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허와 실에 대하여
우리나라는 유난히 나이를 많이 따지는 편이다. 그건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일 텐데, 사실 유교에서 나이 많은 사람들을 공경하는 것은 엄연히 말하면 경험이 많은 만큼 인생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사람을 전제로 그러한 것이었지 무조건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을 공경해야 한단 맥락에서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그러한 문화를 만든 것은 '장유유서'란 말한 마디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른과 아이 사이에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단 말이 상하관계를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차례와 질서가 있다는 것은 어른이 앞장서서 아이들을 끌어줘야 한단 의미였지 과연 상명하복을 의미했을까? 그것이 상명하복의 의미이고 모든 질서를 지배하는 개념이었다면 젊은 현자나 군자들이 존경을 받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리고 장유유서는 '어른과 아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지, 어른과 어른 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 이후에는 오히려 군신유의, 붕우유신 등과 같은 표현으로 관계를 설명하고, 친구를 의미하는 붕우는 꼭 나이가 같아야 한단 요건도 달고 있지 않다. 나이가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나이가 많고 성숙한 사람은 보통 더 깊고 공경할만하다. 하지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나이가 든 사람이 더 추하다. 이는 나이가 벼슬인 줄 알고 전혀 숙일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산에 10년에 겨우 한 번 바뀌는 과거에는 나이가 든 사람들이 무조건 더 경험과 지식이 많았지만, 10년에 강산이 3-4번도 더 바뀌는 요즘 시대에는 사실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페이스북, 구글, 인스타그램,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최초 창업자들은 창업 당시에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았으며 60-70년대에 전국구로 유명했던 국회의원들은 대부분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이를 기준으로 많은 것을 구분하는데, 사실 나이는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에 대한 기준을 잡기 위해 만든 수단이지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도 말과 마음이 더 잘 통하는 사람도 있고, 동갑이어도 말 한마디도 섞기 싫은 사람들이 있지 않나? 두 사람이 서로를 존중할 줄 안다면, 사실 대부분 영역에서 나이는 그렇게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이는 공감하고 소통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다른 세대를 산 두 사람은 작은 것들에 있어서는 경험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두 사람이 보는 방향과 가치관이 비슷하다면 그런 차이는 어렵지 않게 극복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이를 따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평균 연령 55.5세의 국회의원들이 이 시대의 시대적 변화를 어떻게 따라가고, 이 시대에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공감하겠나? 그들이 젊은 시절을 보낸 80-90년대는 취업이 어려운 시대도, 집값이 이렇게 지역별로 크게 차이가 나는 시대도 아니었다. 그러니 어쩌면 그들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법과 정책만 내놓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독재정권 치하에서 20대를 보낸 사람들이 주류인 국회는 여전히 그 시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30년 넘게 똑같은 싸움만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정치인들에게 기대를 걸지 않는 것도,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누구를 뽑아도 그 시대의 정치만을 할게 뻔하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사적 영역에 있어서도 나이를 따지다가 좋은 기회를 많이 놓친다. 나이 때문에 사람을 뽑지 않아서 회사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을 놓치고, 깊게 알아보기 전에 나이 차이 때문에 연인은 아니라고 단정 지어서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을 놓치는 사람과 경우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그뿐인가? 때때로 본인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본인보다 어린 상사 밑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일함으로써 배우고 익힐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할 때도 있다. 오로지 나이. 때문에.
물론, 나이가 항상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많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나이가 많은 것이 필요하고 좋을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해서 서로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선입견이다. 통하지 않는 면도 분명히 있겠지만 시간이 아닌 다른 요소들의 영향을 받는 지점들에서 서로 공감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나이와 무관하게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오히려 나이가 어리거나 젊기 때문에 더 본질적인 것을 잘 보는 사람들도 세상에 많다.
이젠. 나이를 좀 그만 따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의미 있는 극히 제한적인 영역이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