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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작은 변화들이 핵심인 이유

by Simon de Cyrene

지금 돌아보면 정말 제정신이 아니어야 할 수 있는 생각인데, 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을 때 진심으로 좌절감을 느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을 꿈꿨던 난 당시 대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철이 덜 들어서 언젠간 내가 유엔 사무총장이 되고 싶었는데, 한국 사람이 한 번 그 자리에 앉았으니 내가 죽기 전까지 다시 그런 일은 일어날 가능성이 0에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자리를 목표로 삼았던 것은, 그런 자리에 가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국제적으로 높은 자리에 가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면 뭔가 큰 변화를 가져와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꿈을 꾸는 사람들은 지금도 적지 않을지 모른다. 특히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학생들 중에서는.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런 자리에서 하는 노력만으로는 절대로 지속 가능하고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감히 '안다'라고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는 법과 시스템, 혹은 외부의 압력과 지침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사회적 변화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한국의 교육제도일 것이다. 우리나라만큼 교육제도를 수시로 뒤집어엎은 국가가 전 세계에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는 좋은 의도를 갖고, 다른 국가들에서 사용하는 평가체계와 입시 시스템들을 다양한 조합으로 적용하면서 지난 20년을 보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사교육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진 느낌이 없지 않다. 혹자는 '차라리 시험으로만 줄 세워서 선발할 때 사교육이 덜했어'라고 할 정도로.


교육제도를 바꿔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사람들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여전히 대학 서열로 사람을 평가하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게 성공하는 길을 열어주는 열쇠들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여전히 믿기 때문에. 그게 바뀌지 않는 이상 어떤 제도를 도입하고 누가 찍어 눌러도 사교육 시장으로 인해 왜곡된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와 중고등학교 교육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은 법제도가 어떻게 바뀌든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강제하는지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욕구 또는 욕망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그런 빈틈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걸 막으려면 휴전선 이북지역에 있는 집단이 만든 질서를 만들어야 할 테니까. 아참, 휴전선 이북지역에도 그 한계가 드러나서 장마당이 생기고 돈주가 생기는 등 국가에서 정하고 있는 질서와 다른 형태의 질서가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지... 그렇다면 결국 무엇도 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핵심은 한 사람이 변하는 데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적 변화는 사람들의 가치관, 마음, 세계관이 변해야 일어난다. 사람들은 때때로 '겨우 한 사람이 변한다고 세상이 바뀌냐?'라고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 주위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고 그 변화가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그림을 생각해보자. 그렇게 따지면 한 사람이 변하는 것은 생각보다 작지 않은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여기에서 '변화'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변화이지 그 사람이 일로 구조나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숫자와 규모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렇게 집중하는 게 비효율적이고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서 그 사람의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바뀌면, 그건 그 사람에겐 온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보는 시선과 기준이 바뀐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런 영향을 준다면, 그건 어마어마한 일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인류 역사상 단기적으로 정권을 뒤집는 수준이 아니라 그 변화가 영속적인 영향을 준 혁명들은 모두 바닥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사람들이 그 방향성에 공감을 갔을 때 이뤄졌다. 그리고 그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그 시대에는 왕, 군주, 독재자 같이 사람들의 분노와 변화의 열망이 집중될 대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그런 대상이 없는 공화국과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그러한 혁명이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 공공의 적이 존재하지 않기에.


하지만 조금 더 공동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과 나도 중요시하지만 다른 사람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하나, 둘씩 해결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이, 한 사람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국가, 사회, 공동체가 우선되고 개인은 꽤나 자주 희생을 강요받으면서 그런 집단의 도구로 여겨질 때가 많다. 회사 경영이 어려우니까, 인구가 부족하니까, 우리나라가 잘 되어야 하니까 등등. 개인을 먼저 생각해주고 그 사람들의 필요를 지혜로운 방법으로 잘 충족시켜주면 사람들은 자신히 속한 집단을 위해 최선을 다할 텐데 우리나라에선 그런 시선을 가진 리더가 여전히 부족하다.


법은 최후의 분쟁해결방법이고, 법이 없어도 되는 국가가 아마도 가장 이상적인 국가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국가가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욕구와 욕망으로 가득한 존재이며, 어느 누구도 그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까.


우리가 만약 우리 사회에서 정말 변했으면 하는 면이 있다면 그 시작점은 집단이나 큰 변화, 권력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보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어야 한다.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보통의 개인들도 모두.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변화는 그때야 조금씩 일어날 수 있다.


큰 변화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만들어져야 한다. 한 개인의 카리스마나 일부 집단의 독단으로 만들어지는 변화는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 되는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나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권력으로 큰 변화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겉으로는 변화를 주창하지만 실제로는 본인의 이름을 남기고 싶거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게 어쩌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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