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선택을 고민하는 이유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될 수 있는 경로가 생겼다. 오랜 고민 끝에 그 선택을 결정하자마자 내 마음에 든 첫 생각은 '다시 독립하고 싶다'였다. 그 이후로 약 2주 정도 네이버에서 부동산들을 뒤적이거나 내가 가는 곳 근처 부동산들에 무작정 들어가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보증금과 월세를 조합한 원룸들을 보고 있다.
난 2010년부터 지금까지 총 10년 중 약 7년을 혼자 살았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학교가 집에서 너무 멀어 처음에 선택한 것은 이젠 얼마 남아있지도 않은 주거형태인 하숙. 사실 고등학교 시절 기숙사 생활과 군생활한 것 외에는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이고, 여러 가지로 익숙하지 않다 보니 부모님, 정확히 말하면 어머니의 조언을 따랐다. 그러다 보니 내 첫 독립생활은 한 번도 자취를 한 적이 없는 어머니의 로망을 실현시켜드리는 하숙집이었다.
불편했다. 그리고 대학원 생활이 팍팍했다 보니 하숙집에서 밥도 잘 먹지 않게 되더라. 그래서 다음 학기엔 학교 기숙사로 옮겼다. 2인 1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낯선 사람과 방 하나에 사는 건 쉽지 않더라. 첫 룸메는 핀란드 교환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방에 들어와 보니 침대에 발이 4개 있었고, 두 번째 룸메와는 생활패턴이 달라서 1달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고 지내다 보니 그다음엔 얼굴을 보고도 어색하더라. 그렇게 1년 반을 지냈다.
학교 안에 갇혀서 사는 그 느낌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어서 그 다음 해에는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자취'를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처음으로 자취방을 구하는 것이고 보증금을 부모님께 빌리다 보니 내 자취방은 역시나 어머니의 로망을 실현해주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옥탑방. 사실 그 옥탑방은 나쁘지 않았다. 아침이면 난 캠핑 의자를 앞에 널찍한 공간에 펼쳐 놓고 멍 때리면서 하늘을 봤고, 여름에는 더위를 먹고 겨울엔 두꺼운 후드를 입고 자야 했지만 그 방은 나름 괜찮은 편이었다.
그 이후엔 반지하 투룸에서 한 달을 살았다. 그런데 머리 위로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곳에선 도저히 살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이사한 곳은 주택을 개조해서 1층에는 주인집이 사는 원룸이었다. 원룸 치고 방도 컸고, 베란다도 있었으며, 베란다에서는 주인집 마당이 내려다 보였다. 지금 돌아봐도 그만한 원룸은 찾기가 꽤나 힘든 듯하다. 그곳에서 2년 간의 자취생활을 뒤로하고 난 다시 본가에 들어왔고, 난 부모님과 2년 정도 함께 살고 있다.
내가 다시 본가에 들어온 건 돈의 문제도 있었지만 떠돌이처럼 그렇게 옮겨 다니는 과정이, 그리고 혼자 사는 것이 너무나 외롭고 힘들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 당시에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이기도 했지만,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책 서두에서 저자가 밝혔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혼자 사는데 지쳐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자취생활을 하던 중간에 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저자와 이름이 같은 고등학교 동기와 반년 정도를 같이 살았었다. 선교사님이신 그 친구 부모님께서 일본에 계신 중에 그 친구 혼자 방 3개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내가 다니던 학교가 그 친구 집에서도 멀지 않아서. 우리 둘이 뭔가를 엄청나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집안에 살고 가끔은 맥주 한 잔을 할 사람이 있다는 게 그렇게 행복하더라.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굉장히 공감하면서 읽었던 것 또한 그 때문이었다.
부모님과 다시 같이 살기로 할 때 그 친구와 함께 살던 시절이 많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함께 산다는 것만으로도 안정이 되던 그 때와 달리 자취방에 오면 우울감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때로는 심지어 잠도 제대로 못 자기 시작하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부모님과 다시 같이 살기로 했다. 서로 엄청나게 부딪힐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갈등을 각오하고 말이다. 그렇게, 또 2년이 지났다.
나이가 너무 먹었고, 이젠 독립할 시기가 넘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그런데 다시 나가려니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많이 들더라. 비용적인 측면보다도 이젠 안정을 찾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한다. 이젠 정착하고 싶단 생각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생각이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단 것 자체가 놀라워서.
예전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어도, 방이 조금 허술해도 괜찮았다. 그걸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젠 편하고, 깨끗하고, 깔끔한 게 좋더라. 집에 오면 쉬고 싶고, 긴장감이 풀렸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러다 보니 눈은 점점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매매로 간다. 평생 빚을 져본 적이 없었고, 빚을 지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는데, 이젠 빚을 내고 싶단 생각이 든다.
항상 도전하는 편이었고, 조금 지저분하고 깔끔하지 않아도 무던하게 살던 편이었다. 사실 그래서 내 안에 일어나는 이런 변화가 당혹스럽다. 이런 게 나이가 들어가는 것일까? 이런 게 현실적이 되어가는 것일까? 그런 나 자신과 다툴 기력조차 없는 것을 보면 나도 이렇게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걸지도 모른다. 그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