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관심이 없는 이유
최근에 한 학술대회에서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법과 사회'과목이 2009년에 '법과 정치'로 바뀌었다는 내용을 처음 접했다. 사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어떤 과목을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교육학을 전공하지도 않다 보니 이런 내용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토론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고 그중 한 가지는 '난 법과 사회가 더 맞는 것 같다'라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플로어에 있던 교수님 한 분께서 이례적으로 내 토론 내용에 대한 반론을 하시면서 본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치를 남의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법과 정치'로 과목 이름을 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시더라.
이 문제에 대해서 운전하며 귀가하는 길에, 그리고 며칠 더 고민을 했다. 그러던 과정에서 한 대화에서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정치관'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아니고, 대화에 함께 했던 사람이 그런 얘기를 했단 것이다.
'정치'란 무엇일까? 좁은 의미의 정치는 국회에서 정당들이 벌이는 것이 정치일 것이고, 그보다 조금 더 넓은 개념의 정치는 국가 안에서의 권력 작용, 즉 국가권력이 개인의 영역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힘겨루기가 정치일 것이다. 그리고 아주 넓은 의미에서 정치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 또는 기관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의도대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모든 방법을 의미할 것이다.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님들은 '모든 것이 정치적이다'라고 할 때의 '정치'는 가장 넓은 의미의 정치에 해당한다.
난 이 중에 좁은 의미의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고, 조금 더 넓은 의미의 정치에는 적정한 수준으로만 관심이 있다. 난 보통 양비론자는 아니지만 난 지난 정부는 정말 싫어했고, 이번 정부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의 정치는 이념도, 이성도, 합리성도 찾아보기 힘들고 힘겨루기와 권력다툼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보이는 모습들을 보면 이러한 사실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느 정당이 하는 주장인지를 모르는 상태로 지난 정부 하에서 여당이 하는 말과 야당의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내용은 놀랍게도 여당이 계속 여당이고, 야당이 계속 야당인 듯한 느낌을 주는 건 그런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상이 아닐까? 우리나라 정계의 코드를 하나 꼽으라면 그건 '내로남불'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렇다면 오히려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할지 모른다. 여기에서 물어봐야 하는 건, 나 한 사람이 관심을 갖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는다고 과연 그런 정치문화가 바뀌겠냐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또 그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무책임한 것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가 우리나라에서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주장이고, 여기에서부터가 나의 반박이다. 좁은 의미의 정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 사회의 질서를 결정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그런 결정을 위한 논쟁과 토론을 벌이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치는 그 본래 목적과 본질에 맞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존재의 가치가 없는 자들이다. 세금을 축내고 있을 뿐. 그런데 내가 왜 그런 자들의 일에 내 시간과 힘과 에너지를 쏟아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난 정치의 본질에 더 관심이 있다. 이는 난 우리 사회에 어떤 법제도가 필요하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 지에 대한 관심이 있단 것을 의미한다. 좁은 의미의 정치는 본래 그런 것을 결정하기 위한 과정이자 도구여야 하니까. 그래서 난 그에 대해서 고민하고, 공부하며, 글을 쓴다. 그리고 난 그게 훨씬 우리 '사회'를 위해 필요한, 생산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권력다툼에 빠져서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그런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내가 '법과 정치'보다 '법과 사회'가 그 과목의 제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미성년자들이 사회에서 홀로서기를 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고, 그러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제도가 왜 존재하며, 개인이 우선인지 국가가 우선인지, 법제도가 우리 사회에서 무슨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교육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뤄져야 한다. 그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그 맥락에서 학생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정치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이는 학생들이 우리 사회구조에 대해 이해하고 나면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중요하다'라고 소리친다고 해서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 왜 중요하고, 왜 지금처럼 이뤄져서는 안 되는 지를 '이해'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이해'가 아닌 '암기'를 할 수밖에 없는 내용으로 교육과정을 디자인하고, 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더라.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삭발하고, 듣지 않으며, 공부도 하지 않고 와서 말도 안 되는 질문이나 하면서 어떻게든 본인 이름을 뉴스에 나오게 하려고 발버둥 칠 뿐이다. 그들은 대부분 국가는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재선과 권력에 눈이 멀어있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에서 아무리 '정치'를 교과목 이름에 붙인다고 해서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까?
그래서 사실 난 사람들이 '정치관'이라고 할 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특정 정당과 정치적 성향이 맞다고 하는 것은 사실 자신은 그 패거리에 동조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나라에 보수와 진보가 어디 있나? 그나마 녹생당이나 정의당이 분명한 색이 있을 뿐, 나머지 정당들은 재선과 권력에만 관심이 있는 게 현실이지 않나? 그들이 구성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당 이름을 몇 번을 바꿨나? 그들이 정말 분명한 이념적 지향성이 있다면 정당의 이름은 그 이념적 지향성을 반영하고, 그 이름을 유지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문제만 터지면 정당의 이름을 바꾼 것은 대중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쳐서 이미지 세탁을 해서 자신들을 선택하게 만들기 위함일 뿐이다.
정치는 아주,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건 정치가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린 정치를 '사회적인' 그리고 '국가적인' 맥락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권력적인 맥락에서 볼 것이 아니라 말이다.
'왜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냐?'라고 사람들이 물으면 난 '그래야 우리나라 정치가 조금은 정상화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답한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 코너에 몰린 쪽이 할 말이 없으면 '친일파' 또는 '좌파 빨갱이' 프레임을 형성하고 과거를 끄집어내거나 안보 프레임을 갖고 와서 그에 대한 편 가르기와 싸움을 일삼지 않나? 통일이 되면 그중에 최소한 '빨갱이'와 안보 프레임은 없어지거나 최소한 희석될 수 있을 것이고,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나라의 '좁은 의미의 정치'가 정상화될 수 있다고 난 생각한다.
내가 정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의식적으로 우리나라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