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 담겨 있는 사랑에 대하여
집밥과 가족의 역사
우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피난민이셨다. 이는 두 분 모두 고향이 휴전선 이북지역이란 의미다. 그렇다 보니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주먹만 한 만두, 가자미식해 등과 같은 음식을 해주셨고, 나이가 들면서 식해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는 했다. 내겐 집밥인 것이 같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겐 낯선 외국음식과 같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이처럼 집밥에는 그 사람이 태어난 가정과 가족사가 담겨 있다.
한 가정의 가족사는 음식의 종류뿐 아니라 음식의 양에도 달려 있는데, 이는 조부모님이 피난민이신 집안에선 집밥을 보통 항상 양적으로 풍성하게 내놓는다는데 있다. 그러한 경향성은 우리 집뿐 아니라 고향이 북한이신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계신 집안에서 자주 발견되는 특징 같다. 물론, 전라도 밥상도 엄청나게 풍성하지만 전라도의 경우 다양한 음식이 고루 풍성하게 나오는 것과 달리 우리 집은 몇 가지 주요 음식이 풍성하게 나온다는 특징이 있다.
이북 사람들이 추운 곳에 살다 보니 몸에 열을 내기 위해 원래 음식을 풍성하게 먹었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식재료가 풍부하기 힘든 북한지역의 기후나 환경을 감안하면 그것이 북한에 있을 때의 문화 일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생긴다. 그건 어쩌면 피난길에서 식사를 한 번 할 때는 많은 양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문화가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함께 한 가정을 이룬 후에는 두 지역의 문화가 한 집에서 합쳐져서 또 다른 문화가 만들어진다. 이는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집밥으로 먹던 음식이 있어서 그 음식을 집에서 먹고 싶어 하고, 그렇게 되면 그 가정에서 요리를 주로 하는 사람이 그 음식을 배우거나 조리되어 있는 음식을 사 와서 먹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집밥이 우리네 삶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고, 그 문화 안에는 두 사람 안에 축적되어 있는 가족사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내게 집밥이란?
피난민의 손자로 태어난 내게 '집밥'은 그 끼니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다 먹을 수 없을 정도의 음식이 풍성하게 차려지는 그림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형제가 모두 결혼을 하지 못한 우리 집은 여전히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네 식구가 사는데, 그렇게 한 식구가 같이 산다 해도 우리 집의 세 남자가 모두 일을 할 뿐 아니라 내 동생과 나는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사실 그런 집밥을 먹는 경우가 이젠 많지 않다. 평일 아침엔 간단하게, 점심은 직장에서, 저녁도 밖에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런 집밥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먹을 수밖에 없다. 이는 어머니께서 네 식구가 같이 살면서 밥은 일주일에 한 번은 먹어야 한다며 일요일 아침식사는 네 식구가 같이 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때는 보통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할 상에 3-4가지 메인 음식이 올라온다. 그리고 그 조합에는 꽤나 자주 물음표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최근에는 어머니께서 아침에 닭볶음탕에 갈치, 샐러드를 차려주셨었는데 그 식탁을 보며 '닭과 갈치를 같이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떠나지를 않더라. 물론, 그 옆에 김치를 비롯한 반찬들은 3-4가지 이상이 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항상 그렇듯이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네 식구는 보통 일요일 아침이면 어쩔 수 없이 과식, 심할 경우에는 폭식을 하게 되더라. 몇 년 전에 강호동 씨가 아침에 삼겹살을 먹는단 사실에 사람들이 많이 놀랐었는데, 그들이 일요일 아침에 우리 집 풍경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데 일주일 한 번, 일요일 오전에 어머니께서 그렇게 식탁을 차리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사실 닭볶음탕이 메인이 아닐 때도 어머니께선 항상 생선을 한 가지는 상에 올리시는데, 그건 저녁까지 밖에서 먹는 아들들이 생선을 잘 먹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외에 메인 메뉴는 일주일에 한 번 같이 먹으니 조금 그럴듯한 음식으로. 여기에 야채를 먹는 건 중요하니까. 우리 집에서 일요일 오전의 집밥은 이처럼 가족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다.
내게 집밥은 어머니께서 가족에 대한 본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자리다. 말로 표현하는 건 민망해서 잘 못하지만 본인이 가장 잘하시는 것으로, 본인이 익숙하신 방법으로, 풍성하게. 그리고 식탁에서 이걸 먹어라, 저걸 먹어라라고 하는 잔소리는 가족의 건강을 우려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네 식구가 밥을 먹고 난 후엔 항상 소파에 뻗으신다. 그 음식을 다 하려면 새벽에 일어나서 음식을 만드셔야 하니 음식을 준비하시는 그 과정이 얼마나 고단하시겠나?
언젠간 그리워질 것을 안다
그런데 그렇게 풍성하게 먹는 것이 사실 항상 편하지만은 않다. 일주일 내내 아침을 먹지 않거나 많이 먹어도 주스 한 잔, 빵 한 조각에 과일 한 두 조각 먹던 위에 아침부터 그렇게 음식을 쏟아내니 속도, 몸도 편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를 포함한 우리 집 남자들은 가끔 식탁에서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다. 이건 과하지 않냐고. 그리고 이렇게 먹이면서 살이 쪘다고 뭐라고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밥 앞에서 가능하면 불평을 하지 않는 것은, 언젠가는 일요일 아침마다 어머니께서 챙겨주시는 아침이 언젠간 그리워질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난 약 7년간 자취를 할 때 그 그리움을 경험했고, 어머니께서 언젠간 이 세상을 떠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난 내가 언젠가는 그 아침상을 그리워만 하고 다신 접할 수 없을 것이란 사실을 안다.
조금은 많이 버겁지만 일요일 오전에 밥상에는 불평을 하더라도 항상 내 자리에 앉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언젠간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란 사실과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하든지 그 사람의 사랑 표현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단 것과 내가 어머니께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음식을 맛있게 먹어드리는 것이란 사실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