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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by Simon de Cyrene

설득: 상대편이 이쪽 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함.


'설득'의 사전적 정의만 보면 마치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깨우치게 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게 가능한 경우도 있다. 상대가 설득의 대상이 되는 주제에 대한 지식이나 특별한 의견이 없는 경우에는 상대방을 '깨우치게'해서 '따르도록'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은 보통 상대방이 나와 의견이 다를 경우에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한다는데 있다. 즉, 사람들은 사실 아무 의견이 없는 사람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이미 자신의 의견이 어느 정도 확고하게 있는 사람을 설득하는데 관심이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득의 기술'과 같은 책이 나오고, 그런 책들이 팔리는 것은 사람들이 뭔가 상대방을 깨우치게 하는 노하우나 기술이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은 그 사람의 이성 또는 합리성의 수준과 무관하게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은 포기하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내린 결론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오늘은 해가 질 것이고 내일은 해가 뜰 것이라거나 인간은 모두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과 같이 당연한 명제가 아닌 이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 의견, 주관은 어느 지점에 선가는 '믿음'으로 인해 그 사람의 그것이 될 수밖에 없다.


설득이 기술로 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성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론 그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는 이성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성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요소가 결정을 하기 때문에 사람은 기술로 설득할 수 없다.


그래서 사실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할 때는 설득하려는 주제가 어느 정도 이성적인 고려가 있고 필요한 것인지, 상대방이 그것을 어느 정도 깊이로 이성적인 고민을 하고 내린 결론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그 주제가 '믿음'의 성격이 강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가 충분한 이성적인 고려를 하지 않고 '믿음'을 갖고 주관을 형성한 것이라면 상대를 설득하는 데는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런 주제나 그런 상황의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설득'이 '이성과 논리'로는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설득'은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야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상대의 얘기를 듣고, 그 얘기가 어느 수준까지 일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충분히 존중하는데서 시작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상대를 이성과 논리로만 설득하려는 시도는 겉으로 '항복'을 받아낼 수는 있어도 상대를 '설득'할 수는 없다. 그렇게 접근하는 것은 사실 '설득'이 아니라 '강요'에 가깝다. 특히나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이성이 아니라 믿음을 갖고 상대방에게 주입하려고 한다면 더더욱...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문제점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강요하려고 한다는데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커지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커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대화'가 불가능한 조직이 많은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나도 종교가 있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방황하고 고민을 해서 지금의 종교에 정착했기에 내 종교에 대한 확신과 믿음은 꽤나 견고한 편이지만 누군가에게 종교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 인위적으로 전도할 생각도 없다. 이는 종교는 '믿음적인 성격'이 가장 강한 영역 중 하나기 때문이다. 내 종교를 믿고, 그 종교가 진리라는 것을 믿는다면, 그 종교에 따라 사는 삶을 사는 것이 우선이다. 그 삶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때, 그 사람이 그 종교에 관심을 갖고 다가올 것이며, 설득은 그때야 가능할 것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설득'이라는 말로 '강요'를 한다. 그건 상대의 마음을 짓누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엄청난 폭력 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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