다. 이는 학생들은 대출을 받을 수도 없고, 대부분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에 단돈 몇만 원의 관리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도 욕구와 욕망은 있지만 그들은 현실적으로 자금을 융통할 경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은 길어도 1-2년, 짧으면 수개월 안에도 가성비가 좋은 집을 찾아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기숙사가 지어져서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게 되면 학생들은 원룸이 아닌 기숙사를 택하고, 그렇게 되면 원룸의 월세는 빠른 시간 안에 낮아진다. 학교에서 기숙사를 짓는데 인근 원룸 건물주들이 시위를 하는 말도 안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 원룸의 월세는 과거보다 오르긴 했지만, 집값의 상승세만큼 그 변동 폭이 크지는 않다. 12-16년 전에 자취하던 내 친구들이 주거를 위해 지출하는 비용과 내가 대학원을 다니면서 1-2년 전에 자취를 할 때 지출하는 비용은 10만 원 전후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변동폭은 높게 잡아도 15-25% 정도 인상된 것이다. 반면에 집값은 그 사이에 몇 배가 뛴 경우도 엄청나게 많다.
이러한 차이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집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과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고, 그러한 욕망과 욕구들이 모이면서 집값이 올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한 욕망과 욕구가 없는 사람들도 일정 수준 이상의 대출 없이는 집을 사는 것은커녕 전세도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는 집값이 '시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욕구'를 통해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회현상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 있다. 집 자체에 대한 욕망과 욕구가 없음에도 자신들이 시장을 끌고 올라가서 사람들이 '시장 가격이라고 착각하는'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면 그 가격에 집을 팔고 그 차익을 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시장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한다. 내가 아는 분이 지인이 대놓고 '서울에는 이제 [작업]할 곳이 거의 없어서 지방에 가야 하나 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정도이니, 그러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간의 욕망과 바벨탑
문제는 인간의 욕구와 욕망은 끝이 없다는 데 있다. 이 흐름은 정부가 아무리 나서더라도 되돌릴 수가 없다. 정부가 무슨 정책을 펼치든지 간에 인간은 그 정책을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위해 이용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그런 것에 능하지 않나? 이는 사교육 시장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일본이 90년대에 그러했듯이 지금 엄청난 빚을 져서 집을 산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수입원을 잃음으로 인해 빚을 갚을 능력을 상실해서 파산하고, 그로 인해 '진짜 시장원리'가 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압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람들은 그런 시기가 오지 않기를 기대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그런 순간은 언젠간 올 수밖에 없다. 이는 인간의 욕구와 욕망은 현실의 불균형을 일으키고, 그 불균형으로 인해 한 쪽이 무너지면 구조적으로 반대편도 무너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적인 욕구와 욕망은 우리 사회가 지금 쌓고 있는 바벨탑이고, 그 바벨탑은 인간이 만든 시장이라는 신에 의해서 언젠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사실 그 균형은 이미 흔들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