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by Simon de Cyrene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는 '복지 확대'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나 역시 그런 반응을 보이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복지를 너무 확대하면 사람들이 거기에 안주하게 되기 때문에 선을 지켜야 해'라는 생각을 내 인생의 절반이 넘는 기간 동안 확고하게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복지에 대해 이런 시선을 갖게 된 것은 남북관계가 결정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빨갱이'와 '사회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를 프레임으로 해서 북한을 적대시하면서 남한 사람들을 하나로 통합시켜야 했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가가 뭔가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은 빨갱이 정책이라는 생각이 상당히 많은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맞다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는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망한 이데올로기다. 그 두 가지 이념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 없이 이상을 껍데기로 삼아서 그걸 주도하는 사람들의 배를 불려주면서 망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인간이 항상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하고 주장된 이념이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패배한 것은 그 때문이다. 국가가, 공권력이 사람들에게 강제로 뭔가를 포기하고 강제로 나누게 만들었고, 국가와 공권력에 저항할 힘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 [내가 일해 봤자 뭐하냐, 그래 봤자 일 덜한 사람이랑 똑같이 받고 극소수 인간들 배만 채우는데]라고 생각하게 되다 보니 모두가 대충대충 일하게 되었다 보니 국가적으로 경쟁력을 잃게 된 것이다. 그냥 사회주의고 공산주의기 때문에, 그게 사회악이고 빨갱이기 때문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외치던 국가들이 사라졌거나 경제적으로 열위에 처하게 된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현실에 적용되기엔 과도하게 이상적인 이념이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그런 면이 없을까? 복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마치 모든 것이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정말 그럴까?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큰 자본을 가진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규모를 키울 수 있기 때문에 더 가진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가 더 쉽고, 돈으로 살 수 없던 것도 돈으로 살 수 있게 될 수 있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은 극소수가 부의 상당 부분을 독점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자들은 그 시점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만약 점점 더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절대적인 다수가 되고 그게 생존의 문제로 이어진다면.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그 틀이 교묘하게 틀어져 있다.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거의 절대선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저항할 힘을 잃었고, 개인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시스템에 의해서 운영되면서 저항할 방법과 대상이 사라졌다.


꼭 그런 상황이 아니어도 혁명이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하나 있다. 그건 그 사회에서 '가진 자'들과 '갖지 못한 자'들의 빈부격차가 후자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이 노력해도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고 느낄 수준으로 커지면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열위에 있는 자들이 자신의 인생은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야 한다고 여기고 이번 생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혁명이나 변화를 일으키려는 의지는 포기된다. 압도적인 힘에 의해서 짓눌리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이미 그런 상황이 한 차례 벌어졌었다. 조선 후기에. 조선 후기를 기록한 외국인들은 모두 '조선 사람들은 게으르고 일 안 하고 술만 퍼마시는 민족'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시선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폄하하기 위한 술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한데, 그건 사실 이다. 그런 기록과 시선은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들의 시선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선교사들은 그게 사회적인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교육으로 조선 사람들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일본은 '너희는 원래 그렇게 천한 것들이야'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이 조선을 불법적으로 합방하는데 그 사실을 이용했다는 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술을 마시고 일도 잘 안 했을까? 그건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경제적으로 힘들어져 가고 있었는데 양반과 관료들은 백성들이 일을 하는 족족 이런저런 명목으로 그걸 수탈해 갔다. 신분제는 태어나는 순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를 그어 버렸다. 그러니 조선의 평민들은 일을 해봤자 자신이 갖는 게 아무것도 없고, 희망도 없으며, 상황이 자신의 생 안에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변한 것은 희망이 없는, 가능성이 없는 사회구조 때문이었다.


복지는 그런 상황에 희망과 가능성을 불어넣어주는 작용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공짜 밥을 주고 복지를 확대하면 일을 안 할 것이란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그것을 갖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다. 더 갖기 위해서. 따라서 적정한 수준의 복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내가 공부하고 노력하면 저 정도 사회적 지위에 오르거나 저 정도 부를 축적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 수준의 기회와 희망을 준다면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 순기능을 가져올 수 있다.


복지를 무한정으로 확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복지를 무한정 확대하게 되면 그 사회는 결국 사회주의 국가가 되고, 그러면 그 사회는 실패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의 뒤를 따라갈 것이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 이상의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거나 다른 국가로 자신의 부를 옮겨가고 싶을 정도로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그들에게서 뜯어내면 그 역시 국가를 멸망의 길로 이끌 것이다. 그들을 통해 복지에 필요한 재원은 마련하면서 또 그들이 가진 재원으로 투자하고 새로운 사업을 할 기회를 확대해 주는 정책을 병행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복지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는 그러한 '선'을 어디에 긋는 게 맞는지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엄청나게 많고 어떤 정책을 도입하면 어떤 효과가 나올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고려와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그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의가 없다는 데 있다. 한쪽에서는 포퓰리즘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복지를 늘리겠다고 하고,한쪽은 복지 얘기만 나오면 빨갱이 취급을 하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결집시킨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기 위한 노력을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고 있다. 이 패턴이 이어지면 우리는 또 다른 방식의 조선 후기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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