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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해결되어야 하는 이유

by Simon de Cyrene

감히 가난했다고 하지는 못한다. 정말로 힘들고 어렵게 사는 것을 넘어서 가난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분들도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기에. 회사원으로 정년퇴직하신 아버지의 아들로 살면서 큰돈은 아니어도 감사하게도 어떻게든 생활비를 벌 수 있었던 내 삶이 감히 가난했다고 나는 말하지 못한다. 그건 정말 힘드신 분들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래서 경제적인 불안정과 부족함에 대해서 불평하는 건 항상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항상 넉넉하게 벌고 썼던 것은 아니다. 관리비를 포함해서 월세 43만 원짜리 원룸에 살면서 통장 잔고가 67만 원 정도까지 내려간 적도 있고, 돈을 아끼기 위해 여름을 티셔츠 5개와 바지 2개로 버틴 적도 있으며, 10시 넘어서 마트에 가서도 할인된 조리식품이 비싸게 느껴져서 몇 번을 들었다 놨던 시절도 있었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몇 년간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활로가 보이지 않는 상태로 버텨야 했었다. 그 과정에서 반지하에 살면서 경험한 습기 가득한 공기와 잠을 잘 때면 온 세상이 내 머리 위로 걸어 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느낌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가난은 가난 그 자체 때문에 우리가 함께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물론 가난은 그 자체로도 고통스럽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계속된 가난으로 인해 나 자신이 망가져가고, 위축되어가는 것을 느끼는 경험이다. 당장 다음 달에 어떻게 먹고 살 지를 고민하고, 쉼터가 되어야 할 집에 와서도 세상이 날 짓밟은 듯한 느낌을 받으며, 실패자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은 내 생활을 넘어서 마음을 짓밟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난 한 때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듯한 무기력함에 시달렸다.


가난이 무서운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난하면 더 노력해서 벌면 되잖아'라고 하지만, 가난이 삶이 된 사람은 그렇게 노력할 힘이 없다. 이는 그 가난이 그 사람에게서 그러한 능력과 에너지를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다시 발버둥 치며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수년을 살다 보면 그 사람은 가난이라는 블랙홀로 끌려들어 가 그 안에 매몰되게 된다.


'노력하지 않아서 가난한 것'이란 말을 가난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폭력적인 말이다. 누구도 처음부터 가난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가난에 매몰된 사람들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세상이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혼자 발버둥 치다가 혼자 지치고 그게 그의 삶이 되어 버린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서 주위 사람들을 보며 그냥 자신은 그런 삶을 살 존재라고 생각하고 시도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우리가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믿고, 내가 노력하면 작은 성취라도 이룰 수 있다고 믿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의지'의 문제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타고난 성향이 다르기에 그 기준을 함부로 적용해서는 안된다. 가난이 일상이 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통해서만 그 안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수 있다.


더군다나 고도로 구조화되고 발달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태어난 환경이 그 사람이 노력을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 레벨을 결정해 버리기도 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우연히 특정한 환경에 태어났는데 그로 인해서 그의 미래가 결정되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모두에게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타고난 환경으로 인해 무엇인가를 시작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손실이다. 이는 그 사람들도 최소한 한 가지는 자신이 잘하는 일이 있을 텐데 그들은 환경으로 인해 그것을 펼쳐보지도 못하게 되고, 그러한 현상은 그 사람이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정도의 손해를 우리 사회에 끼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난의 문제에 대해서 함께 노력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모든 가난이 개인의 게으름으로 인한 결과는 아니고, 많은 가난은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지며, 그런 상황으로 인해 가난의 늪에 빠진 사람들은 스스로 그 안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기에.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삶을 펼치는 것이 우리 사회를 더 풍요롭게 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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